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자의 삶

2004년 October 31일 ()

본문: 시편 1:1-6 |

제 목 : 복 있는 자의 삶
본 문 : 시편 1편 1절 ~ 6절
설교자 : 조 성 훈

사람들은 흔히 돈 많은 사람들,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들, 사회적으로 명예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복 있는 사람, 혹은 성공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와 같이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부하거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는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 다. 오늘 우리는 복 있는 삶이 어떤 삶인지를 말씀을 통해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새해가 되면, 복을 비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그 복을 얻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복이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면, 우리의 많은 생각들이 달라질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잘못된 생각을 많이 가질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나이가 많이 드신 분들은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됩니다. 인생을 살아보니 돈, 혹은 권력이 다가 아니라는 것, 키 크고 잘난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인생을 살아본 분들이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복 없는 자의 삶
먼저, 시편 기자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악한 사람들의 조언이나 상담, 제안을 따라 행하지 않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악한 사람들의 방법을 따라 행하지 않는 것이 복이 있다라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복 있는 사람은 악한 자들의 방법을 따라서 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여기 말하기를, 복 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서 행하지 않는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죄인들이 가는 길로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가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죄인들이 사는 방법대로 따라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죄인들이 성공한 방법을 따라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복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그 사람들의 길을 따라 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복 있는 사람이기를 원하면서 복 없는 사람들의 방법을 따라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삶이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4절)” 망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 인사할 때, 서로에게 “망하기를 바랍니다.” 라고 말한다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죄인의 길을 따라 행하고, 그들의 상담이나 조언, 제의를 따라 행하는 사람이 망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또한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서지 아니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조롱하는 사람들, 조소하고, 업신여기는 사람들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그런 사람들의 위치에 서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복 있는 자의 삶
복 없는 사람들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행하지만, 복 있는 사람들은 2절에서 보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지 않습니까? 복 있는 사람은 물질이 많고,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이며, 유명한 사람이라고 말할 것 같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복 받는 것이 쉽지 않습니까? 여러분 모두 성경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성경을 날마다 묵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을 받는 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3절에 보면 그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믿어지십니까? 성경은 말씀을 주야로 묵상할 때 늘 물이 마르지 않는 그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과일을 맺음 같이 그 행사가 형통하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이 자꾸 꼬이지는 않습니까? 될 듯 될 듯 하다가 안 되곤 하지 않습니까? 어떤 형제님은 얼마 전에는 화상을 입으셨는데, 이번엔 또 팔이 부러지셨습니다. 그분은 계속 꼬입니다. 그렇습니까? 왜 그럴까요? 만사가 다 형통한다고 했는데, 왜 자꾸 꼬이나요? 하나님 말씀이 사실이라고 하면, 율법을 옆에 가까이 두고 사랑하고, 그것을 주야로 묵상하고 순종할 때 형통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가 말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시편 기자를 통해 우리에게 이것을 기록한 것이 사실이고, 이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씀은 바로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두고 그것을 주야로 묵상한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복이 있다고 하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는 것입니다. 매우 가물 때, 다른 것은 다 말라죽지만,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가뭄을 타지 않습니다. 그 행사가 다 형통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곳에서 복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불행하게 사는 것을 보셨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두고 그것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말씀에 기록된 대로 순종하는 사람들이 불행한 것을 보셨습니까? 저는 서울 시내에 있는 여러 노숙자들을 만나봤어도 그들 중에 성경을 옆에 두고 그것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깡통을 앞에 두고 있는 사람은 봤어도, 성경을 옆에 두고 묵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지키는 사람은 더더욱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그것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진실로 복이 있기 때문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악인, 즉 복 없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아 행하고, 죄인의 길에 서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고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지 않고, 율법을 멀리하고 묵상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결과는 어떻습니까? 여기서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라고 말합니다. 요즘 바람이 많이 불면 낙엽이 날립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낙엽과 같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낙엽이 날리는 것처럼 안정되지 못하고, 늘 이리저리 불려 다니는 신세라고 한다면, 너무도 고달픈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멀리하고, 그것을 묵상하지 않고, 그것을 주야로 묵상하지 않는 사람들의 삶이 바로 이와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보기에 좋아 보인다고 그 마음 속까지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주 좋은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 또는 아주 호화로운 저택, 풀장은 말할 것도 없고, 극장까지 있는 매우 큰 저택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여러분은 그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할지를 상상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속이 허전하고, 차지 않는 사람들이 꾸미고 사는 것입니다. 그 안에 만족이 없고, 진정한 생수가 솟아나지 않는 갈증 투성인 사람들이 그러한 것에 자신의 마음을 채울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적인 것들을 꾸미는 것입니다. 내적으로 채워져 있는 사람은 외적인 것에서 만족을 찾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악인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안정이 없고, 쉼이 없는 것입니다. 너무나 고달픈 인생인 것입니다. 인생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남는 것은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는 것입니다. 때를 따라 과일을 맺는 그 시냇가의 나무처럼 행사가 형통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5절 말씀에 보면 악인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악인은 심판을 이겨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심판대에 서서 영원토록 멸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후대까지 영향을 미치는 우리 삶의 결과
출에굽기 20장 5, 6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참으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말씀을 묵상하고 의롭게 삶을 살면, 그 은혜가 천대까지 가지만, 죄인으로 살면, 그것이 삼, 사대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자비로우십니다. 사람들을 스무 명이나 죽이는 사람에게는 만대까지 갔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삶을 너무 힘들게 살 때, 조상들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상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아야할 것입니다. 그들의 삶의 결과가 삼, 사대까지 이르게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묵상하고, 착한 삶을 살 때에 그 은혜가 자손 천대까지 내려간다고 하면, 지금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생각해 보아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시대에서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후손 천대까지 그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주님이 오시지 않는다면, 우리의 천대까지 그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바로 밑에 자손들은 물어볼 것도 없이 천대까지나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신실하게 섬기지 않는 사람들의 죄악은 그 후손 삼, 사대에게까지 물려진다는 것을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산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시편 37편 25절을 보면,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시편을 쓴 다윗은 그가 어렸을 때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의인이 버림을 받는 것이나, 그 자손이 걸식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의롭게 산 사람 그 자신뿐만 아니라 그 후손까지도 남에게 빌어먹고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편 기자의 간증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복이 있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바로 자손들에게 좋은 것을 물려주기 위함입니다. 