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빛과 소금

2017년 March 5일 ()

본문: 마태복음 5:13-16 |

제목 : 세상의 빛과 소금
본문 : 마태복음 5장 13~16절
설교자 : 조성훈

신구약 성경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모두가 주님을 만나고 언제나 주님과 동행하며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이후에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이들을 구원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정의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절대 정의로운 세상은 올 수 없습니다. 결혼을 앞둔 커플들을 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결혼을 해도 죄인과 죄인이 결혼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결혼해서 서로 양보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죽이는 과정을 통해 아름다운 결혼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정직한 지도자를 원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원합니다. 그러나 죄인들이 모여 이루는 세상이 정직할 리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사드가 필요다고 말하지만 자신의 집 앞에 설치한다고 하면 반대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이기적입니다. 점점 더 죄악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정의를 위한다고 말하지만 자신과 관련될 때는 입장이 달라집니다. 운전을 하고 가다가 신호위반으로 경찰이 잡으면 참 좋으신 일 하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 나만 잡느냐고 합니다. 다른 사람 잡을 때는 매우 좋아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잡을 때는 경찰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은 세상을 정의롭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도 그렇습니다. 주님을 만나고 동행하며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저는 은퇴를 하며 기뻤지만 미얀마를 다녀와서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가정 하나를 지키고 자녀를 키우는 것으로 다 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멸망해가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소금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음식이 부패하지 않게 하고, 음식의 맛을 냅니다. 소금이나 빛의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혼을 구원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정직하게 살고 법을 지켜서 세상의 타락을 막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세상을 구원하라고 하시는 걸까요? 말세에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부모를 거역하고 배반하고 팔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인들이 살아가고 지배하는 세상이 어떻게 공의로운 세상이 되겠습니까? 유럽의 한 총리는 남자 부인을 데리고 살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영향으로 정직한 지도자가 나와서 일시적으로 정직한 세상을 만들어갔는지 모르지만 더 이상은 그렇게 될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세상을 불태우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셨던 이유는 그들을 통해 하나님을 세상에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을 축복하면 주위의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거룩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이방인들을 상종하지 않고 원래 하나님이 그들을 부르셨던 목적대로 살지 않았던 것입니다.

내 삶의 목적이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빛과 소금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이 빛과 소금일 때 그 목적은 우리를 통해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이 그것에 맞춰져 있지 않다면 우리는 잘못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미얀마에 가서 보니 많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자기 자신에게 맞춰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뜻과는 멀어져 있었습니다. 춤추고 사랑하고 즐겁게 외치지만 그 모든 것의 근본적인 목적은 ‘하나님이여 우리를 축복하소서.’입니다. 성경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목적은 여러분을 통해 멸망해 가는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불탈 세상에 살고 있습니까? 소금이라는 역할은 세상을 부패하지 않게 하는 목적도 있지만, 주님이 말씀하신 근본적인 목적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고, 빛을 비춰 보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흑암의 세상입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세상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빛이 비추면 빛 가까이 나오는 사람이 있고, 또는 빛을 피해 도망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는 이도 가는 이도 없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혹시 여러분의 등불이 꺼져있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은 빛을 보고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빛을 비추지 못할 때 그들은 빛으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살아갈 때 빛을 비춰야 합니다. 그럴 때 사람들이 빛을 보고 나오게 됩니다. 과거에는 그리스도인이 직장에 들어가면 몇 사람이 그를 따라 주님께 나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가 직장에 가서 다른 이들에게 빛을 비추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신앙이 꺼지지 않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교회나 개인적인 신앙이 모두 점점 자기중심으로 흘러갑니다.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말씀을 듣고 식사를 하고 성경공부를 하거나 교제를 나눕니다. 이것이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과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UFC 축구 클럽이 5년 정도 활동을 했습니다. 주변 지역 이웃들과 함께 축구를 할 때 그들을 주님께 이끌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이기기에 급급할 때 축구 때문에 성도의 신앙이 안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선교사로 갔다고 선교 헌금을 얼마 했다고 내가 목회를 한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 빛을 비추고 있습니까?

