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편] 2강 그리스도론 개관

2019년 May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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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그리스도론 개관"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 가운데 행하셨으며, 가장 위대한 생애를 보내셨다. 어느 면으로나 흠잡을데 없는 그분의 성품은 심지어 그 대적으로부터도 찬사를 불러 일으켰다. 그분의 삶은 독특했다. 어떤 불완전한 인간도 그분을 흉내낼 수 없었다.어떤 무신론자도 그분을 적절히 설명할 수 없다. 그분에 관해서는 다른 어떤 대상에 대한 책보다 더 많은 책이 씌어졌으나 그러나 그분은 우리에게 아무 글도 남기지 않으셨다. 그분은 그 어떤 사람보다도 큰 충격을 역사에 끼치셨다. 그분은 역사를 B.C.와 A.D.로 불리우는 두 시대로 나누게 하셨다(before Christ 와 Anno Domini(우리 주의 해)). 그러나 그분은 정치에 전혀 관여하지 않으셨으며, 아무 지상 군대도 지휘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역사상 가장 논쟁의 대상이 된 분이셨으며, 극심한 반대에 직면하셨으며, 냉혹한 핍박을 받고 무참히 죽임을 당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비폭력을 전파하셨으며, 보복과 무력 사용을 금하셨다.그분은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주된 가치는 그 도덕적인 뛰어남에 있었다. 그분의 지난 모습과 현재 모습 및 행하신 모든 것은 영원 전으로부터 지상 생애를 거쳐 영원 이후까지 펼쳐 있다.

1. 그분의 이름들
그분은 예수로 불리웠는데 그것은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시기"때문이다(마 1:21). 예수란 "하나님(여호와)께서 구원하시다"란 뜻이다. 그분은 거룩한 구주셨다(딛 2:13; 사 43:11). 이 구주는 주 그리스도셨다(눅 2:11). 그리스도, 혹은 메시야 즉 기름부음받은 자로서 그분은 약속된 구원자셨다(요 4:25-26). 그분은 종종 자신을 인자로서 말씀하셨는데(눅 19:10), 이는 그분께서 자신을 낯춰 인간이 되셨음을 의미한다. 반면에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는데, 그분의 대적들은 그 칭호를 신성의 선언으로 이해했다(요 10:33,36).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요(요 1:1,14), 하나님의 어린양이요(요 1:29), 알파와 오메가 즉 시작과 끝이요, 처음과 나중이셨다(계 22:13). 무엇보다도 그분은 왕중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불리웠다(계 19:16).

2. 그분의 영원 전 모습
그분은 지어진 존재가 아니라 만물의 창조자이셨다(요 1:3, 10; 골 1:16-17; 고전 8:6; 히 1:2, 10). 영원 전부터 그분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이셨다(요 1:1-2). "나셨다"는 표현은 그분에 대해서 출생의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다. "독생하셨다"(요 1:14,18; 3:16,18)는 말은 유일한 아들이 아니었던 이삭의 경우에서 보여지듯이 "하나뿐인"(unique)이란 의미이다. "처음 나셨다"는 표현은 골로새서 1장 18절과 계시록 1장 5절에 나타나 있듯이 그분이 최고의 위치에 계셨음을 묘사한 말이다. 주님은 영원으로부터 오신 분이셨다(미 5:2; 사 9:6; 잠 8:22-23). "스스로 계신 분"으로서 그분은 만물보다 먼저 계셨다(요 8:58; 출 3:14). 그분은 세상이 있기 전에 아버지의 영광을 함께 누리고 계셨다(요 17:5).

