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선진들

2005년 April 3일 ()

본문: 히브리서 11:7-22 |

본문말씀 : 히브리서 11장 7절-22절
주제 : 믿음의 선진들
설교자 : 조성훈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 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한 것이며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지난 주일에는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교회 생활 중에 가장 많이 말하게 되는 것이 믿음일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1장을 통해서 믿음을 따라 살아간 선진들을 삶을 통해서 믿음이란 무엇인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곧 믿음은 우리가 보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큰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란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신뢰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신뢰한 것은 어떤 것이며 신뢰하는 자의 삶은 어떤 것인지 말해 주고 있습니다. 신뢰하는 하는 삶에는 그에 대한 마땅한 증거가 있습니다. 그 예로 노아, 아브라함, 야곱, 이삭, 등의 많은 선진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는 사람으로서 믿음의 삶을 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삶을 통해서도 믿음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믿음의 선진들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선진들의 삶 - 노아
먼저 노아의 삶을 통해서 나타난 믿음을 보면, 그는 방주를 지어서 자기 가족을 구원하고, 후시대에 의인으로 등록됨을 보게 됩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그의 삶을 보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이 어떤 것인가 보게 됩니다. 노아는 하나님께 이 세상을 물로 멸망할 것이라는 경고의 말을 들었습니다. 이렇다고 할 때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들은 후에 노아의 삶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인가 아닌가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노아 입장이었다면 어떠했을 까요? 성경에 보면 그 때까지 이 세상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비가 내리는 것을 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현대 과학자들은 온 지구를 덮을 홍수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한 지역의 홍수였을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현대 과학자들도 믿지 못하는데 비가 내리는 것조차 보지 못했던 노아가 하나님께서 비로 온 세상을 덮겠다는 말씀을 어떻게 믿을 수 있었을까요? 지금 여러분이라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앞으로 내가 물로 이 세상을 심판하겠다 말씀하신다면 산에 올라가서 배를 만들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때 세상은 물로 멸망 시켰으나 앞으로는 불로 불사르기 위해서 준비해 두었다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이 불탈 세상에 투자하기 위해서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바로 그들의 삶이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늘나라의 삶이 좋고, 하늘나라에 투자하는 것이 남는 삶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하늘나라에 투자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물로 멸망하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방주를 짓는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했기에 믿음의 사람인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것을 믿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람들 가운데는 분명 이 세상을 불태우리라고 경고하고 있지만 여전히 세상에 재물을 쌓기에 바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이 아닙니다. 믿음은 삶을 통해서 보여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그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부동산 업자 전화 한 통에 더 귀를 기울인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닙니다. 노아는 비를 보지 못했으나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방주를 지었고 이로서 그는 의인으로서 믿음의 후사가 되었고, 그의 행동은 이 세상을 정죄하는 것이 된 것입니다.
만일 노아가 하나님의 경고에 순종하지 않았다면 노아의 가족은 구원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나 말씀에 있어서 순종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떠한 것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많은 선진들이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이는 그 어떠한 일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곧 신뢰함입니다.

선진들의 삶 - 아브라함
이 시간이 끝나고 나서부터 하나님께서 옆에 계시다고 생각하고 생활 해 보십시오. 말도, 행동도, 생각하는 것에도 굉장한 불편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그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살았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나아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말씀에만 의지하여 고향을 떠난다는 것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아브라함이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아브라함의 가족이 장막에 거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갑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집을 짓지도 않고 평생을 정착하지 않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장막을 짓고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자신의 친구라 칭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기에 장막을 짓고 살았습니다. 또 하나는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이 들었을 때 아들을 낳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현실적으론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믿음이란 인간이 보기에 가능한 일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고, 우리의 생각에 가능하지 않은 것을 하나님의 약속 하셨을 때 바라보고, 신뢰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선 나사로가 죽어 썩어 냄새 날 때, 나를 믿으면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말씀하시고 썩어 가는 시체를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라 했을 때 나사로가 살아서 나왔습니다. 가능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그것을 믿는 것, 아들을 낳을 수 있는 나이도 이미 지났고 모든 면에서 불가능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으리라 말씀하셨을 때 그것을 믿는 것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갈 곳을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떠나라고 했기에 떠난 것, 하나님의 성을 바라보고 늘 장막에 거했던 것,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한 것 이것이 바로 믿음의 삶입니다. 그 다음에 또 하나님께선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아들과 함께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네 아들 이삭을 통해서 네 씨를 주리라'고 약속해 주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아들을 통해서 약속 하셨는데 다시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그래도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아들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산으로 올라갔던 아브라함 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언제 가장 기뻐하시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해 줄 때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신뢰해 주는 이들에게 참 약하십니다. 니느웨이성이 악했을 때 멸망시키려 하셨으나 그들이 회개하였을 때 그들을 용서하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신뢰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아들을 바치라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주실 것을 믿고, 아들을 낳을 수 없는 나이였으나 하나님께서 낳는다고 하시니 낳을 것을 믿고, 많은 나이에 갈 곳을 알지 못했으나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리라는 약속을 믿고 나온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선 기뻐하신 것입니다. 노아 역시 아직 보지 못하는 것이었으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그대로 되리라고 믿고 방주를 지어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기에 믿음의 대열에 선 것입니다.

