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편] 11강 우리는 그분의 증인들

2019년 May 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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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우리는 그분의 증인들"

사람들은 과연 자기 영혼을 영원히 잃어버릴 위험에 처해 있는가? 주 예수님께서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7:14). 그리스도를 아는 어떤 증거도 보이지 않는 친구나 이웃의 상태는 어떠한가?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 이것은 우리를 미온적이거나 조용히 가만 있도록 내 버려 두지 않는 무서운 말씀이다. 어떻게 우리는 이 말씀을, 전체 그리스도인의 약 95%가 그들의 기본적인 의무인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등한시하는 만연된 양상과 조화시킬 수 있겠는가? 주 예수님은 2천년 전에 말씀하시기를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라고 하셨다(마 9:37). 필요나 기회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일군이 적다는 것을 명심하라.

주 예수님은 영혼들에 대한 관심이 지극하셔서 자신을 거절한 성읍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셨다(눅 19:41-42).그분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셨다"(벧후 3:9).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갈망하셨다(딤전 2:4). 예수님은 이 마을 저 마을 다니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전하시는데 자신의 삶을 바치셨다. 그분은 복음서의 기록이 보여주는 대로 친히 많은 영혼을 인도하신 위대한 개인 사역자이셨다. 그분은 그리스도 없는 영원의 두려움 속에 떠는 청중들을 직면하셨고 그들에게 영혼을 지옥에 보내는 권세를 지니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다(마 10:28).

증거의 요청

그분의 제자들을 부르시는 주님의 요청에는 실수가 없다."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 그분은 그들이 그물을 버리기를 원하셨으며, 고기보다 산 사람들이 있는 바다에 관심이 더 많으셨다(눅 5:4,10). 그분은 그들에게 영적인 농부로서 들로 나갈 것을 명하셨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얼매를 모으나니"(요 4:35-36). 그들은 사람들의 바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뿌려야 했다(막 4:14). 그들은 그 위에 기도로써 물을 주어야 했으며,하나님 나라를 위해 영혼들을 거둬들여야 했다. 그들은 종종 적대적인 세상의 법정에 선 증인들이었다(행 1:8). 하나님의 성령이 하나님의 메세지를 멸망으로 향하는 자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주어졌다. 이렇게 하여 초대 교회 신자들은 사방으로 나아가 말씀을 전파했다(행 8:4).

하나님께서 연약한 인간들에게 그토록 중대한 일을 맡기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레로이 에임은 표현하기를 "하나님은 날마다 하늘 한 복판에 요한복음 3장 16절을 기록하실 수도 있으셨다. 혹은 별무리 가운데 기록하실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그 대신에 그분은 복음을 전하는 막중한 임무를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복음은 거룩한 임무이다(살전 2:4). 그것은 우리의 생사를 좌우하는 일생일대의 중대사이다(롬 9:3). "여호와께 구속받은 자"는 침묵을 지킬 것이 아니라 "그같이 말해야 한다"(시 107:2). 군대라 불리우는 자가 귀신에 사로잡혀 무덤 가운데서 짐승같은 생활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구원을 받자 예수님은 그를 즉시 증인으로 파송하셨다(막 5:19). 한 부도덕하고 성경의 가르침에 무지한 여인도 구원을 받은 후 이방 지역에 대한 그분의 주요한 복음의 증인이 되었다(요 4;28-29, 39). 예수님에 의해 고침을 받은 소경은 아는 것이 별로 없었지만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고 말할 수 있었다(요 9:25). 어떤 성경구절도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을 소수 사람, 혹은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신자들에게만 맡겨진 영적인 은사로 분류하지 않는다. 비록 우리는 베드로처럼 외칠 수 없다 하더라도 안드레처럼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는 있다(요 1:40-42). 아무도 우리의 특별한 인접영역을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대신 해 줄 수는 없다. 아직 죄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경고하는 것은 다른 어떤 이가 아닌 우리의 책임이다.

증거의 장애 요소

무수히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이 중요한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데는 다음과 같은 무시할 수 없는 방해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1. 두려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비위를 거스리거나 논쟁을 야기하거나 아니면 "광신자"로 불리울 것을 우려하여 종종 움츠러든다. 때때로 우리는 단지 실패할까봐 머뭇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기를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린다"고 했다(잠 29:25).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방해하며, "두려워 말라"고 하신 그분의 빈번한 권면의 말씀을 거스리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우리는 담대함을 갖도록 기도할 수 있다(행 4:29). 바울과 같은 사람도 복음 전도에 있어서 두려움을 느꼈으며 하나님께서는 어떤 형편에서도 계속 복음을 전하겠다는 그의 결단을 축복하셨다(고전 2:3). 우리가 담대하면 다른 신자들이 격려를 받는다(빌 1:14). 두려움을 모르는 용기를 가진 자만이 일을 해 낸다.