3. 그분의 구약 시대의 모습
주 예수님은 구약 시대에 처음으로 모습을 나타낸 것이 아니었다. 주님은 모세와 선지자들의 글을 통해서 자신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셨다(눅 24:27,44). 그분은 성경의 주제와 성취셨다. 그분은 자신의 출생지(미 5:2), 출생 방법(사 7:14), 죽음의 모습(사 53장) 등을 포함한 수백가지 예언을 성취시켰다. 그분은 모세보다 큰 선지자(신 18:18-19)와 영원히 수고하실 제사장(삼상 2:35)과 그 보좌가 영원히 지속될, 다윗보다 큰 왕(삼하 7:12-13)에 관한 약속들의 성취자셨다. 그분은 제사들과 유월절과 같은 절기들 속에 예시된 약속들을 성취하실 분이셨다(고전 5:7). 우리는 구약 성경에서 대개 여호와의 천사나 사자로서 하나님이 눈에 보이게 나타난 예들을 분명히 볼 수 있다.이들은 신현(神顯)으로 불리운다. 여호와의 사자의 행동과 사역들은 분명히, 지음바 되지 않은 존재인 하나님의 행동과 사역들이다. 창세기 22장 11-18절,32장 1-30절(호 12:4-5 참조), 출애굽기 3장2-6절(막 12:26), 여호수아 5장 13-15절, 사사기 6장 11-12절, 13장 18-22절 등이 그 예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상징들 속에서 그리스도를 보게 된다. 상징은 신약 성경의 영적인 진리 특히 메시야에 대한 구약 성경의 예시이다. 예를 들어 민수기 21장의 구리뱀은 중생을 가져오는 믿음의 대상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요 3:14-16)를, 출애굽기 17장 6절과 민수기 20장 8-12절의 지팡이로 맞는 반석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구주(고전 10:4)를, 그리고 창세기 14장의 멜기세덱은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히 5-7장)를 나타내 준다.

4. 그분의 인간으로서 오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이것이 그분의 화육(化肉)이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딤전 3:16). 한분 하나님께서 친히 육신을 취하심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의 속성이 한 인격 안에서 놀라웁게 결합되었다. 하나님의 속성들은 다만 가리워졌을 뿐 포기된 것이 아니었다. 그분의 인성은 완전했다. 그러나 그분은 죄가 없으셨다(히 4:15). 이러한 결합이 빌립보서 2장 6-11절, 로마서 1장 3-4절과 9장 5절, 히브리서 2장 14절 등에 나타나 있다. 복음서의 해설들은 사건들의 강조점이나 순서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데 이는 각각 주제에 접근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주 예수님은 마태복음에서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제시됐고, 마가복음에서는 온전하신 종으로,누가복음에서는 인자(그분의 인성을 강조)로,그리고 요한복음에서는 하나님의 아들(그분의 신성을 강조)로 제시됐다. 그분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처녀의 몸 안에 기적적으로 잉태되셨다(사 7:14; 마 1:21; 눅 1:34-35). 아이는 모든 면에서 정상적으로 성장했다(눅 2:52). 그분의 어릴 적 생활에 대한 기록은 한번밖에 나오지 않는다(눅 2:42-51). 그분은 30세가 될 때까지 베들레헴에서의 출생과, 유아 때에 잠시 애굽으로 피신 간 일을 제외하고 줄곧 이스라엘 동네 나사렛에서 지내셨다.

5. 그분의 공생애의 시작
메시야의 출현은 그분에 앞서 영적으로 그 길을 준비할 사람에 의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로 약속돼 있었다(사 40:1-5). 세례 요한이 이러한 예언을 성취시켰다(마 3장; 막 1:1-11; 눅 3:2-18; 요 1:19-36). 그의 사역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회개를 개인적으로 촉구하는 것이었다(눅 13:3) .주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구주께서 세례를 베푸셔야 한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선지자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자신의 공사역을 시작하셨다(마 3:14-16). 주님은 오직 "의를 이루기 위해서" 그같이 행하셨다. 그분만이 홀로 회개할 필요가 전혀 없으셨다. 그분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의 성령이 눈에 보이는 방법으로 그분의 사역 시작을 인준하셨고,성부 하나님의 그분의 아들을 칭찬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이렇게 해서 "은둔의 시절"이 끝이 났고, 그분은 열 두 제자를 그분과 함께 있도록 부르시고 이어서 약 3년간의 극적이 순회 사역을 시작하셨다.