선진들의 삶 - 이삭
이삭의 삶을 보면'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 에게 축복하였으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창27:29, 창27:40 ) 어떻게 이삭은 그 아들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이삭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합니다. 이삭이 장래 일을 예언한 것이 아니라 이삭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곧 믿음으로 장차 야곱과 에서에 대해서 축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야곱도 그의 아들들에게 믿음으로 그 후에 당할 일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아들들에게 야곱은 축복하면서 아우가 더 큰 자가 되겠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낼 것을 말했습니다. 무엇에 근거해서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그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선 야곱이 애굽에 내려갈 때 내가 너와 함께 내려가겠고 다시 너를 대리고 나오리라고 약속하셨으며 그러한 약속에 근거해서 야곱은 그러한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변치 않기 때문에 그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의 삶을 설계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말씀대로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선진들의 삶 - 요셉
요셉의 삶에서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 요셉 역시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떠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 자기 해골을 매고 나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당시 세계를 지배하는 군대 가운데서 아무런 힘도 없는 소수 민족이 그곳을 뚫고 나오기란 불가능한 일입니다. 출애굽 과정을 보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절대로 애굽에서 나올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애굽의 장자가 다 죽는 엄청난 사건 이후 이스라엘 민족을 나가게 하고서도 다시 그들을 쫓아가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요셉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서 자신의 민족이 애굽에서 나갈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온 세상에 흩으신 다음에 나라 없이 1500년 가까이 살다가 말세에는 그 민족을 모으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독립해서 모이는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모든 것이 인간적으로 보기에는 불가능해도 결국은 하나님 말씀대로 되어집니다. 그러니 여러분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시청에 가서 도시계획을 볼 것이 아니라 성경을 찾고 그곳에서 더 확실한 계획을 보시기 바랍니다.

선진들의 삶의 특징
13절에 보면 구약의 선진들의 특징들이 나타납니다. 이 사람들은 곧 앞에서 언급된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간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다고 말합니다. 곧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나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그 말씀대로 될 것을 확신하고 그들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 그들의 특징입니다. 두 번째는 그들은 죽을 때까지 그들의 믿음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이 말은 예로 아브라함은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으리라' 라는 약속을 받았지만 실지로 자신의 시대에는 자손이 그렇게 많아지는 것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또 적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살 것을 약속 받았으나 이들은 그 자손들과 함께 그 땅을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도 메시아에 대한 언급을 받았으나 메시아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야곱이나 요셉도 하나님께로부터 가나안에 대한 약속은 받았으나 보지 못했고 누려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그것이 이루어질 줄 알고 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했습니다. 요한복음 8장56절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아브라함은 메시아의 대한 약속을 알고 있었고, 보기를 원했습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보고 기뻐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볼 수 있었을까요? 타이머신을 타고 주님 시대로 가서 보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했던 아브라함은 바로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시대까지 가서 즐거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가끔 저는 생명수 강가에 앉아 낚시질 할 생각을 하며 즐거워 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비록 하늘나라에 아직 가지는 않았지만 믿음의 눈을 가지고 바라보면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삶은 참 놀라운 것입니다. 시간과 장소를 초월합니다. 믿음으로 과거로 갈 수 있고 미래로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하늘나라를 현재 우리 것으로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우리는 지금부터 하늘나라로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입니다.

히브리서11장 13절 '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 하였으니' 그들은 왜 이 땅에서 살면서 나그네로 생각했을까요? 그것은 하늘나라를 본향으로 생각했기에 이 땅을 나그네로 살았고 장막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땅을 본향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땅에 정을 들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16절에 보면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들은 하늘에 있는 본향을 사모했기에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갔던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원했다면 그들의 본향(우르)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땅의 본향이 아닌 더 나은 본향 곧 하늘나라를 사모하고 살아갔습니다. 11장9.10절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이제는 저희가 더 나은 성을 사모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1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다 라고 말하고 계십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수많은 사람 가운데 '나는 조성훈이의 하나님이다' 라고 말씀하신다면 어떨까요? 우리끼리도 알고 지내기에 부끄러운 사람이 있고, 또 자랑스러운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해서 한 성을 예비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2장32절 에 보면 그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을 살았고 그 땅을 사모하며 살았기에 하나님께선 그들을 위해 한 나라를 준비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25:34에 보면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만족하며 살아간 자들에겐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으셨습니다.

결론
믿음의 삶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는 삶이 믿음의 삶입니다. 사람이 생각할 때 가능한가 불가능한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그대로 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여기에 나온 믿음의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아갔으며 그러했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다 믿음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더라가 아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기에 '어떻게 했더라' 하고 그 증거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신뢰는 항상 행함이 따릅니다.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리라고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도 그것을 말해주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을 믿습니까? 하나님의 말씀하신 대로 되리라고 나는 믿노라 라는 말에 아멘 하십니까? 여러분의 삶도 아멘 하십니까? 여러분의 믿음을 여러분의 삶으로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