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편] 13강 주의 만찬

2019년 May 1일 ()

Series:

"제13과 주의 만찬"

이 예식이 제정된 때는 주님께서 배반당하시는 밤이자 죽음을 당하시기 전날 밤이었다. 그 때는 후에 최후의 만찬으로 알려진 자리를 갖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모인 매우 감동 깊은 순간이었다.세계 모든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은 이 장면이 그림으로 표현되자 즉시로 그것을 알아보았다. 초기 신자들은 그 모습이 그들의 기억에 뚜렷이 새겨졌으므로 로마 지하동굴 벽에 그것을 새겨 놓았다. 유대인의 유월절 밤에 주 예수님은 전혀 새로운 의식을 소개하셨다. 그분은 떡을 취하여 축사한 후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며,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고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다(마 26:26-28). 다른 두 복음서 기자들도 동일한 말씀을 기록해 넣었다(막 14:22-25; 눅 22:14-20).

만찬의 이름들

그것은 주님께서 친히 소집하셨고, 친히 가장 중요한 손님이 되신 까닭에 주의 만찬으로 불리운다(고전 11:20). "주의 식탁"(고전 10:21)이란 표현은 보다 넓은 의미를 지니며, 만찬뿐만 아니라 그분의 사람들을 위한 그분의 모든 준비를 포함한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그 예식에 참여할 때 그리스도와 및 성도들과 나눔, 혹은 사귐을 갖게 되는 까닭에 교제라고도 불리우며(고전 10:16), 일반적인 식사방법을 단순히 나타내 주는 까닭에 떡을 떼는 예식이라고도 불리우며(행 2:42; 20:7; 고전 10:16), 주님의 분부의 표현을 근거로 주님을 기념하는 예식이라고도 불리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주님께서 떡과 잔에 대해 축사하신 관계로 "사례"(thanksgiving)를 뜻하는 "성찬"(eucharist)이란 표현을 사용해 왔는데(마 26:26) 이것은 성경의 실례가 아니다.
어떤 교회들은 "성례"(sacrament)란 표현을 만찬에 적용시키는데 이 말은 군대(sacramentum)에 입대할 때 로마 병사들이 하는 충성의 맹세로부터 나온 말로서 후대 사람들에 의해 그 뜻이 상당히 왜곡되어 왔다. 그 교회들은 성례를 하나님께서 그분의 은혜를 수여하시는 의식("은혜의 수단")으로, 그리고 참예자들에게 어떤 초자연적인 능력을 주는 의식으로 간주한다. 또 어떤 이들은 그것이 죄사함과 관계가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러한 가르침이 일절 없다. 성례적인 의미를 강조하는 사람들과 대조되는 부류는 그것을, 상징물을 통해 영적인 실체를 반영하는 기념예식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유대인의 짐승제사는 결코 죄를 제거해 주지 못했으며, 다만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 예수님의 피를 예표해 주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오직 그분의 피만이 죄를 제거할 수 있다(히 9:12-14).

만찬의 역사적인 배경

주의 만찬은 유대인의 유월절 밤에 제정되었다.그 때로부터 1500년 전 하나님의 손이 이스라엘을 애굽의 속박에서 해방시켰다. 그분의 명령을 따라 그들은 애굽 전역에 임할 심판을 면할 보호책으로서 흠없는 어린 양을 죽여 그 피를 그들의 집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다(출 12장). 그들의 영구적인 규례로서 제정된 그 절기의 세부 사항은 한결같이 깊은 의미를 지녔다. 그것은 세상 죄를 짊어짐으로써 우리를 하나님의 심판에서 보호할 그 위대한 제물을 가리켰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에 자신의 어린 양을 준비하고 계셨다(창 22:8; 사 53:7). 예수님은 세례요한에 의해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크게 환영을 받았다(요 1:29). 그분의 영광스런 칭호 중 하나는 어린 양이다(계 5:6). 그분은 유월절 절기의 성취셨다."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 옛 절기는 다가올 보다 큰 성취의 그림자에 불과했다(골 2:17; 히 10:1).
모든 경건한 유대인들은 유월절 절기를 충실하게 지켰다(마 26:17). 그것은 그들의 구속을 기념하는 절기였다. 이 거룩한 규례의 밤에 예수님은 떡과 잔의 기념 규례를 제정하셨다. 그 이후로 그 예식은 신자들의 마음 속에 그들의 구원을 위해 내어준 몸과 흘려진 피를 기억나게 했다. 그것은 유월절이 유대인들에게 그러했듯이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심히 거룩한 예식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유월절의 대치였다. 이스라엘은 많은 의식들을 준수했으나 그리스도인의 교회는 오직 이 한가지 기념적인 규례만이 주어졌을 뿐이다.
주 예수님은 신자들에게 규례로서 주어진 예식을 사도 바울에게 직접 분부하셨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그분은 말씀하셨다(고전 11:23-25). 주의 만찬은 신자들의 예배의 정규적인 부분이 되었다(행 2:42,46). 초대 교회는 그 규례를 그들의 집회의 중심으로서 매주마다 지켜 행했다(행 20:7). 그것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에 준수되었다. 소위 초대 교회 "교부들" 혹은 지도자들은 그 예식이 주일, 혹은 일요일마다 지켜졌다고 기록했다("순교자 저스틴", "열두 사도의 교훈집").