6. 그분의 시험과 변화
주 예수님은 갈릴리, 유다 및 요단 저편에서 사역하시며 결코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으셨다. 이 기간에 일어난 많은 사건들 중 특히 그분의 위(位)의 영광과 관련하여 두 가지 사건이 주목할 만 하다. 그분은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시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사단의 시험을 받으셔야 했다(마 4:13-11;눅 4:1-13). 이 시험의 세 가지 영역은 굶주림과 영적인 교만과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그분은 이 시험을 이김으로써 자신의 죄 없는 성품을 입증하셨다. 한편 그분의 신적인 영광의 한 면을 드러내는 놀라운 광경이 변화산 상에서 세 제자들에게 나타났다(마 17:1-8; 막 9:2-9; 눅 9:28-36). 거기서 그들은 그분의 영광을 보았는데 그것은 위대한 빛으로서 빛을 발하는 하나님의 영광이었다. 그분의 얼굴이 햇빛처럼 찬란하게 빛났다. 다시 한번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을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와 같이 시험과 변화는 예수님만이 지니시는 절대 속성을 드러내었다.

7. 그분의 이적과 가르침
구약 시대의 모세, 엘리야, 엘리사 처럼 주 예수님은 많은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 그분은 이 일들을 믿음의 근거로 제시하셨다(요 14:11). 이적들은 비록 위조될 수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자연법칙을 완전히 초월한 사건들로 간주된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이적이 그분이 하나님께로서 온 것을 증명한다고 믿었다(요 3:2). 그분의 이적은 다양했다. 그분은 여러 종류의 질병과 불구들(앉은뱅이, 중풍병자, 절음발이, 소경, 문둥병자 등 )을 즉각적으로 고치셨다. 그분은 자연을 다스리는 능력(물 위로 걸으심, 폭풍을 잠잠케 하심)을 드러내셨다. 그분은 사물을 만드셨다(5천명을 만드심,물로 포도주를 만드심). 그분은 악한 영들을 명하여 그 희생자들의 몸에서 떠나가도록 했다. 그분은 죽은 자를 살리셨다(나사로, 나인 성의 과부의 아들, 야이로의 딸). 그분의 이적은 신성을 입증하고 성경을 성취했다. 그것은 또한 고통 당하는 자들에 대한 그분의 연민을 드러냈다. 그분은 무리를 모으거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이적을 행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종종 고침을 받은 자들에게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부탁하셨다.
그분의 교수 방법은 빈번한 비유 사용으로 특징지워졌다. 이 비유들은 영적인 진리를 보여주는 인간이나 자연적인 사건들에 대한 짧막한 이야기들이다. 그분의 유명한 산상설교는 그 어떤 설교와도 비교되지 않는다(마 5-7장). 그것은 당시의 청중을 놀라게 했다(마 7:28-29). 그분의 권세있는 가르침들, 특히 요한복음에 나타난 가르침들은 인간에게서 나온 어떤 가르침보다 뛰어난데 특히 "나는...이다"라는 진술을 포함하는 가르침들이 그러하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가르침들을 충성스레 따를 것을 요구하셨고, 그 가르침들로 인해 가정과 가족 내에서 분열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하셨다(눅 12:51-53).

8. 그분에 대한 반대
선하고 의로운 모든 것이 주 예수님 안에서 표현되었다. 그러나 선은 악의 반대를 받게 마련이다. 성경은 "사단"혹은 "마귀"로 불리우는 타락한 영적인 존재에 의해 그러한 반발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계 12:9). 사단은 어린 예수님을 살해하고자 했고, 그분의 공사역 전체에 걸쳐 그분을 훼방했으며, 마침내 그분을 없애려는 음모를 꾸미게 했다(눅 22:2-4). 사단은 갖가지 술수를 동원해 사람들로 하여금 악하게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록 했다.

