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편] 6강 교회 생활

2019년 May 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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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교회 생활"

성경 속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은 자신의 광대한 피조 세계 가운데 특별히 인간을 사랑하시고 돌보신다는 사실을 발견한다는 것은 매우 감동적인 일이다.시편 기자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께 친밀히,그리고 개인적으로 알려졌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크게 기뻐하였다(시 139:13-17).이 자비로운 손길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모든 사람이 멸망에서 구원을 얻도록 자신의 독생자를 내어 주게 하였다(요 3:16).개개인으로서 우리는 주 예수님을 영접해야 한다(요 1:12).새로운 출생은 육체적인 출생과 마찬가지로 독특한 사건이다(요 3:5).성숙과 발전조차 하나님께 대한 개인적인 반응에 의존한다.이러한 사실은 우리 자신이 개별적인 삶을 사는,하나님이 보시기에 단독적인 신자들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갖게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거리가 멀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하나가 되는 것은 그분의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요일 3:1; 엡 3:15).우리는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다(벧전 2:9-10; 계 21:3).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또 다른 나라의 시민이자 천국 백성으로 바라보신다(빌 3:20).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가리키는 성경의 언급은 대부분이 복수형이다.가령,"믿는 자들"(행 5:14),"제자들"(행 9:1),"성도들"(엡 1:1),"형제들"(약 2:1),혹은 다소 빈도가 덜한 "그리스도인들"(행 11:26) 등이 그러하다(한편 성경에는 "일반 사람들"을 뜻하며,소위 "성직자"와 구분되는 "평신도" 혹은 "평교인"이란 말이 일절 사용되지 않았다.) 대부분 신약성경의 서신들은 신자들의 무리에게 씌어졌다.우리는 서로,그리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연합을 이룬 채 함께 살아가는 자들로 묘사돼 있다(엡 2:5-6,21-22).우리는 분리된 부분으로서가 아닌 전체로서 움직이도록 의도돼 있다(고전 12:12-27).사도 시대에 주님은 날마다 믿는 자들의 무리에 구원얻은 자들을 더해 주셨다(행 2:47).이 무리는 영어로 "교회"로 옮겨진,"에클레시아"로 불리웠다.이것은 신자들의 실제적이고,지역적이고,기능적인 몸이었다.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은 각 신자들이 그러한 몸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교회의 정의

"교회"란 단어는 "에클레시아"의 참된 의미와 거리가 먼 많은 개념들을 전해 준다.어떤 이들은 그것을 건물로 생각한다."교회가 모퉁이에 있다."어떤 이들은 그것을 예배를 비롯한 일련의 집회들과 관련시킨다."우리는 일요일이면 교회에 간다." 때때로 그것은 일련의 활동들로 여겨진다."우리는 언제나 교회에서 매우 활동적이었다." 또한 종종 그것은 제도,혹은 조직으로 여겨진다."우리는 로마 카톨릭 교회에 속해 있다." 이러한 개념들이 성경적인 의미에 대한 아무 언급 없이 교회란 단어와 관련하여 생성돼 왔다.
"에클레시아"란 단어의 어간 "에크"는 "...으로부터"라는 뜻이며,어미 "레시아"는 "부르다"는 동사와 관계가 있다.그것은 문자적으로 "불러내어진 무리,혹은 모임"이란 뜻이다.이와 똑같은 단어가 사도행전 19장 32,39,41절에서 제자들의 복음전파를 방해하도록 소집된 군중에 대해서 사용되었다.그것은 사람들의 집합,혹은 모임을 가리키는 일상적인 단어였다.주님은 이 단어를,하나님에 의해 그분 자신에게로 불리움을 받은 무리에게 적용하셨다.그분은 우리를 어둠에서 자신의 기이한 빛으로 불러내셨다(벧전 2:9).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불리움 받았다(골 1:13)."에클레시아"는 성경에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에게 적용돼 있듯이 건물,예배 의식,활동,혹은 조직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킨다.