만찬의 기념

1. 누가 참석할 수 있는가?
분명 유월절이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었을진대(출 12:43) 주의 만찬은 그리스도인들만을 위한 것이다. 주님께서 처음 그 예식을 제정하신 것은 "그분의 백성"을 위해서였다. 그분께서 부활하신 후 그분을 기념하여 떡을 떼기 시작한 사람들은 제자들이었다. 어떤 신자들은 만찬에 참예할 때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돌아보지 않은 관계로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경고를 받았다(고전 11:18-31).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복음, 혹은 인격을 해치는 교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요이 9-10절; 갈 5:12-13)은 물론, 판단받지 않은 악 가운데 계속 머물고 있는 사람들(고전 5:12-13)도 마찬가지로 출교시켜야 했다. 반면에 적극적으로 말해서,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고백하고 그러한 믿음과 일치된 삶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만찬에 영접되어야 한다.

2. 어떤 절차가 요구되는가?
우리는 주님께서 이 기념예식을 제정하신 장면에서 이에 대한 중요한 지침을 보게 된다. 주의 만찬은 정교한 예식보다는 단순성으로 특징지워진 것으로 보인다. 그분은 어떤 정해진 규율이나 절차를 명시하지 않으셨다. 그 다락방은 훌륭하게 장식된 예배처소가 아니라 식사와 교제를 위한 긴 식탁만이 준비된 조촐한 방이었다. 그분이 홀로 예식을 주관하셨다. 준비물은 식탁에서 늘상 볼 수 있는 두가지 사물인 떡과 잔뿐이었다. 비록 그 당시에 누룩 없는 떡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긴 하지만 아무 특별한 종류의 떡도 요구되지 않았다. 떡의 종류보다는 오히려 예식에 참예하는 자가 도덕적으로 깨끗할 것(누룩없는 상태)이 강조되었다(고전 5:6-8). 잔에는 "포도나무 열매"가 담겨 있었다(막 14:25; 마 26:29). 포도 열매가 어느 정도 발효되거나 어느 정도 물에 섞여져야 하는지는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으나 성경은 아무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중요한 것은 떡과 잔이 주 예수님의 몸과 피를 상징한다는 것을 바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상징물의 재료가 아닌 주님께 마음이 집중되어야 한다.모든 제자들이 떡을 떼고 잔을 나누었다. 고린도전서 14장 26-34절은 떡을 떼러 모인 신자들의 모임에 관한 고린도전서 11장 내용의 연속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여러 형제들에 의한 참여가 암시돼 있으며, 혼란이 아닌 질서가 강조되었다. 그리고 교제의 식사가 종종 만찬과 관련되었다.

3. 주의 몸을 어떻게 분변하는가?(고전 11:29)
우리는 상징물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하는데 그것은 그 상징물들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씻어주신 주 예수님의 사역을 증거해 주기 때문이다(히 9:26).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한다(고전 11:28-32).어떤 이들은 그릇되게도 만찬을,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먹고 자신의 피를 마시는 것에 대해서 하신 말씀과 연관시키고 있다(요 6:53).그러나,그 말씀은 만찬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을 힘입기 위한 신자의 합당한 자세에 대한 것이다."이것은 내 몸이니"라는 말씀은 "나는 문이니"라는 말씀과 상통한다.두 경우 모두 여러 경우에 나타나는 비유적인 진술에 속한다.이 상징물들과 관련하여 야기되는,기적적인 변형을 시사하는 몇몇 그릇된 가르침들을 개괄하면 다음과 같다.