9. 그분의 죽음, 부활, 승천
4복음서는 그 어느 성경보다도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서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이것이 성경의 중심 주제이다. 그리스도의 죽음 없이는 복음 멧시지의 골자인 용서, 구원 및 영생의 소망이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분의 희생은 이사야 53장, 시편 22편 등과 같은 성경본문의 예언적인 성취였다. 주 예수님은 깨달음이 더딘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해 여러 차례 예고하셨다(마 16:21; 17:9-12, 22-23; 20:18-19). 그분의 대적들은 그분이 다시 살아난다는 기상천외의 예언을 듣고는 로마 관원들에게 그분의 무덤을 경비할 것을 요청했다(마 27:63-66). 그리스도는 후에 성경, 혹은 그 자신의 말씀을 믿지 않음으로 인해 제자들을 꾸짖으셨다(눅 24:25-27). 그분의 임박한 죽음과 그 구속적인 의미를 염두에 두고 그분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날 밤 기념 만찬을 제정하셨다(마 26:-28;막 14:22-24; 눅 22:19-20). 유다의 배반은 그 지불된 값까지 성경의 예언을 성취했다(슥 11:12-13). 동산에서의 마지막 기도와 고민, 대적들의 음모, 제자들의 피신 및 희롱과 모욕의 재판이 그분의 마지막 시간들을 장식했다.
로마 총독은 그분에게서 아무 잘못도 발견치 못했으나 대중의 압력에 못 이겨 갈보리 혹은 골고다로 불리우는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도록 그분을 사람들에게 내어 주었다. 그분의 고난의 자세한 내용과 "마지막 일곱 마디"가 감동적인 묘사 속에 나타나 있다. "다 이루었다!"(요 19:30)는 마지막 외침은 그분의 구원 사역이 끝났음을 널리 공표했다. 비록 그분은 인간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셨지만, 기이한 방법으로 인간의 사악함이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이루는데 사용되었다. 참으로 놀랍게도, 그분의 고난은 대리적인 것이었으며, 그분은 하나님께 징벌받는 자로서 성경을 성취하셨다(사 53:4). 그분은 두 강도와 한 무리를 이룬 채 죽으셨으며, 부자의 무덤에 묻히심으로써 또한 예언을 성취하셨다(사 53:9). 로마 병정과 큰 돌로 봉해진 무덤은, 그분께서 예고하신 대로 그분이 제 삼일에 살아나시는 것을 막지 못했다(마 28장; 막 16장; 눅 24장; 요 20장). 그분은 그들의 눈 앞에서 하늘로 올리우시기 전에 40일간 수백명의 제자들에게 모습을 나타내셨다(고전 15:6; 행 1:3-9). "의심하는 도마"에게 내밀어진 그 못에 찔린 손은 어떤 의심도 남기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는 진실로 부활하셨다(요 20:25-28).

10. 그분의 다시 오심과 다가 올 왕국
그분의 부활과 승천에 대한 약속들은 다음 말씀과 연결되어 있다: "...내가 다시 와서..."(요 14:3). 주님은 종종 이 사실을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 24:3)라고 질문하였다. 메시야의 오심에 대한 구약 성경의 예언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그분이 고난과 거절을 당할 것이라는 예언이고, 다른 하나는 그분이 왕으로 통치하실 것이라는 예언이다. 종종 이 두 가지 구별되는 사건들은 외관상 한 사건인 양 나타났다(사 61:1-2; 눅 4:18-21). 이것이 종종 선지자들을 당황케 했다(벧전 1:10-12). 이제 그것은 훨씬 분명해 졌다. 그 첫번째 오심은 고난받는 메시야에 관한 모든 예언들을 문자적으로 성취했다. 그 두번째 오심은 동일한 문자적인 성취로,즉 평화와 의의 지상적인 통치로 관련 성구들을 성취케 할 것이다(사 11:6-9; 65:18-25).두번째 오심과 관련된 사건들은 이러하다.

