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2005년 October 23일 ()

본문: 마태복음 16:13-20 |

주 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본 문: 마태복음 16장 13절~20절
설교자: 조 성 훈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우리가 하고 있는 고린도전서 공부에는 많은 질문들이 있습니다. 그 문제들을 살펴보면, 쉬운 문제들도 있고, 어려운 문제들도 있습니다. 쉬운 문제란 주님께서 하신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와 같은 문제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그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어려운 질문은 우리 자신에 대해 묻는 것들입니다. 예를 들면 “당신은 전도를 몇 명이나 했는가?”와 같은 질문이 어려운 질문에 속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 묻는 것은 답하기 쉽지만, 나의 삶에 대한 질문은 늘 어려운 것입니다.

주님의 질문
주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여러 질문을 하셨습니다. 첫째로,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이 질문은 ‘사람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대하고 있느냐?’ 라는 말과 같은 말인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질문에 대해,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례 요한, 엘리야, 또는 예레미아, 혹은 선지자들 중에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4대 성인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유대의 종교 지도자, 혹은 기독교인들이 믿는 ‘구세주’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고 물어보실 때,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이는 결코 쉬운 질문이 아닙니다. 이 질문에 대해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 때, 주님께서는 “이를 네게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입으로 말하는 것은 쉬우나, 진실로 그 의미를 알고, 말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그러한 대답을 한 베드로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로 알고 있는 사람은 정말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러한 사람이 복이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호칭과 그 호칭들이 갖는 의미
그렇다면, 왜 베드로는 예수님을 말할 때, 주, 혹은 그리스도, 혹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가지를 말하지 않고, 세 가지를 모두 말했을까요? 그것은 ‘그리스도, 주,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말이 각각 다른 의미를 포함하고 있고, 그것 모두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먼저 예수님을 ‘그리스도’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라는 말은 헬라어로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라는 뜻이며, 히브리어로는 ‘메시아’ 라고 하며, 역시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구세주를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을 믿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가, 하늘로 올라가셨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많은 선지자들이 예언하였으며, 그들이 기다렸던 메시아가 바로 주님임을 올바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주님을 구세주로 알고 있다면, 올바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사람을 구원할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가 바로 메시아이며, 그가 바로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대속 제물로서 이 땅에서 보내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 라고 이야기했는데, ‘주’ 라는 말은 ‘그리스도’ 라는 말과는 조금 다른 말입니다. 사도행전 2장 36절과 5장 31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이 말씀들에서 우리는 분명히 ‘그리스도’와 ‘주’의 개념이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여러분을 구해준 사람을 말하는 것이며, ‘주’, 는 주인으로서 우리의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을 ‘주’ 라고 할 때, 우리는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만왕의 왕으로서의 주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주’ 라는 의미에는 주인으로서 우리의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 포함되는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함을 볼 수 있습니다. 단지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해주셨다는 것만 생각할 뿐, 주님께서 나의 삶을 다스리고 지배하며, 내게 명령하시는 분이며, 나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왕’ 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삶에서 예수님은 진정한 왕이 되고 계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고 대답하면서 삶은 그렇지 못함을 보게 되는데, 주님께서도 누가복음 6장 46절에 그와 같은 부분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소유하시는 소유주이시며, 우리에게 명령할 수 있고, 우리의 삶에 대해 책임을 물으실 수 있는 왕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구세주로써 영접할 때, 동시에 우리는 주님을 왕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이고, 그분은 주인이시며, 우리는 백성이고, 그분은 왕이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삶에서 주님께서 얼마나 다스리고 계시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주’라고 말하면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을 주인으로 대접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정말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왕이요, 주인이라고 알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은 굉장히 복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그 보다 더 복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순간, 그와 동시에 우리는 예수님을 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과 주로 받아들이는 것이 시간을 두고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침례식을 할 때도, 예수님께서 구세주가 되심과 주인으로 섬길 것을 물어보는 것입니다. 에수님은 실질적으로 우리의 왕이며, 주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고, 명령할 권리를 가지고 계시며, 그분은 우리의 모든 것에 대한 소유주가 되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에 대한 한 예가 성경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하루는 제자들에게 새끼와 함께 매여 있는 나귀를 보거든 그것을 끌고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인이 뭐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주가 쓰시겠다고 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주님께서 시키는 대로 나귀를 끌고 오려고 하자, 그 주인은 제자들에게 왜 그 나귀를 가져가려 하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제자들이 그 주인에게 주님께서 쓰신다고 말하자, 그 주인은 가져가는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나귀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임을 인정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귀의 주인이 예수님임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그는 절대로 나귀를 내어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귀의 소유권이 주님임을 인정했기 때문에 그는 나귀를 주님께 보내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인에 대한 분명한 주권이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는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주인이라고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도 주님에 대한 분명한 주권이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왕께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듣고, 순종해야 하는 것이며, 그분께서 나의 소유권을 주장할 때, 그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주님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있습니까? 차, 집, 그 밖에 모든 것에 있어서 여러분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주님의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입으로 주님을 주인으로 받아들인다고 해서 주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삶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진정 주님의 소유권과 주제권을 인정하며, 그렇게 사는 삶이 바로 주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삶인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경우, 주님보다는 자기가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갑니다. 기도함에 있어서 그러한 면들이 드러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는 분명,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달라는 기도였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는 주인이 기뻐하시는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주인과 종의 위치가 바뀌어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이 땅에 오셨을 때, 자신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종 된 자의 자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고, 하나님께서 높아지기를 구하는 것이 바로 종 된 자들이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이 많거나, 명예가 있는 사람들을 복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복 있는 사람은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의 자녀가 된 자요, 더 나아가 삶에 있어서의 주님의 주제권과 소유권이 분명히 서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 때,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여러분의 주인입니까? 여러분의 삶에 관여하시고, 명령하시며, 소유권을 가지고 계시며, 여러분의 삶을 통제하시는 분이 되십니까?

세 번째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경배의 대상이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베드로는 앞서 말한 두 가지, 즉 예수님의 구원자 되심과, 주 되심 뿐 아니라 예수님은 살아서, 또 영원토록 경배할 대상이 되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로마서 11:36, 갈라디아서 1:4-5, 요한계시록 1:6, 5:11-14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 되시며, 우리의 찬송과 예배를 받으실 하나님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론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분입니다. 지옥에서 영원토록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인 우리들을 구원하신 분인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에게 주님은 우리의 주인이 되시며, 왕이 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몸, 재산, 꿈 등 모든 것을 소유하신 주인이 되시며, 우리는 오직 그분을 위해서만 존재합니다. 또한 그분은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해서 경배해야할 대상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놀라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올 때, 에굽 백성들로 하여금 모든 금, 은, 보화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게 하셨습니다. 그것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신 목적은 백성들을 통해 하나님을 알리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자로서, 주로서, 경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으로서 역사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구원을 받은 모든 자들에게 이 세 가지 의미로서의 예수님이 와 닿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라고 물어보셨을 때, 여러분은 이 세 가지 의미를 알고 진심한 마음으로 대답을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한 도마에게 주님께서 다가오셔서 “나의 옆구리를 만져보고 나를 믿으라.” 고 말씀하셨을 때, 도마는 “나의 주시오, 나의 하나님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대답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을 살펴보시고,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베드로는 “나를 구원한 자시며, 나의 주가 되시고, 나의 전 생애를 걸쳐 경배를 받으실 분” 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이 여러분이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