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대한 혼란

2008년 December 21일 ()

본문: 갈라디아서 3:1-9 |

주 제 : 복음에 대한 혼란

 

본 문 : 갈라디아서 3장 1절 - 9절

 

설교자 : 조 성 훈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찌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우리는 지금 혼란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교리적으로나 복음적으로나 혼란스러운 시대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창조되었을 때부터 사단은 인간의 삶에 관여하기 시작했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주님의 사역은 물론, 교회가 처음으로 생겼을 때에도 사단은 그곳에 가라지를 심어왔습니다. 갈라디아 지역에 사도 바울을 통해 복음이 전해져서 사람들이 말씀 안에 잘 순종하고 있었는데, 거짓교사들이 나타나서 순수한 복음을 혼잡케 하고 그들로 하여금 참다운 진리를 떠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고 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주님을 믿은 이후에 체계적인 양육을 받아서 교리적으로나 삶으로나 확고하게 서있지 않으면 잘못된 가르침에 휩쓸리기가 쉽습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기독교가 쇠퇴해 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떠나고 있습니다.

 

 

복음에 대한 정의와 내용

 

복음이라는 것은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삶에 있어서 가장 기쁜 소식은 무엇입니까. 세상에서 가장 복된 소식은 죄인이 용서받지 못한 죄를 용서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어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2-4)” 누구든지 이것을 믿는 사람은 영원히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 복된 소식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이 복된 소식을 변형, 부패시키려고 굉장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사람들의 믿음을 흔들리게 하고 믿음에서 떠나게 합니다. 병원에 가면 많은 단체들이 있는데 그들은 병이 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접근해서 병을 고쳐준다며 많은 돈을 빼앗아갑니다. 뻐꾸기는 다른 새가 알을 낳는 곳에 자기 알을 낳아놓습니다. 그 안에서 부화한 뻐꾸기는 원래 새끼들을 다 몰아내고 자기가 그 안에서 자리 잡아 살아갑니다. 어미는 그것도 모르고 뻐꾸기를 자기 자식인 줄 알고 키우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단이 복음을 흐려놓으면 많은 사람들이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복음은 아주 단순한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혼잡케 하고 있습니다(행 20:29-31).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은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단은 거기에 거짓교사를 심어 율법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행 15:1).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거짓교사들이 나타나 구약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쳐 교회 안에 가라지를 심은 것입니다(마 13:24-25). 우리는 어릴 때부터 그냥 받은 것이 없습니다. 가게에 가도 돈을 줘야 물건을 살 수 있고 대가를 지불해야 무언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그냥 준다는 것은 사람들의 세계에서 이해하기 힘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평생 동안 율법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사단은 그들에게 익숙한 것을 이용하여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7-9)”

 

때때로 사람들은 사람의 말에 의지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갔을 때 심히 두려워하고 떨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여러분들의 믿음이 제가 전한 말에 있을까 두렵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 위에 있어야 합니다. 사단은 오늘날 다양한 복음 집회와 인터넷 등을 통해 잘못된 복음을 접하게 하고 믿음을 혼란케 합니다. 가짜라고 해서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사단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험하지 않았습니까. 잘못된 복음을 전하는 사람도 이단처럼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조금 더 더하는 사람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속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죽으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냐는 물음에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서 봐야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생명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요한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에 의지할 때 우리는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

 

구원에 대한 표현들은 다양합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성경에서는 구원에 대해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혼란이 생기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행 2:21)”는 말씀을 잘못 전하는 사람은 항상 예수님을 부르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 다음 말씀을 보면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롬 10:13-14)”라고 되어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이름을 부르는 자, 그리스도를 믿는 자, 영접하는 자 등 다양한 표현들이 있지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십자가를 의지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전도 집회에나 다른 사람의 간증을 들을 때 자기의 영혼에 대해서 혼란에 빠지는 것은, 그들이 말씀 안에 확고하게 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복음들(변질된 복음들)

 