성년이 되기 전에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 있습니다. 가난하게 살다가 10억에 당첨되었을 때 명품 가방에 자동차를 사고 즐기며 살았는데 점점 마음에 갈증이 생겼습니다. 그녀는 복권회사를 고소했습니다. 어린 사람에게 이런 복권을 팔았다고 그래서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고 말했습니다.

최고의 지혜와 명성을 누리고 부를 누렸던 솔로몬은 인생을 통틀어 고백한 것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런 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마음에 갈증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지 답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 가운데 제대로 서 있다면 우리에게 갈증은 없습니다. 목마름을 느끼는 사람들은 목마르지 않은 사람에게 관심이 있게 마련입니다. 미얀마의 경제는 제가 처음 갔을 때와는 달리 최근에는 많이 부유해졌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집마다 자동차가 생기고 저마다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등 많이 부유해졌지만 우리에게는 만족이 없습니다. 솔로몬과 같은 경지에 이른 사람도 갈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갈증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우리입니다. 갈증을 느끼는 사람에게 이 물을 마시면 영원토록 목마르지 않으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입니다. 우리가 그 물을 주었을 때 그들이 뭐라고 할까요? “당신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데요?”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그 때 “저는 주일에 교회에 나가요”라고 하시겠습니까? 빛과 소금은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과 동행할 때 가능합니다. 많은 이들이 기독교의 종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 수 없습니다. 저는 이제 은퇴했으니 내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을 때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에게 우리 삶이 있을까요? 우리는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주님의 종입니다. 이번에 미얀마에 가면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하면서 갔습니다. 그러나 다녀오면서 ‘종은 별수 없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정을 지키고 자녀를 잘 양육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신 의무이지만 그것을 넘어서 우리의 역할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서 한 영혼이라도 하나님께 데려오는 것입니다. 세상은 멸망할 것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었든 촛불을 들었든 미얀마 사람이든 누구든 모두 멸망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들을 그냥 두어야 할까요? 취미생활도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그것이 목적은 아닙니다. 쉼도 필요하고 취미생활도 필요하고 운동도 필요하지만 우리의 최종목적은 그것이 아닙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여러분이 있는 곳에 빛을 비춰서 영혼들로 하여금 길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보고 내가 잘못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생활을 할 때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의 원수가 되든지 친구가 되든지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빛으로서 잘 비추고 있을까요? 단순히 ‘저사람 착한 사람이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영혼을 터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안에 성령이 계시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면 그들의 영혼을 터치할 수 있습니다. 영혼을 구원하시는 일은 성령이 하시는 일이기에 우리가 빛을 비춘다면 그분이 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를 돌아보며 과연 우리는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 자녀 직장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일까? 불탈 세상이 곧 끝날 것인데 내 삶이 그것에 맞춰지고 있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어떤 면에서든지 영혼을 구원하는 일과 연관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유평교회를 크게 키우는 것이 목적이냐고 묻습니다. 맞습니다. 저의 목적은 교회를 크게 키우는 것입니다. 영혼들이 많이 구원받아서 교회가 커지는 것입니다. 교회가 돈이 많아지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데 이 땅에서 교회를 키워 돈을 많이 버는 게 목적이겠습니까?

여러분은 왜 이 땅에 있습니까? 빛과 소금이 되어서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할 일은 그뿐입니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갈증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입니다.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다운 맛을 잃으면 어떻게 될까요? 짜지 않은 소금은 아무 쓸 데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도 그리스도인답지 않을 때 등불이 꺼져있을 때 빛의 역할을 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중에 어떤 이는 빛을 가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선한 일을 해서 사람들에게 빛을 비출 때 영혼들이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만났을 때 사람들은 “주여 저를 떠나소서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빛을 비추면 자신이 보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참 신앙인의 삶을 보며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데 어떻게 저렇게 만족할까 의아해할 것입니다. 오늘날은 물질적인 풍요가 사람들의 영혼을 좀먹고 있습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십시오. 그동안 철저하게 준비를 잘 하고 살았는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앞으로는 어떨까요? 하나님의 은혜로 살까요, 철저한 준비로 살까요? 믿음으로 사는 삶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서 사람들이 그것을 목격하는 삶. 그것이 빛과 소금의 삶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실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믿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서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시길 원하십니다. 내 신앙, 내 가정, 내 아이를 잘 키우는 것으로 만족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