교회의 두가지 측면

성경에는 두가지 측면의 에클레시아,즉 우주적인 교회와 지역적인 교회가 있다.우주적인 교회는 산 자와 죽은 자를 막론하고,모든 족속과 민족을 망라하여 오순절 이래로 그리스도께로 돌아온 사람들 전체를 의미한다."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사 자신을 주셨다"고 성경이 말할 때 그것은 바로 이 전체 무리를 가리킨다(엡 5:25).이것은 또한 그분만이 홀로 머리가 되신(엡 5:23; 골 1:18) 그분의 몸으로서의 교회(엡 1:22-23; 4:4)에 대한 언급들에 있어서도 사실이다.그러한 전체는 어느 지상 조직의 한 장소,혹은 한 부분에 함께 모인 적이 결코 없었다.그것은 신령한 연합체로서 현재 하나님의 심중에 존재하며,그런 연고로 때때로 "비밀"로 불리운다.이것은 신약시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움을 입은 하나뿐인 참 교회로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그 모퉁이 돌이 되신다(엡 2:20).성령만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킴으로써 그 지체가 되게 한다(고전 6:17; 엡 5:30).이러한 개념은 구약 및 사복음서 시대에는 하나의 비밀이었다(엡 3:4-5).과거에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동일한 조건으로 합쳐지지 않았었다(엡 2:11-16; 3:6).그때는 아직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지지 않은 시기였다(마 16:18).그것은 오순절 날 시작된(행 1:5; 2:4; 5:11),신자들을 그리스도에게 연합시키는 성령의 세례(고전 12:13)에 의해 형성되었다.그리스도의 교회는 광야 회중(혹은 교회)인 이스라엘과는 다르다(행 7:38).오늘날 유대인,이방인 및 하나님의 교회는 서로 구분된다(고전 10:32).현재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에 의해 "내 백성이 아니라"고 묘사되고 있다(롬 9:15; 호 2:23).성경적인 의미에서,현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신자들이,그리고 오직 그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다.
우주적인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 곧 지역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을 대신해 주지는 못한다.처음으로 그리스도를 믿은 초대 교회 신자들은 세례를 받고 예루살렘에 있는 지역 교회에 더해졌다(행 2:41).그들은 다른 신자들과 함께 모여 생활을 함께 했다(행 2:42-44).인근 지역에 교회들이 급속도로 세워졌다(행 9:31; 15:41; 16:5).그들은 아시아(고전 16:19),마게도냐(고후 8:1),갈라디아(갈 1:2) 등과 같은 세계 각 곳으로 흩어졌다.그들은 "그리스도의 교회"(롬 16:16),"하나님의 교회"(고전 11:16),혹은 "성도의 교회"(고전 14:33) 등으로 불리웠다.때때로 그것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고전 1:2),"데살로니가인의 교회"(살전 1:1) 등과 같이 그들이 모이는 도시의 이름을 따서 불리우곤 했다.아마도 2세기 동안 그들은 분명히 공적인 집회 장소 없이 보통 일반 가정에서 모였다(롬 16:5; 골 4:15).그들은 성도들 가운데 "감독들"과 "집사들"로 불리우는,둘 다 복수인 단순한 지도 체제를 지니고 있었다(빌 1:1; 딤전 3장; 딛 1장).일인 지도 체제는 이들 초대 교회들 가운데 있었던 지속적인 목회 형태가 아니었다.지도자들은 존경과 복종의 대상이었다(히 13:7; 살전 5:12).우리는 그리스도께만 복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지도자들에게도 복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주적인 교회의 모든 지체들은 참 신자들이며,이는 지역 교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마땅하다.그러나 그렇게 되기가 종종 어려운데 그것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고백한다고 해서 항상 참된 회심을 경험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주 예수님은 신앙의 밭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공존할 수도 있다고 가르치셨다(마 13:24-30,36-43).실제성이 없는 고백은 그가 지역 교회에 속했든 그렇지 않든 다가오는 날에 그분에 의해 거부될 것이다(마 7:21-23).