사람들은 누군가가 나와서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하거나 구세주라고 말하면 믿지 않지만, 교묘하게 접근하는 거짓 교사들은 잘 분별하지 못합니다(고전 2:1-5).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의 대속도 믿지만 우리에게 행위가 필요하다, 즉 잘해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고 말합니다. 회개가 없는 구원은 진정한 구원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회개라는 것은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는 마음의 변화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은 자신의 죄를 모두 고백하지 않으면 구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죄를 고백하다가 더 없으니 자신이 모르는 죄까지 용서해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어릴 때 어머니 젖 먹을 때 젖꼭지 깨문 것까지 회개하겠습니까. 성경 어디에도 그런 말씀은 없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이지 믿음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 맞지만 믿음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 이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분명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정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셨다고 기록되어 있고, 아신 자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하시고 의롭다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씀하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찌하여 나를 버리고 갔느냐는 말씀도 있고, 아담과 하와에게는 선악과를 따먹을 수도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 분명한 자유의지가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기 전에 엎드려 기도하면서 예수님을 영접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의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믿음의 기초가 단단하지 않기 때문에 혼란이 오는 것입니다. 복음집회에서 성도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했던 회개를 다시 하고 다시 성령님을 모시며 다시 구원받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구원에 대한 절차와 방법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엡 2:8-9)” 이것이 바로 구원의 절차입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은혜가 없다면 아무도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제물로 준비하시고 그분이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구원의 길을 마련하시고 빛을 비취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절대로 구원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롬 8:29-30, 엡 1:4-5, 행 13:47-48, 요 6:44, 살후 2:13). 이와 같이 구원이 하나님의 예정하심에 달려있는 측면이 있으나 또 한편으로 우리의 자유의지를 사용해서 주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38)”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눅 13:34)” 주님께 나아가야 하고 주님께 가서 마셔야 하며 주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죄를 깨닫게 되고(그 은혜를 인하여) 눈을 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믿음으로 말미암아)이 바로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히 4:1-3)” 이 말씀을 보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도 은혜를 베푸셔서 복음을 전했지만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내려진 은혜가 그들의 믿음과 화합지 못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즉 구원에는 은혜도 있지만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롬 11:20)”

 

사람들을 생각할 때 자신이 구원받은 방법을 통해서만 구원을 인정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역사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완전 확신 기쁨’을 쓴 저자인 조지 커팅은 거리를 걷다가 문득 요한복음 1장 29절(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를 외치고 싶어서 망설이다가 결국 두 번 외쳤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얼마 뒤 전도를 하러 다니는 중에 한 동네에서 어느 여인이 구원받게 된 계기를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죄 때문에 심히 고민하며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했는데 길을 가다가 요한복음 1장 29절을 외치는 소리를 듣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한 군인은 터널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데 깜빡 졸다가 암호를 외치라는 상관의 말에 깜짝 놀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소리가 반대편 터널에서 보초를 서던 군인에게 들려져 그가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스코트랜드의 멕케이 의사는 젊은 시절 어머니가 성경책을 주면서 자기 이름과 어머니 이름을 앞장에 기록하고 주었는데 그는 술을 사기 위해 전당포에 그 성경을 잡히고 잊어 버렸습니다. 문란한 삶을 살다가 정신을 차리고 공부하여 의사가 되고 큰 병원에 원장이 되었는데 환자 중에 하나가 죽음을 앞두고도 너무 평온하여 인상이 깊었다고 합니다. 그 환자가 죽기 전에 자신의 책을 가져다 달라고 했는데 그 책은 성경책이었습니다. 그가 참 인상 깊었던 의사는 그가 죽은 뒤 성경책을 보게 되었고 그 책에는 자기 어머니와 자신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성경책을 들고 방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회개하여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머니가 성경책을 주면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마태복음 6:3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후 어느 날 동네 교회에 갔는데 이상하게도 그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사업차 다른 교회에 갔는데도 같은 말씀, 수년 후 D.L 무디의 교회에 가서 설교를 들었는데 역시 같은 말씀이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다양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론

 

많은 잘못된 교사들이 일어나서 복음을 변질시켜서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잘못된 복음, 잘못된 진리에 휩쓸릴 수 있습니다. 동물들 중에도 뒤에서 맴도는 짐승들이 사자의 밥이 됩니다. 교회 일에 중심에 서서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사단의 희생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히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