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과 염려

2005년 July 10일 ()

본문: 베드로전서 5:7-14 |

주제 : 그리스도인과 염려
본문 : 베드로전서 5장 7 - 14절
설교자 : 조성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권력이 세세 무궁토록 그에게 있을 찌어다 아멘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 찌어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인과 염려" 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드리기를 원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아마 평생동안 벗어나지 못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염려"일 것입니다. 우산 장수와 집신 장사를 하는 아들을 둔 어머니 이야기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많은 염려를 하면서 살아감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염려는 생활 전반에 걸쳐 다가오는데, 우리가 하는 가장 많은 염려는 생활에 대한 염려입니다. 또한 그밖에 가정에 대한 염려, 미래에 대한 염려, 또한 자신에 대한 염려까지 수많은 염려가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아마도 염려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본문 말씀에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염려를 다른 누구에게 맡기려고 하며, 또한 그러할 사람이 없어서 고민을 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신에게도 자기 스스로 지기 힘겨운 많은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힘들어합니다.

염려하지 말아야할 이유
성경은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데, 첫째로, 염려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질병의 원인을 스트레스라고 말하는데, 이는 곧 염려를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염려함으로 인해서 되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문제를 누군가에게 맡기지 못하고 계속해서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모든 문제를 자신에게 맡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할 두 번째 이유는 염려가 우리의 신앙을 둔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해진다고 말합니다. 이 「염려」라고 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염려한다는 것은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편, 주님께 신뢰함에 있어서 우리가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주님께 우리의 염려를 맡기면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일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빚을 많이 지고는, 그 빚조차 모두 주님의 문제라고 말하는 것이 그 단적인 예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이러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얼마 전부터 집 처마에 새가 새끼를 나아 기르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어미 새가 겪는 고생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마가 와서 비가 많이 오는데도, 어미 새는 계속해서 나가 먹이를 물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주님께서 다 먹여 살리신다고 했지만, 이렇게 열심히 일해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먹여 살리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먹을 것을 충분히 준비하신다는 것이지, 먹을 것을 입에 가져다 주신다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의지하되, 우리가 해야할 일은 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주님께 구하고 맡기고, 열심히 일해서 필요를 채우는 것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인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들에 있어서 주님께 맡기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 할 세 번째 이유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함에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늘 장래의 일을 근심합니다. 내일은 내일의 근심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늘 그렇게 염려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 할 네 번째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를 돌아보시기 때문입니다. 제 삶을 뒤돌아보면, 많은 문제들을 주님께서 돌아 봐주시고, 해결해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며, 우리의 어려움도 모두 아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우리의 눈물을 아시며, 우리의 어려운 환경과 경제적인 어려움도 주님께서는 모두 아십니다. 우리를 돌아보시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만일 초등학교 어린이가 내일 뭐를 먹을지를 걱정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어떤 면에서 걱정과 근심을 한다는 것은 부모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걱정과 근심에 쌓여있다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십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다만 우리가 해야할 부분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합당하게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주님께서 해주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계획을 세워놓고서 하나님께 자기의 계획을 이루어달라고 기도합니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계획을 이루어 가는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는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일을 주님의 뜻대로 되어지길 바래야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단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라
그 다음 말씀을 보면, 마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사단은 우리가 근심과 걱정에 쌓여있을 때, 우리를 삼키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힘을 쏟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아다닌다" 라는 표현을 하고 있는데, 동물의 왕국을 보면, 이를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자나 치타 같은 육식동물들은 바로 다른 동물들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의 움직임을 살핍니다. 살피면서 가장 연약해 보이는 동물을 표적으로 삼고 공격합니다. 이것이 사자의 공격 방법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한 가지 장면은 사자 앞에서 양 두 마리가 암놈을 차지하기 위하여 싸우고 있는 장면입니다. 자기에게 찾아올 위험을 전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사자 앞에서 자기의 세력을 더 확보하기 위해 싸우는 양들을 보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사단이 사자와 같이 늘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할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사탄입니다. 하지만, 늘 교회에는 사단의 희생물이 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신앙의 변두리에서 겉도는 사람들입니다. 베드로는 이런 사단에게 삼키운 바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신앙의 경주를 완주하지 못하고, 사탄의 먹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셨습니까? 그것은 참으로 비극적인 일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어려움 가운데 빠지고 있습니다. 사단은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도록 노력하고 있고, 하늘 나라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살도록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죄악에 빠져 평생 헤어 나오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그리스도인들이 비참하게 망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도 그 공격의 대상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자는 건강한 짐승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약한 짐승을 공격합니다. 