(1) 살아있는 신자들과 죽은 신자들이 하늘로 끌어 올려져 "공중에서"그리스도를 만난다. 흔히 이것을 가리켜 "휴거"라 한다(살전 4:16-17).

(2) "대환란"이라 불리우는 기간이 지상에서 시작된다(계 7:14).

(3) 환란에 이어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심판주로서 신자들과 함께 다시 오신다. 흔히 이것을 가리켜 "지상 재림"이라고 부른다(계 19:11-16).

(4) 그리스도의 천년간의 지상 통치가 이어진다(계 20:4-6).

이 "하나님의 왕국"혹은 "그리스도의 왕국"(이 두 용어는 바꿔 쓸 수 있다)은 또한 신자들을 당황케 했다. 그분의 왕국은 그분의 백성에 대한 통치를 의미한다.현재 신자들은 그 나라에 있다는 점에서 거기에는 현재적인 측면이 있다(골 1:13). 그 나라는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실 때에 그분의 인격 안에 존재해 있었다(눅 17:20-21;11:20; 마 12:28). 아울러 우리는 장차 올 가시적인 통치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거기에는 미래적인 측면도 있는 것이다(행 1:6; 계 11:15).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이 있게 될 것이다(계 21:1; 사 65:17). 땅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합 2:14). 모든 무릎이 그분 앞에 꿇을 것이다(빌 2:10-11).
현재 그분은 하늘 예배의 중심이시다(계 5:8-14). 다가오는 날에 반드시 최후심판이 있게 된다. 만물이 하나님의 아들의 손에 맡겨졌다(요 5:22). 그분은 크고 흰 보좌에 앉아 믿지않는 자들의 죄를 심판하실 것이다(계 20:11-15). 그분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믿는 자들의 삶과 봉사에 대해 심판하실 것이다(고후 5:10; 고전 3:11-15).

결론

회의론자들은 여기에 진술된 진리들의 기초에 대해서 종종 의문을 제기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역사적인 인물인지 확신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와, 타키투스, 수에토니우스, 플리니 등과 같은 로마 작가들은 그분이 지상에 계시던 초기 1백년 동안 그분에 대해서 기록했다. 또한 신약성경 문헌들이 최초 문헌과 동일한 진짜 사본인지 여부가 의문시돼 왔다. 그러나 고대 세계의 어떤 기록도 기록보존에 있어 성경에 비교되지 않는다. 파손된 사본 조각들은 말할 것도 없고 수천 편의 원형 사본들이 그대로 보존되었는데 어떤 것들은 원본의 연대와 거의 차이가 없다(현재 영국 멘체스타 대학 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요한복음 단편이 한 예임). 이와 대조적으로,모든 주요한 그리이스와 로마의 작가들의 작품은 원 작품과 가장 오래된 사본 사이에 1천년의 간격이 존재한다. 게다가 아무 논란 없이 받아들여지는 이들 역사적, 문학적 작품들의 사본들은 겨우 열 편 남짓할 뿐이다. 그럼에도 아무런 심각한 의문도 제기되지 않는다. 신약성경만큼 그토록 비평적으로, 그토록 집요하게, 그리고 그토록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어 온 작품은 없다. 그리고 그 책만큼 역사적으로, 고고학적으로 여러 측면에서 그토록 철저하게 진정성이 확인된 작품도 이제껏 없었다. 그러나 우리의 신뢰의 최대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에 있다.이 기록된 말씀은 그 무수한 예언적인 성취로 인해 스스로의 권위를 확증하고 있다. 살아계신 말씀인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인격의 뛰어남을 신뢰하라고 강권하신다. 그분을 넘어서는 아무 갈 곳이 없다(요 6:67-68). 그분은 참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