2. 능력의 부족.
만일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드러내지 않으면 우리는 성공할 수 없다(빌 1:27). 주님은 제자들이 그들의 삶에 성령의 능력이 결여된 증인들이 되기를 원치 않으셨다(눅 24:49). 신실한 신자들의 증거는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행해진다(고전 2:4).

3. 훈련의 부족.
주님은 많은 시간을 제자들을 훈련시키는데 보내셨다. 만일 우리가 의기소침하고 적절한 성경구절을 찾을 줄 모른다면 곧 우리는 허둥대며 실수하다가 포기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 준비된 증인이 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무장시켜야 한다. 적어도 우리는 구원의 길이 명백히 제시된 몇몇 성경구절들은 암기하고 있어야 한다. 아래에 그 간단한 실례를 소개해 보겠다.

1)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를 원하신다(요 5:24).
2)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롬 3:23).
3) 죽음은 죄에 대한 형벌이다(롬 6:23).
4) 모든 사람은 회개하고 그들의 죄에서 돌이켜야 한다(행 3:19).
5)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벧전 2:24).
6)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다(요 1:1,14).
7) 구원은 행위가 아닌 은혜로 말미암는다(엡 2:8-9).
8)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은 영생을 소유하는 것이다(요일 5:11-12).
9) 우리는 그분을 영접하라는 초청을 받았다(요 1:12).
10) 우리는 예수님을 주로 고백해야 한다(롬 10:9-10).
11) 우리는 우리가 영생을 소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요일 5:13).

4. 행동의 부족.

이것은 다른 결함들이 바로 잡아진 이후에도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다. 새로운 회심자들은 종종, 이후에 보다 많은 것을 배운 때보다 신앙 초기에 한결 열심히 전도하곤 한다. 불필요한 지체는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구름을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전도서 11장 4절 말씀을 경험하게 할 것이다.

말을 통한 증거

전도는 말로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는 일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 우리가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할 수 있는지를 제시해 보겠다.

1.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히라!
다른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열정을 가지라. 그분은 비록 역사상 가장 논쟁의 대상이 되는 분이시지만 또한 가장 매력있는 분이시기도 하다. 교회나 실패한 그리스도인들이 아닌 그분이 주된 주제이다.

2. 주도권을 쥐라.
예수님은 찾는 자이셨다. 그분은 사람들이 그분께로 오기를 기다리지 않으셨다(눅 19:10).그분은 잃어진 영혼들을 찾아 여러 가정과 마을들을 두루 다니셨다.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를 찾고, 그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라.그들에게 관심을 가지라.

3. 공감대를 형성하라.
우리는 잘 들어주는 자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우리를 세상 및 그 부도덕함에 연루시키지 않는 공동의 관심사를 발견하도록 하라.세상에는 중대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며 그것들은 영적인 대화의 어떤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다.사람들의 주요 관심사나 필요들도 대화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4.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라.
하나님은 우리를 이끌어 영혼들을 만나게 하시기를 원하신다(행 8:26-39).그분께는 모든 개개의 영혼들이 중요하며,그분은 한 영혼에게 전도하도록 일군들을 기꺼이 먼 곳으로 보내고자 하신다(요 4:3-7).적어도 한 영혼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도록 기도하라!

5.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라.
전도의 씨는 말씀이다.그것은 사람이 거듭나는 수단이다(벧전 1:23). 우리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해야 한다(빌 2:16).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것이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게 하실 것이다(사 55:10-11).

6. 당신의 구원 간증을 이야기하라.
당신은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 확신을 가져야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분명하게 전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써 보고, 이야기해 보고, 그리고 그것을 사용해 보라. 그러면 다음 기회에는 보다 일목요연하게 그것을 이야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7. 적절한 질문들을 사용하라.
이것은 주 예수님이 사용하신 방법이었다. "당신은 영적인 일들에 관심이 있습니까?"라고 물어 보라. 일반적인 개인 전도시에 사용되는 질문은 이러하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날 사람의 생명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 설문을 조사하는 중입니다. 잠시 시간을 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오늘날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그 결국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를 물어보라. 가장 인기있는 주제 중 하나는 죽음이후에 삶이 있느냐는 문제이다.