1) 화체설(化體說)
이 견해는 상징물들이 "그리스도의 몸과 영혼 및 신성"자체로 변화된다는 이론이다. 이 "그리스도의 실질적인 임재"는 참예자들이 그분의 실제 몸을 먹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이론에 의하면 갈보리의 희생이 매 예식 때마다 반복되고 산자와 죽은 자들을 위해 드려진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10-18절은 결코 다시 드려질 수 없는, 죄를 위한 단 한번뿐인 되풀이되지 않는 제사가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이 이론을 거부한다.주님의 제사는 완성되었고 완전하다.

2) 공재설(共在說)
이 견해는, 떡과 잔은 변하지 않지만 그러나,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몸의 실체가 임재하여 참예자들에게 수여된다는 이론이다. 성경에는 이러한 가르침이 일절 없다.

3) 영적 임재설.
이 견해는 "그리스도께서 마치 뼈와 골수에 스며들듯이 우리 안에 자신의 생명을 전사시키시기 때문에" 참예자들은 만찬시에 그리스도를 취하게 된다는 이론이다(칼빈). 이 이론 역시 아무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

4. 우리는 떡을 뗌으로써 무엇을 성취하는가?
만일 우리가 이 규례를 단순히 실행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유언을 실천함은 물론 우리가 그분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게 된다. 이것은 결코 규정주의가 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는 사도들의 모본에 일치하게 된다. 신자들의 무리로서 우리는 함께 우리의 방법이 아닌 주님의 방법대로 그분을 기념한다. 우리는 그분께서 복음을 통해서 생명과 불멸성을 가져오셨고 우리가 그 안에 포함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기뻐한다. 우리는 떡과 잔에 참예할 때 믿는 무리의 일원으로서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참예한다.한 떡 속에 우리의 연합이 표현되어 있다(고전 10:17). 잔은 교제, 혹은 공동의 사귐을 말해 준다(고전 10:16).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우리는 그분께서 이루신 모든 것 안에서 그분과 한 몸이다. 우리는 죄와 의에 대하여 그분의 태도를 공유한다. 우리는 떡을 떼고 잔을 마실 때마다 자주 주님의 죽으심을 선포한다(고전 11:26). 이 예식은 그 자체가 구원의 멧세지이다. 그 이행 기한은 "그분이 오실 때까지"라고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매 예식은 주님의 재림을 앞 둔 마지막 예식이 될 가능성이 있다.

만찬을 위한 준비

구약성경을 살펴볼 때, 유월절을 지키는데는 여러가지 준비가 요구되었다. 아무도 기분내키는대로 임의로 참예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신약의 성도들에게도 다음과 같은 주의깊은 준비가 요구되었다.

1. 자기 점검.
주의 만찬을 위한 참된 준비는 자기 점검으로부터 시작된다(고전 11:28-32). 이것은 참예자를 제외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먼저 주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살피고 모든 기억나는 죄를 자백해야 한다. 그런 다음 다른 사람들(특히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를 돌아보아야 한다. 예식에 참예하기 전에 먼저 다른 신자들과의 불편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노력해야 한다(마 5:23-24). 성경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지 않도록 자신을 돌아보는 문제를 소홀히 하지 말것을 경계하고 있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이 부분을 경히 여김으로 말미암아 육체적인 질병과 죽음이 초래되었다.

2. 묵상.
만일 우리가 예식에 참예하러 오기 전에 여가활동을 즐겼거나 주님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우리의 준비는 실패하고 만 것이다. 우리는 주님을 기억하기 위해 우리 마음을 준비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신령한 노래를 부르거나, 신자들이나 가족과 함께 주 예수님에 관해 교제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주님께 미리 준비된 것을 드리게 된다. 다윗은 말하기를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삼상 24:24)고 하였다. 이같이 미리 우리 자신을 준비할 때 주의 만찬 예식은 생동감 없는 진부한 분위기를 벗어나게 된다.

결론

예배는 신자의 최고의 의무이자 특권이다(요 4:23; 눅 10:41-42). 우리는 제사장으로서 영적인 제사를 드린다(벧전2:5). 그분께서 분부하신대로 정규적으로 주님을 기념하는 일은 여가활동이나 가족모임이나 그밖의 다른 임무들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 제사장이라는 중요한 직분을 가진 자로서 우리는 성도의 무리 가운데서 우리의 입술의 열매인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릴 특권을 지니고 있다(히 4:17-18). 우리는 또한 하나님께 하나의 예배 행위로서 물질을 드려야 하며(빌 4:17-18), 끝으로 우리의 몸을 산 제사로서 그분께 드려야 한다(롬 12:1-2). 예수님은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