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안에 거함

2009년 August 23일 ()

본문: 요한복음 15:9-17 |

주 제: 사랑 안에 거함

 

본 문: 요한복음 15장 9-17절

 

설교자: 조 성 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지만 자녀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모의 사랑의 1/10만 사랑해도 효자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리사랑’이라고 하니 훗날 자녀들이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으면 또 그 부모들처럼 자식을 사랑할 것입니다. 부모가 아무리 자식을 사랑해도, 자식들이 그 사랑 안에 거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 사랑 안에 거하라는 주님의 부탁

 

하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사랑 안에 거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15:9)”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인간들이 사랑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여러분은 몇 번까지 사람을 용납하십니까. 어떤 이웃이 술에 취해서 우리 집 대문을 부쉈다면, 그리고 다음날 찾아와서 용서를 빈다면 그를 용서하시겠습니까. 며칠이 지나서 또다시 같은 일을 한다면, 아니 70평생을 그렇게 한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고 나서 같은 잘못을 수십 번, 수백 번 하지 않았습니까. 그 때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주님은 그 사랑 안에 거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사랑을 베푸시고 빛을 비추시지만 그 사랑 안에 거하느냐와 그렇지 않느냐는 다릅니다. 자녀를 아무리 사랑해도 자녀가 부모의 사랑 안에 거하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도 우리가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할 때 비로소 주님의 사랑을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아기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를 안고 교회에 나온 자매님들을 보면 얼굴에 기쁨이 가득합니다. 그들은 고통과 고생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을 보시면서 그러하셨습니다.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출 4:2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12)” 주님은 우리에게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젊은이들이 애인을 만나 사랑하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는 오직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빠져있습니다. 이런 감정적인 사랑은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성도들을 향하여 사랑이 없다고 말할 때도 뜨거운 감정을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 역시 성경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사랑은 무엇입니까.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 사랑은 자나 깨나 그를 생각하는 것이거나 그에게 좋은 선물을 주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연약한 자들이 있을 때 그들에 대하여 오래 참는 것이 사랑입니다. 다른 성도들에게 잘못된 것, 연약한 것이 있을 지라도 온유하게 대하는 것이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자녀들의 성적이나 재산 등을 비교해 볼 때 다른 사람을 시기하는 마음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런 시기심을 절제하고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이 상처를 입을 수 있다면 자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만하지 않고 무례히 행하지 않는 것도 사랑입니다. 우리는 형제, 자매라는 것을 이유로 무례히 행하고 마땅히 존경해야 할 사람을 존경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도들 사이에 무례하게 대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성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것들은 자연적인 것이 아닙니다. 사람 안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자랑하고 싶은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고 화가 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표출하지 않고 그 생각을 사로잡아서 복종시키는 것이 사랑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사랑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11)”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기쁨이 우리 안에 충만히 거하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명령은 기쁨을 주시기 위한 것이지 우리에게 짐을 지우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성도들을 향하여 이런 사랑을 베풀 때 우리 안에 기쁨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계명 안에 거하면 우리 안에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참다운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방법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10)” 주님께서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했다면 우리도 주님의 계명을 지켜야 그 사랑 안에 거하지 않겠습니까.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 8:29)” 주님은 세상에 홀로 계셨지만 아버지께서 주님을 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또한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지키면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 주님과 동행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우리 안에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들은 주님의 친구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14-15)” 주님은 제자들에게 주님의 친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순종할 뿐이지만 친구는 친구가 하는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택하신 이유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16-17)”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택하신 이유는 가서 과실을 많이 맺게 하기 위함이고 서로 사랑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도 바울을 택하셔서 부르실 때도, 제자들을 부르실 때도, 또한 우리를 부르실 때도 주님이 먼저 택하셔서 인도하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그들을 택한 것은 증인을 삼으려 하심이고 열매를 맺게 해서 세상으로 하여금 주님의 제자인 줄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 구한 것을 받게 하기 위함이고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을 알게 하고 우리에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결론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사랑 안에 거하느냐는 것입니다. 주님은 아버지의 계명 안에 거했고 그래서 아버지는 주님을 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있습니까.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요, 계명을 지키면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느낄 때마다 참다운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감정적인 표현만이 사랑이 아닙니다. 오래참고 온유하고 절제하고 서로를 용납하고 시기하지 않고 짐을 져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우리는 서로 연약하기 때문에 사랑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면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고, 주님이 함께 계심을 나타내실 것이고 우리 안에 기쁨이 넘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참다운 기쁨을 느끼고자 하신다면, 주님께 구하는 것을 받기 원하신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심을 나타내기를 원하신다면 주님의 계명을 지키시길 바랍니다. 사랑은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에 쉽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우리를 복종시킨다면 우리 안에 주님의 기쁨이 거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