생활을 통한 증거

우리의 증거는 말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의 생활과도 연결이 된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사람들이 기독교를 거부하는 가장 흔한 이유 중 하나는 "교회에 너무 위선자가 많다"는 것이다. 비록 이러한 지적이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거부하는 근본 이유라기보다는 종종 하나의 변명에 지나지 않기는 하지만 우리는 교회에 위선자가 단지 한 명뿐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너무 많은 것이라는데 동의할 수 있다. 우리 주님도 종교적인 위선자들을 책망하셨다(마 23:13-29). 우리는 마땅히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비방하기를 부끄러워 하도록 모범적인 삶을 보여야 한다(딛 2:8; 벧전 3:16).
비록 모든 신자들이 증인으로 부름받긴 했지만 모두가 다 하나님이 사용하시기에 적합하도록 자신을 준비시킨 자는 아니다. 아래의 특징들을 갖춘 자만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것이다!

1. 하나님의 양육을 받는 삶.
과실을 맺는 것은 참 포도 나무인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 날마다 그분에게서 양분을 취하는 것에 달려 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그분은 말씀하셨다(요 15:5).이러한 양육의 핵심 요소는 과실이 풍성한 매일의 헌신된 삶이다.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해야 한다(골 3:16).

2.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삶.
토기장이의 손에 들린 진흙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자질은 자기포기이다(렘 18:6).그리스도의 영의 지배를 받을 때 비로소 우리는 전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들이 성취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3.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삶.
성령이 우리의 삶에서 강처럼 흘러넘칠 때 사람들은 감동과 신선함을 느끼게 된다(요 7:38). "그리스도의 생명이 흘러넘치는 것"이야말로 효과적인 증거이다. 성경구절을 인용하거나 우리의 삶의 계획을 말해주는 것보다 일상 생활에서 친절을 베푸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훨씬 감동을 준다. 우리는 사람들로부터 격리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유용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눅 15:1-2). 주님은 사람들의 문제와 질병과 슬픔을 동정하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을 뿌리는 한편 그들에게 음식과 치유와 위로를 베푸셨다(마 13:37).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관한 사실들을 알고 있지만 그러나 이것은 구원과 거리가 멀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를 한 실존 인물과의 살아있는 관계 속으로 가져가는 결단을 필요로 한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은 이것을 깨달을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삶의 방식으로 소유하기를 원한다. 그분이 우리의 삶의 최우선적인 부분이 될 때 우리는 그 일을 최선으로 이루게 된다. 사실,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시다(골 3:4).

결론

우리의 믿음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우리의 가장 큰 동기는 그리스도의 사랑이어야 한다(고후 5:14).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고, 우리의 마음을 강권하는 지상명령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의 다음 동기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관심이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마태복음 22장 37-39절에 연결되어 있다. 이 이상의 동기가 더 필요하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불신자로부터 나오는 이러한 도전적인 말을 깊이 새겨야 한다: "만일 내가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듯이, 이생에서의 종교에 대한 지식과 그 실천이 다른 세상에서의 운명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진정으로, 확고하게, 그리고 일관되게 믿는다면 종교는 나에게 모든 것이 될 것이다. 나는 세상의 즐거움을 쓰레기로, 세상의 관심사를 우매한 짓거리로, 세상의 견해와 느낌을 허황된 것으로 던져 버릴 것이다. 잠이 나를 무의식 속으로 잠기게 할 때면 오직 종교가 나의 첫 생각이자 마지막 상념일 것이다. 나는 오로지 종교의 목적만을 위해서 수고할 것이다. 썩어질 양식이나 이 땅의 보물을 위하지 않고 다만 무한한 보화와 행복이 있는 천상적인 영역의 영광의 면류관을 위해서만 수고할 것이다. 나는 하늘을 위해서 얻은 한 영혼을 일평생을 희생할 가치가 있는 존재로 소중히 여길 것이다... 나는 영원 세계와, 얼마 후면 영원히 비참하거나 영원히 행복하게 될, 내 주변의 죽을 인생들에게만 눈길을 돌리고자 힘쓸 것이다. 나는 단지 이 세상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일시적인 행복만을 증진시키고자 애쓰며 일시적인 복만 얻고자 수고하는 모든 사람들을 참으로 가련한 자들로 여길 것이다. 나는 세상으로 나아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외칠 것이며,나의 멧세지의 본문은 `만일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