교회의 특징

사람들은 종종 교회를 한 강사를 지닌 강당으로 생각하거나 지도 그룹과 관리 그룹을 지닌 조직으로 생각한다.거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이와는 전혀 다른 개념들을 강조한다.

1.통일성(엡 4:3-6).
교회는 하나이며 그 지역적인 형태에 있어서 분파나 분열이 있어서는 결코 안된다.이러한 영적인 연합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엡 4:3).이러한 관계 속에 있는 신자들을 나누는 요소는 마땅히 배제되어야 한다(고전 1:10; 11:18; 12:25; 고후 12:20).이것은 특별히 거짓 교리에 대해서 사실이다(벧후 2:1).분열을 초래하는 사람들은 경고되고 회피되어야 한다(딛 3:10).

2.다양성(엡 4:7; 고전 12:11).
모든 지체들은 비록 방법은 다르지만 각자 기여할 부분을 지닌다.이 다양한 부분의 다양한 기여가 인간의 몸과 같은 모양으로서의 교회의 모습 속에 잘 드러나 있다(고전 12:12-27; 롬 12:4-5).교회의 연합 속에 있는 각 신자들은 몸의 지체와도 같다.그리스도께서 몸의 머리이시다.그분은 자신의 뜻대로 신령한 은사들을 나눠 주신다(고전 12:13).성경이 특정한 은사들을 사모하라고 할 때 그것은 어떤 개인의 개인적인 야망을 가리킨 말씀이 아니라 지역 교회 전체가 그 가운데 어떤 특별한 은사들에 특별한 가치를 둘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고전 12:31; 14:1).중요한 것은 각 지체들이 몸 안에서 은사와 할당된 기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고전 12:27).모든 지체가 한결같이 중요하다.모두가 자기 역할을 할 적절한 기회를 지녀야 한다.모두가 존중히 여겨져야 한다.모든 사람이 같은 은사를 지닌 것이 아니다.

3.상호 의존성(엡 4:11-12; 고전 12:21-24).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며 혼자 도맡아 하지 않도록 부름을 받았다.주요 은사들의 목적은 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른 신자들을 세워주는 것이다.그들은 방관자나 개인주의자나 혹은 불구적인 지체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모든 신자들은 지역교회 안에서 자기 역할을 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4.예배(벧전 2:4-5).
우리는 우리의 놀라우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라는 높고도 으뜸가는 부름을 받았다(요 4:23).이 역할은 하나님의 전이자 집으로서의 교회의 모습 속에서 난타난다(고전 3:9,16-17; 딤전 3:15; 엡 2:22).구약 시대 하나님의 백성은 광야에서는 성막이라 불리우는 특별한 장막에서,그리고 예루살렘에서는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다.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손으로 지은 성전에 거하시기를 중단하셨는데(행 6:48) 여기에 이스라엘 민족과 그리스도의 교회 사이의 중대한 차이점이 있다.현재 하나님의 집은 산 돌로 지어진,다시 말해서 성령이 내주하는 신자들로 이뤄진 신령한 집이다.우리의 제물은 더이상 동물이 아니라 봉헌된 몸과 물질과 입술의 찬양이다.제사장을 가리키는 라틴어에서 나온 단어인 "성직자"가 아닌, 그리스도 안의 모든 신자들이 제사장들이다(벧전 2:5,9).하나님의 교회는 우선적인 기능으로서 예배를 지녀야 하며 여기에는 단순히 설교를 듣거나 기도문을 한 입술로 암송하는 것만이 아닌,하나님께 찬양을 쏫아붓는 일이 포함된다.