사단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근신하고 깨어있으라." 고 말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사단의 공격에 대한 여러 가지 방어법을 살펴볼 수 있는데, 특별히 에베소서에 나오는 믿음의 방패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고 말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인들이 근심과 걱정에 쌓여있으면, 사단의 공격을 막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 마음 속에 계속해서 나쁜 생각을 집어넣습니다. 하와에게는 무엇을 말했습니까? "하나님이 정말로 너에게 저 과일을 따먹지 말라더냐?" 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실상은 그게 아니라, 그 과일을 따먹으면 너희들의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게 될까봐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라는 말로 계속해서 나쁜 생각을 집어넣으신 것입니다. 사단은 이처럼 계속해서 나쁜 생각을 집어넣음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범죄하게 만듭니다. 가롯 유다에 대해서도 성경은 "사단이 가롯 유다에게 예수를 팔 생각을 집어넣었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가롯 유다에게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수없이 많은 나쁜 생각을 집어넣습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하는 생각 중 많은 생각이 사단이 집어 넣어주는 생각인데, 어떤 사람들은 이를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육체의 정욕을 통해 사단이 많은 나쁜 생각을 집어 넣어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불신하게 하는 많은 생각들을 넣고, 형제 자매들을 불신하게 하는 많은 생각들을 넣습니다. 또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데 있어서 어렵게 하는 많은 생각들을 집어넣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이 약해질 때, 자신이 정말 구원받았는지를 의심합니다. 마틴 루터는 구원을 받은 후에, 기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 잘려고 하는데, 사단이 마음 속에 "니가 정말 구원을 받았니? 죄 용서함을 받았다고? 넌 아니야." 라는 생각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일어나서 성경을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게 하실 것이요.」라는 말씀을 보고 다시 마음의 평안을 얻은 그는 다시 침대에 누웠습니다. 그 때 또 다시 사탄이 마음 속에 의심을 넣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일어나 성경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몇 번, 마틴 루터는 사단에게 "이 말씀을 니가 읽어봐라."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마틴 루터는 이렇게 사단의 생각을 차단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단의 생각을 키웁니다. 사단이 우리 마음 속에 나쁜 생각을 넣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불씨를 짓밟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스스로 불씨를 끄지 못할 만큼 키우고 마는 것입니다. 가롯 유다가 그랬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단이 자기 머리 속에 예수를 팔 생각을 넣었는데, 나중에는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할 만큼 생각을 키웠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단에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들에게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만 넣는 것이 아닙니다. 형제 자매들에 대해 송사하려는 생각도 넣고, 세상에 대한 유혹도 넣으며, 수없이 많은 안 좋은 생각을 넣는 것입니다. 그것들로 하여금 우리는 근심에 쌓이게 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됩니다. 또한 내 방법을 찾게 만드는 것입니다. 믿음의 방패가 없다면, 이러한 불행한 결과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성경에서 볼 수 있는 위대한 신앙인들은 모두 어려움 가운데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편한 삶을 산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주님께서도 친히 우리 앞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앞에 있는 다른 믿음의 선진들도 고난받았음을 생각하라고 베드로는 말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위로가 되는 것은 우리가 받는 이 고난이 잠깐이라는 것입니다.(10절) 주님은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굳게 하시며, 주님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주님의 영광에 대해 여러 가지로 아름다운 말들로 표현하는데, 우리가 바로 그 영광 가운데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단의 공격을 받는 것인데, 그 고난의 기간이 "잠깐"이라는 것입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우리에게는 영원한 영광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염려를 주께 맡기고, 믿음을 굳게 하여 사단의 대적에 맞서 공격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저는 말씀을 공부할 때마다 우리가 받은 놀라운 축복들에게 대해서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큰 사랑을 받게 되고, 하늘의 무한한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까? 이렇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축복을 받았지만, 우리는 작고 작은 일들로 인해 이 기쁨을 잃어버리곤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축복들은 너무나 크고 우리가 다 감당하기에도 벅찬데, 우리는 세상의 조그마한 근심들로 그 기쁨을 모두 잃어버린다는 게 말이 되는 것입니까? 즐거운 일은 너무도 많은데, 조금의 염려들로 그 즐거움을 모두 빼앗겨버린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그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항상 기뻐하라." 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염려를 들으시고, 해결해주시며, 우리에게 영원한 영광으로 축복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안에서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염려를 주님께 다 맡겨버리고, 이제는 우리가 할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누려야 할 축복을 누리고, 감사할 것을 감사하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해야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감사해야할 조건이 1000가지나 있어도, 불평해야할 조건 10가지에 머무릅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을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얼마나 큰 축복을 받은 자들입니까? 그런 우리들이 세상의 적은 염려 때문에 기쁨을 잃어버려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살아도 그 기쁨을 다 누리지 못할 자들입니다. 주님의 권고의 말씀처럼 여려분의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또 한편으로 사단의 공격에 속지 마시길 바랍니다. 믿음을 굳게 해서 사단이 여러 나쁜 생각을 넣을지라도, 사단을 대적하시고, 주님의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 속에 거하게 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을 주님이 원하십니다. 주님이 우리에 대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즐거움을 가지고,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은 참 행복한 것이며,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날마다 새로운 길이며 더 풍성한 길입니다. (요5:24) 한 두가지 적은 염려 때문에 여러분 안에 있는 참 평안을 잃어버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염려를 맡길 때 주님께서 그것을 돌아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모두가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즐거운 삶을 사시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