무엇이 정말로 좋은 것입니까?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빌딩을 물려주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까? 여기 말씀을 보면 진정으로 자식에게 물려줄 것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습니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6절)”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삶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삶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삶을 인정하고, 증명하며, 보호하고, 공급하시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과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신 삶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안에 없는 삶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죽을 때까지 그 허무한 갈증과 불행을 가지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그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자신은 불행하고, 외로우며, 고독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은 그 마음 속에 메마름만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은 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온 자들만이 쉼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치 않습니다.
만사가 형통한다는 말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어진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때때로 하나님 말씀을 잘 순종하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 되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인정하신 삶을 산 몇몇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그 중 모세의 삶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인정하신 삶이 어떤 삶인지를 볼 수 있습니다. 모세의 삶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삶이었고, 오늘날 누가 보아도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삶입니다. 누가 오늘날 모세가 헛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부러워하는 사람은 있겠지만, 그 삶이 헛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삶을 불우한 삶이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요셉의 삶이 그러했고,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삶도 그렇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자가 복 있는 이유
왜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율법을 사랑하고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했을까요? 그것은 성경에서 우리가 인생에서 꼭 필요한 것들을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년에 성경을 몇 번 읽었다고 말하면서 성경을 읽은 것을 자랑하는데, 성경을 보는 것 자체가 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10시간 혹은 100시간을 묵상했어도 무언가를 얻지 못했다면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읽는 것 자체는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묵상을 하여 무엇을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무엇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17장 18, 19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한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여기 말씀을 보면, 왕이 되면, 율법을 복사해두고 평생동안 읽어서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늘 읽고 묵상할 때 첫째로 배우게 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입니다.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도 모릅니다. 그래서 무조건 자기의 열심만 내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맞지도 않으면서 공만 들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바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올바로 경외할 수 있는가를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 공부의 첫째 목적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고 묵상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성경을 잘못 배운 것입니다.
두 번째로,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올바른 영적 가치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지, 중요하지 않은지를 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배우지 않는다면, 모두가 영적인 소경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가게문을 열고 밥도 제 때에 먹지 못하고, 손님에 따라 먹고 밤늦게 가게문을 닫으면서 열심히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몸이 안좋아서 병원에 갔더니 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병실에 앉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인생을 헛살았구나.” 왜 살면서는 알지 못했을까요? 왜 병원에서 암 선고를 받고 나서, 죽음을 앞두고 나서야 이렇게 깨닫게 되는 것일까요? 그 동안은 물질 모으는 재미에, 세상 사는 재미에, 무엇이 중요한가를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은 헛된 것에 자기 인생을 허비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고 묵상하게 되면, 무엇이 중요한가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말하는 것을 보면, 어떤 면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을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인생을 살아보니 돈을 계산할 정도만 되면, 살 수 있고, 글만 읽을 줄 알면 어디든 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 많은 사람들은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에 모든 인생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나중에 인생을 다 살고 나서 중요하지도 않은 것들에 내 인생을 허비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인생이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남는 것은 수고와 슬픔뿐이라는 말씀을 읽어만 봤어도 그렇게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전도서 말씀에는 큰 정원을 만들고, 종들도 많이 두고 살아봤으나, 그것도 역시 다 헛되고 헛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한 때 잘 나갔었다” 라는 말을 하면서 자랑하지만, 결국 그러한 것도 모두 헛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결국은 다 헛되고 헛되도다” 라고 말합니다. 책을 쓰는 것도 결국 자기를 피곤하게 하는 것이며, 결국은 모두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인생에 있어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또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할지를,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 말씀에서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 복이 있는 것입니다.
종합해보면,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두 가지를 배울 수 있는데,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을 통해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 참다운 가치관을 배우게 됩니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잘 묵상하고 잘 아는 사람은 헛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올바른 가치관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상은 잘못된 것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를 잘 모릅니다. 말해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다른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그 인생이 참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소경이 되어서 사탄이 말하는 거짓 것에 따라 인생을 살고, 결국은 탄식하면서 죽어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올바른 것을 배우게 되고, 또한 마땅히 행할 바를 알게 됩니다. 성경에 능한 자 중에 미련한 자를 보셨습니까? 저는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손가락을 잘랐을 때 말씀이 줄줄 나오는 사람 중에 미련한 사람을 보았습니까? 성경은 말씀 가운데 깊이 젖어있을 때 노인보다 더 승하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에 풍족히 젖어있는 사람은 많은 지혜에 있어서도 굉장히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가까이 두고 묵상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결론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까? 여러분 모두 성경을 가지고 계십니까? 이제 복을 받으려면 앉았을 때나 섰을 때나 누웠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순종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하나님을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요,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요,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떠합니까? 나중에 인생을 결산하는 날에 하나님의 생각이 옳은지, 여러분의 생각이 옳은지가 결판이 날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두고 주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현재 복 있는 사람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말씀을 가까이 두고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정말로 복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진실로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기억하시고 말씀을 사랑하고, 가까이 두고 묵상하시는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