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사랑

2006년 December 3일 ()

본문: 요한일서 4:7-12 |

주 제 : 그리스도인의 사랑

 

본 문 : 요일 4:7-12

 

설교자 : 조 성 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며칠 전 이발소에 앉아 머리를 깎으면서 옆에서 머리를 깎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못 살았던 옛날이 참 좋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사람들이 순박했고, 오가는 정이 있이 있었으며, 사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한 노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 노부부가 외아들을 키웠는데, 어느 날 아들 며느리 그리고 손자, 손녀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노부부가 살고 있던 아파트마저 저당을 잡고 돈을 빌려가서 그 노부부는 갈 곳 없이 쫓겨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들은 오늘날 세상에는 인간미가 사라져가고, 사랑이 식어졌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갈급 하는 것은 아마도 사랑일 것입니다. 사랑은 사람들의 눈을 빛나게 만들고, 가슴에 뜨거운 기운을 불어넣고 삶을 의미 있게 만듭니다. 오늘날 세상에 있는 책이나, 음악, 영화, 노래들이 가장 많이 다루고 있는 주제 또한 사랑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사랑을 세상에서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진정한 사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에 대한 오해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기적인 사랑을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사랑이 좋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사랑받는 것이 좋다는 뜻입니다. 또, 교회가 사랑이 많다고 말하는 것 역시, 자신이 사랑을 많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을 받을 때보다, 사랑을 줄 때가 더 행복한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감정적인 것만을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음에 느낌이 없을 때, 또 감정이 식으면 사랑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은 성적인 욕구를 채우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 성경은 이 또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또한 성경은 조건적인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마 5:46)

 

사랑에 대한 이해

 

우리는 ‘사랑’이란 한 단어를 사용하지만, 그리스어에는 뜻에 따라 네 단어를 사용합니다. 첫째는 에로스인데, 이는 성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둘째, 스트로게는, 가족, 혈족에 대한 자연적인 사랑을 의미하고, 셋째, 필리아는 친구에 대한 우정의 사랑을 뜻하며, 넷째, 아가페는 조건이 없고, 자기 부정적이며, 기꺼이 자기를 남에게 주는, 희생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성경의 저자들이 사용하는 ‘사랑’은 바로 아가페를 말하는 것인데, 이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또한 아무런 조건 없는 아가페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했을 때가 아니라,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요일 4:9-10, 롬 5:8) 무조건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매체를 통해 이런 사랑을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치매가 걸린 아내를 십년 넘게 보살피면서 아내가 살아있는 것만으로 너무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의 사랑이 아가페 사랑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희생적인 사랑입니다.(요일 4:9) 우리를 위하여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은 희생적인 사랑을 가지고 계신 분이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우리에게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합니다. 첫째로,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 또 우리가 서로 해야 되는 사랑은 첫째로 오래 참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참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사회에서, 가정에서 우리가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뜨거운 감정이 없을지라도, 나에게 잘못한 사람이라도 내가 그를 오래 참는다면,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사랑은 온유한 것입니다. 온순하고 친절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특별히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까지도 온유한 자세로 대하고 친절히 대하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셋째로, 사랑은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시기와 질투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는 마귀에서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시기와 질투를 버리고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넷째로,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의 뜻은 나의 자랑으로 다른 누군가가 상처를 받게 된다면, 자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험을 잘 본 학생의 부모는 못 본 학생의 부모 앞에서 시험 얘기를 꺼내서 자랑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배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랜 기간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도 분별없이 사람들 앞에서 내가 얼마나 잘 났는지, 자식이 얼마나 좋은 대학에 갔는지를 자랑하곤 합니다. 그것은 사랑이 없는 사람들의 행동인 것입니다.

 

다섯째로, 사랑은 교만하지 않고, 무례히 행치 아니한다고 말합니다. 버릇없이 행하는 것, 즉, 사람들에게 마땅히 행할 도리를 따라 행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예의범절을 따르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성경은 마땅히 존경할 자를 존경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무례히 행한다면, 그는 사랑이 없는 사람이며, 나아가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지 수십 년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사랑이 없다면, 자신이 구원받은 자인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섯째로,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며,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는 것은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일곱째로, 사랑은 성내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의분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화를 내야할 상황에 있어서도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마땅히 대해야 할대로 대해주지 않을 때, 자신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생각될 때, 또는 무시당한다고 생각될 때, 자신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생각될 때, 그러할 때, 화를 내지 않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여덟째로,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나쁜 동기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대하거나 다른 사람의 행동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며, 또 한 가지는, 다른 사람들이 내게 또는 어떤 사람에게 한 잘못된 것들을 오래 기억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십년 전에 있던 문제를 생생히 기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사랑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도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인 것입니다.

 

또한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 사랑입니다. 나아가, 어려운 사람들의 짐을 져주는 것, 나의 짐을 다른 사람들에게 지우지 않는 것도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사랑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 중에 하나이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이 자연스러운 분이십니다. 하지만, 인간은 범죄한 이후, 사단의 영향을 받아 사랑이 부자연스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이 충족될 때, 사랑을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엔 그 사랑을 버립니다. 그것이 사단이 우리에게 준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살인과 거짓, 시기와 질투 등 온갖 더러움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것들이 자연스럽습니다. 용서보다 미워하는 것이 우리에게 자연스럽고, 상대방이 내 오른뺨을 칠 때, 왼뺨을 돌려대는 것보다 나도 상대방의 뺨을 치는 것이 우리에게 더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랑이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났다고 말하는데, 이는, 거듭난 사람이면,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 안에 사랑의 하나님의 영이 있으면,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면 그가 하나님께 속해있는지, 마귀에게 속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아버지이신 사랑의 하나님을 닮는 것이 마땅한 것이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또한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알고 있고,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나아가,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면서,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하나 뿐인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확실하게 드러내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이며, 희생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의 의무

 

요한은 7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라고 말합니다. 첫째로, 사랑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요한복음 13절 34-35절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우리가 주님의 믿는 제자들임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방법은, 사랑이 메말라가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점은 이러한 사랑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느 교회를 가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진실한 사랑을 보여준다면,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백 데나리온 빚진 자와 오십 데나리온 빚진 자를 예로 들으시면서, 둘 다 탕감 받았을 때에 누가 더 탕감해준 자를 사랑하겠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시몬이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더 사랑할 것이라고 대답했고, 예수님은 시몬의 말이 옳다 하시면서, 사함을 많이 받은 자가 더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죄 용서함을 받은 것이 큰 것임을 알수록, 다른 사람을 더욱 더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또, 은혜를 많이 받을 것을 알수록,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많이 베풀게 되는 것입니다. 즉,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망각한 것입니다. 또 주님께서는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탕감을 받고서는,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받은 자에게 빚을 갚으라고 한 사람의 이야기를 예로 드시면서, 사랑을 받은 만큼,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마땅한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셨습니다.너무도 큰 사랑을 받은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며 또한 우리의 의무인 것입니다.

 

결론

 

주님은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3:34) 또한 주님은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하나님께 속함을 알 것이며, 또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나타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뜨거운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교만하거나,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고, 붙들어주며, 세워주고, 위로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시며 우리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얼마 전, 9·11 테러에서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려고 했던 구조대원들이, 가족들에게 이별을 고하며, 사랑했다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아마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고 전해주시오. 내가 그들의 생명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게 되었소. 그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전해주시오.”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해야 될까요? 삶 가운데 서로를 사랑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 가운데 주님께서 계신 것이 나타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