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진보를 나타내라

2009년 November 1일 ()

본문: 디모데전서 4:11-16 |

주 제: 너의 진보를 나타내라

 

본 문: 디모데전서 4장 11-16절

 

설교자: 조 성 훈

 

“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이 세상은 급속도로 타락되고 있고 그리스도인의 삶도 점점 세속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요즘 같아서는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현상유지만이라고 했으면 하는 것이 목회자들의 바람입니다. 빠른 세속화의 흐름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떠내려가지 않고 굳게 서 있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11)” 강대상에 선 설교자는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에게 사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큰아들에게 동생을 불러 오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디모데는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성도들을 가르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라면 어렵지 않습니다.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성도들은 그 말씀을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자녀들을 키울 때 아이가 부모님의 말씀을 마음에 드는 것만 가려듣는다면 어떨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요 하나님의 말씀이고 설교자는 대언자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오늘날 어떻게 적용해야 할 지를 말해주는 것이 설교자입니다. 가르치는 자는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사람들로 하여금 족보에 치우치지 않게 하고 경건에 이르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정확한 해석과 적용, 하나님을 고려한 설교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명하신 것이 무엇이고 무슨 의미이며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가르쳐야 합니다. 설교자가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 그것에 순종하고 안 하고는 여러분에게 달려있습니다.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12-13)” 디모데는 당시 30세 정도였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젊은 청년이 주일날 설교를 한다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 말씀에 무게가 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설교자가 존경스럽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면 누가 전하든 순종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말을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믿는 사람은 언어생활에 있어서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말과 행실, 삶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사랑에 있어서도 본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뜨거운 감정이 아닌 오래 참음과 인내, 온유, 절제 등이 수반된 사랑입니다. 믿음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통해 본이 되어야 합니다. 성적인 면이나 도덕적인 면에서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업신여김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성경을 읽는 것, 그 말씀에 근거해 권면하는 것,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는 것입니다. ‘착념하라’는 것은 그것을 계속하고 전심전력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오심이 가까울수록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착념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등한히 하고 신앙 안에 바로 설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지옥 가는 사람이고, 그 다음으로 불쌍한 사람이 이 진리의 말씀을 알고 있으면서도 세속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받은 은사를 조심 없이 말라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14)”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구원받을 때 성령님을 통해 받은 은사, 영적 재능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 그에게 말해주었던 은사에 대해서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그 은사를 등한히 하거나 게을리 하지 말고 활용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영적인 삶에 영향을 줍니다. 교회 안의 실업자 치고 영적으로 만족하거나 성숙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은사를 활용하는 데 있어서 방해물이나 다른 사람의 시기도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디모데가 은사활용에서 주저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은사를 활용해야 합니다.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라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15)” 어떻게 사람들에게 우리의 진보와 영적인 성숙을 나타낼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성숙하고 어떤 사람은 제 자리에 머물러 있으며 어떤 사람은 후진을 하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으면 주신 은사를 활용하고 그 일에 성실히 임함으로써 말과 행실에 진보가 있어서 영적인 성숙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을 섬기는 것에 전심전력하는 것은 영적인 성숙을 이끄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하셨으니(마 22:37)” 사람들 앞에서 성장을 나타내야 합니다.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히 5:12-13)” 이것은 목자들의 탄식입니다. 100원짜리 동전이나 사탕 하나를 가지고 싸우는 것은 어린아이들이지 어른들이 아닙니다.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16)” 디모데 한 사람의 신앙이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구원’은 영혼의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절대 행위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7)” 바로 삶의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가르치고 권하고 말과 행실에 있어서 본이 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삶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또한 그렇게 되면 여러분의 삶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공부하는 일에 전심전력하시기 바랍니다. 때만 나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시고, 교회에서 하는 성경공부에 빠지지 않음으로 늘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게 하십시오. 또한 여러분에게 주어진 은사를 열심히 활용한다면 여러분의 삶을 구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사람의 삶도 구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되도록 모임에 빠지지 마시고 그것이 애찬이든 청소이든 가르치는 일이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있다면 충성스럽게 임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한다면 세속화의 흐름에서 떠내려가지 않고 여러분의 신앙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