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따라 행함

2010년 May 23일 ()

본문: 갈라디아서 5:16-26 |

주 제: 성령을 따라 행함

 

본 문: 갈라디아서 5장 16-26절

 

설교자: 조 성 훈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서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고 말하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 내랴”라고 한탄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성령님이 내주하셔서 새로운 욕구를 형성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데 주역을 담당하셨다면, 성령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성별된 삶을 살아가는데 주역이 되십니다. 진리 가운데 인도하시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며 우리가 잘못 가고 있을 때 가야 할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 사이의 싸움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16-18)” 이것은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싸움입니다. 이런 싸움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면 그는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 중 어느 한 쪽이 죽어있는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이 싸움의 실체를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기 전에는 이런 갈등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이 내 안에 들어오신 후부터 이런 갈등이 생긴 것입니다. 사단은 계속 우리를 자극해서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도록 만듭니다. 반대로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성령의 욕구를 불러 일으키십니다. 이 때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소욕이 승리했을 때 기쁨을 느낍니다. 환경미화원이었던 한 영국인이 160억에 해당하는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환경미화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 복권에 당첨되어 큰 돈을 가지게 되었다면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고 싶을까요. 그는 침실이 8개나 되는 호화주택을 사서 하루에 4명의 여성들과 함께 즐겼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돈과 시간이 있으면 육체의 욕구를 이루고자 합니다. 마시고 즐기고 쾌락을 좇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들어오시면 그분은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우리의 삶을 이끄십니다. 이기적인 욕구를 가진 인간에게 다른 사람을 위해 살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합니다. 성령의 욕구는 진리이고 그것을 이뤘을 때 맺는 열매와 기쁨은 말할 수 없이 좋은 것입니다. 육체의 욕구는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 더 예쁘고 조건 좋은 배우자를 원합니다. 그것을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육체의 소욕을 따를 때의 열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19-21)” 이것들이 육체의 소욕에 따라 살 때 나타나는 열매들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이런 열매들만 맺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를 함께 맺게 됩니다.
저희 집에 여러 과일나무를 심었는데 제가 그 나무가 열매를 맺기를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요. 만일 5년이나 10년, 20년이 지나도 그 나무에서 열매를 보지 못한다면 저는 그 나무를 잘라버리지 않을까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빈부의 격차나 잘생기고 못생기고 하는 것 등 세속적인 가치관이 들어오지 않기를, 교회 안에서 오직 그리스도만이 증거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가 육체의 열매를 맺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고 싶다고 기도하고 그러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지 않는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여전히 연약하고 육체의 열매를 맺을 수 있지만, 그러나 그 가운데 성령의 열매도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소욕을 따를 때의 열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22-23)”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열매만 맺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살면 그곳에도 시기와 질투와 당파가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하늘나라에 가야 육체의 소욕이 완전히 존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곳엔 조금도 잘못된 동기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 기쁨, 화평, 오래 참음, 자비와 양선 등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가 맺는 열매를 보면 그가 성령에 따라 사는지 육체에 따라 사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도들 사이에 끼기만 하면 불화가 생기고, 어떤 사람은 성도들 사이에 끼기만 하면 화목과 기쁨이 넘칩니다. 그 결과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동안 맺은 열매를 돌이켜 보십시오. 묘목상에 가서 대봉나무를 사와 앞뜰에 심고 3년을 정성들여 열매 맺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결국 대봉을 맺지 못하고 보잘 것 없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성경에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고 거름을 주고 정성을 다했는데 들포도를 맺었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주님은 내가 이보다 더 어떻게 잘 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구원받은 자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처한 가정, 사회, 교회에서 밟아온 삶의 발자국을 보면서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 성령이 역사하셔서 성령의 열매를 맺을 때 아버지께서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성도들 간에 화평과 기쁨을 조장하고 오래참고 서로를 돌아보며 짐을 대신 져 주는 것, 붙들어 주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이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24)”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장례식에 참석하면 염을 하는데 저는 한 번도 시체가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시체는 소리 내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모든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성령을 따라 살 수 있을까요.
어떤 성도가 저에게 전화를 해서 도와주기를 바랐습니다. 그 때 제 머릿속에는 두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주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을까’하는 것과 또 하나는 ‘피곤하다’는 생각입니다. 그 때 어느 쪽을 따라가느냐가 문제입니다. 사단이 가룟 유다의 머릿속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지만, 한 편으로 그는 주님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6-17)”
성령에 따라 행할 수 있는 비결은 이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입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하나님 말씀이 여러분 손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묵상은 되새김질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이렇게 생각해보고 저렇게 생각해보고 계속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생각은 들어오지 못할 것입니다. 마치 연애하고 있는 사람이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연인에 대한 어떤 안 좋은 말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께 빠져있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걸으면서 운전하면서 자면서도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육신의 생각은 힘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결론
누군가가 말하기를, 성경이 가까워지면 죄가 멀어지고 성경이 멀어지면 죄가 가까워진다고 했습니다. 저는 성경이 멀어지면 세상이 가까워지고 성경이 가까워지면 세상이 멀어진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할 때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남은 삶을 성령의 열매를 맺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을 늘 가까이하고 그것을 늘 묵상하며 살 때 놀라운 역사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