아브라함의 기쁨

2016년 July 3일 ()

본문: 요한복음 8:56-58 |

주제 : 아브라함의 기쁨
본문 : 요한복음 8장 56~58절
설교자 : 조성훈

 

아브라함의 삶은 나그네의 삶이라고 하는데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나그네입니까, 정착민입니까? 나그네인데 살림이 참 많지 않습니까?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나름의 만족을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물건을 사도, 집을 지어도, 결혼을 해도 자신의 생각에 따라 무엇으로 만족을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비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두 가지 생각 중에서 갈등하면서 살아갑니다. 영적인 만족과 육적인 만족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오래 전에 읽었던 말씀인데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아브라함은 주님이 태어나기 수천 년 전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대에 일어날 일들을 보기를 원하다가 보고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인들이 비그리스도인들과 다른 점은 약속을 바라보고 그것을 즐거워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에서의 소망을 보고 즐거워합니다. 얼마 전 뉴스에 소련에서 수조원의 돈을 투자해서 순간이동 기술을 연구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순간이동이 가능하다면 국경이 필요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노력이 하나님과 같아지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소망을 즐거워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이 큰 축복을 약속하셨을 때 그 축복을 미리 바라보며 즐거워했는데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들을 바라보며 즐거워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여러분 중에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생각하며 즐거워서 잠 못 이루시는 분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참 부유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탁기가 처음 들어왔을 때 그로 인해 버는 시간이 많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과학이 발전해도 그것이 우리를 주님께로 가까이 가게 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예수님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즐거워했다면 그가 순간이동을 한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이 태어나기 오래 전인데 그는 그것을 생각하며 즐거워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아브라함, 야곱, 이삭은 소망을 멀리서 보고 환영했습니다. 이것이 가능할까요?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축복과 약속을, 현재 이곳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미리 보고 즐거워할 수 있을까요?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보여주었고 우리 역시 그럴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이 이 땅에 머물러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재물보다는 그들의 마음이 하늘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몸은 이 땅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주께서 약속하신 약속의 성취에 있는 것입니다. 비그리스도인은 마음이 이 땅에 있고, 그리스도인은 마음이 하늘에 있습니다. 그것이 가장 큰 차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그네로서 장막 중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재산이 있고 많은 종들이 있었습니다. 얼마든지 멋있게 별장을 짓고 정착할 수 있었지만, 그는 위에 있는 하늘의 처소를 바라보며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신실한 신앙인의 삶을 보면 그들의 마음이 하늘에 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 3:1)” 다시 말해서 우리 마음을 하늘에 고정시키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이 땅에 내려와서 세상 것을 추구하며 살아갈 때 그 영혼이 메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재물은 늘어가고 살림살이는 늘어가고 좋은 전자제품을 사용할지는 모르지만 영혼은 점점 더 메말라 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생각이 하나님과 그 나라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이 땅의 것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면서 너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보기 원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그렇지 않겠습니까? 부인은 늙어가고 자녀를 낳을 확률은 없는데 하나님의 약속은 있습니다. 그녀가 자녀를 낳아 민족을 이루고 메시야를 보게 될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보길 원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이 바로 그런 기쁨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 와서 따귀를 때리고 십억을 주겠다고 하면 저는 몇 대를 맞겠다고 할까요? 울면서 맞을까요, 기쁨으로 맞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내게 넘친 것처럼 그리스도의 위로가 넘쳤다는 것처럼, 하나님과 그 나라에 시선이 고정되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은 메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메마르는 이유는 물질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세상으로 향해서는 만족이 없습니다.

저도 많은 노력을 합니다. 말씀을 듣고 묵상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사단은 그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합니다. 오늘은 말씀을 묵상하고 깊이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사단은 오늘 저녁에 TV에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한다고 합니다. 사단은 우리의 생각이 하늘에 머물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주님께로 향하기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점점 우리의 영혼이 메말라 갑니다.

사람이 욕심껏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어 본 뒤 오는 생각은 무엇일까요? 타락과 술, 방탕함, 유명세, 명예 등을 다 성취한 다음에 인간에게 오는 것은 무엇일까요? 공허함입니다.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다고 했습니다. 처음에 차를 사면 누가 와서 긁을까 조마조마하고 열심히 차를 닦습니다. 그러나 5년 정도 지나면 무심해집니다. 세상에는 만족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추구하고 얻는다 해도 우리의 영혼은 메말라 갑니다. 생각이 이 땅에 머물다보면 그들이 선전하는 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것이 행복을 줄 것처럼 말입니다.

저 역시 주님과 함께 영혼을 살찌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든지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약속에 묶어두는 것뿐입니다. 나그네는 정착민처럼 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림살이가 많아서 이사를 못갑니다.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 애착을 가지고 마음을 두고 살아갈까요? 하늘에 있는 즐거움을 지속적으로 맛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아브라함처럼 수천 년 뒤의 약속이라도 그것이 오늘 나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종종 하늘나라를 묵상해봅니다. 참 웃음이 나오고 기쁨이 됩니다. 수많은 별들이 있어 이곳저곳 구경하고, 생명수 강가에서 교제하는 모습을 생각합니다. 생각만 해도 참 기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절대 허황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왜 우리의 생각은 그곳에 머물지 못합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많은 약속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의 생각이 그곳에 머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 있는 육신의 정욕에 따라 세상에 있는 것들과 사단의 방해를 받아서 우리의 생각을 그곳을 향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미래에는 가상현실이 있어서 한 공간에 다양한 것들을 옮겨놓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있으면 참 유익하고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로 향하게 할 수 있을까요? 세상의 만족은 우리를 더욱 공허하게 하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일시적인 만족에 기뻐할지 모르지만 그리스도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배가 메말라가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메말라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늘에 대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면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찬양이 나오게 됩니다. 작곡 작사를 스스로 하게 되지 않습니까? 우리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찬양이 없다면 우리의 생각이 하늘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아무리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도 그 마음에 주님이 없다면 결코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원한다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고 나그네의 길을 갔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마음을 하늘에 고착시키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그것을 현실의 즐거움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고난과 함께 즐거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을 때 우리의 삶을 기쁨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사단은 우리를 그냥 놔두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이 땅으로 메어두려고 합니다. 그것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육신적인 생각을 버리고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노력 말입니다.

‘이것이 실화다’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 프로그램에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나옵니다. 어느 순간 이것이 나에게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정적인 것들을 보는 사람은 부정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듣는지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하늘에 고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메마르면 불쌍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하고 슬픈 것 같으나 기쁨이 넘치고 가난한 것 같으나 부자인 자입니다. 현재 그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남는 것을 무엇일까요? 마지막 날에 우리가 무엇을 자랑할 수 있을까요? 저에게는 ‘교회가 얼마나 커졌는가?’, ‘재산이 많아 집이 좋아졌는가?’, ‘영향력이 있는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주님과 얼마나 동행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상관없이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현재의 내 것으로 만들어서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에 머물러 계시고, 주님이 마음에 계시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