5.사랑의 관계(엡 5:23-27; 고후 11:2).
이것은 특별히 신부로서의 교회의 모습 속에 나타난다.오순절 이래 하나님의 백성은 전체적으로 위대한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한 한 아름다운 신부로 비유된다.그분은 놀라운 사랑으로 자신의 신부를 사랑하시며 그녀를 자기 앞에 정결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하고자 애쓰신다.이와 대조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이혼한 여자로 비유된다(사 50:1).교회는 자신이 주 예수님과 친근하고 다정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분의 임재와 장래 목적에 있어서 중심 역할을 지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그분은 자신의 신부를 위해서 심중에 선한 생각만을 지니고 계신다.교회는 그 시선을 늘 자신의 신랑에게만 집중시켜야 한다.

6.기타 특징들.
불구나 발육부진이 아닌 성장이 있으며(행 6:1,7; 12:24; 19:20),죽음이 아닌 생명이,타락이 아닌 거룩함이(고전 3:17; 벧전 1:15-16),배도가 아닌 교리적인 순결이(딤전 1:3,10; 딛 1:9-10; 벧후 2:1-3; 계 2:13-14,20) 있다.우리가 그것으로 그리스도를 나타내는,사랑과 생명과 빛의 가르침들이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지역 교회로부터 빛을 발해야 한다.

교회의 기능

교회는 그 지역적인 모습 안에서 무엇을 하도록 부름을 받았는가?확실히 교회는 지상명령이라 불리우는 사역을 진진하게 떠맡아야 한다(마 28:19-20).이것은 모든 곳에서 복음을 전파하여 제자를 삼는 것이다.이에 대한 모본이 사도행전 2장 40-42절에서 발견된다.사람들은 복음이 선포되는 것을 듣고 믿었으며,이어서 세례를 받고 적극적인 교회 생활에 들어갔다.이러한 생활과 기능은 사도들의 가르침,교제,떡을 뗌 및 기도의 네가지 형태로 구성되었다.우리는 이것을,견실한 성경 교육,교회 활동을 통한 다른 신자들과의 사귐,만찬 예식을 통한 주님께 대한 예배와 기념 및 동료 신자들과의 연합적인 기도로 이해할 수 있다.이 항목 속에 왜 떡을 떼는 것,혹은 만찬 예식이 언급되어 있을까?그것은 초대 교회 집회에 중심 요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행 20:7; 고전 11:23-33).이 예식이,하나님께서 영적인 생명이 결여된 형식에 관심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성경에 나오는 유대인의 종교 의식들은 다름 아닌 그 안에 참된 생명과 의미가 결여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의 대상이 된 것이었다.
초대 교회는 사랑의 행동과 (행 2:45)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담대한 선포로써(행 4:13,29,31) 사람들을 그 당시 종교의 죽음으로부터 건져내었다.신자들이 극심한 핍박하에 흩어지게 되자 그들의 믿음이 역동적인 삶과 증거를 통해 널리 전파되었다.이것은 그들 가운데 결함이 없음을 의미하지 않았다.
때때로 그들은 육신적이고 인간의 욕망에 이끌렸다는 책망을 들었다(고전 3:1-4).어떤 이들은 스스로 점검해 봄으로써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인지 여부를 확인해 보라는 권면을 받았다(고후 13:5).어떤 이들은 그릇된 교리로 인해 책망을 받았다(갈 1:6-9; 3:1-3).그리스도께서는 교회들 가운데 다니시면서 칭찬과 책망을 겸해서 하시는 분으로 묘사됐다(계 2-3장).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들은 문명화된 세계 전역에 확산되었고 기독교 신앙은 흥왕케 되었다.그들 가운데 어떤 결함이 있든 거기에는 항상 생명이 있었다.더더욱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고 계셨다.

교회의 장래

그리스도의 교회의 영광스런 미래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공중에서 그분과 만나기 위해 끌어 올려지는 것이다(살전 4:16-17).그 때 우리는 전혀 다른 몸으로 변화될 것이며(고전 15:51-54),그분과 함께 있고 그분과 영적으로 같아질 것이며(요일 3:2-3),그리고 점이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게 될 것이다(엡 5:27).교회는 그분께서 그토록 찬란한 영광으로 끌어 올리신 가련한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는 하늘의 영원한 실물 교훈이 될 것이다(엡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