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능력

2007년 June 10일 ()

본문: 고린도전서 2:1-5 |

주 제 : 십자가의 능력
본 문 : 고전 2:1-5
설교자 : 조 성 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복음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들은 많은 사람들의 삶이 변화되고 삶의 의미를 깨달으며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말씀에서 복음과 전도에 대해서 말하면서 ‘십자가의 능력’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전도에 대한 이해
복음은 첫째로, 하나님의 증거입니다.(1절)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그를 세상에 구세주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마 3:16-17에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가리켜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셨고, 마 17:5에서는 아들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증거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8:18; 5:32,37-38)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또 사도들을 통해 증거하는 것,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둘째로, 복음은 아들, 즉 예수님의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신 목적을 가지고 계셨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6)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만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기독교를 배타적이라고 생각하고 싫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만 구원이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시고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보다 먼저 온 사람들은 절도요, 강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3:16,36,) 그것이 아들이신 예수님의 증거, 즉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믿을 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됩니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유명한 의사를 찾아가고 좋은 약을 먹기에 힘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증거하신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복음은 참으로 기쁘고 복된 소식입니다.
하나님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간청하고 계십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에게 돌아오라.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네게로 돌아오라. 나는 너희의 죄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고(렘3:12, 사44:21-22) 신약에서는 사도들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간청하셨습니다.(롬3:25-26, 고후5:18-20)
예수님께서도 또한 사람들에게 간청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7:37-38)”

바울의 염려
그런데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증거하신 이 복음을 전하면서 한 가지를 염려합니다.(1,2,5절) 사도 바울은 원래의 복음에 자기의 생각이나 다른 어떤 것을 섞을 것을 염려했고 또한 자기의 지혜로운 말이나 설득으로 복음이 포장될 것을 우려했습니다. 나아가 사람들이 그 믿음을 하나님의 약속이 아닌 자신의 말에 두게 될까봐 이를 염려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사도 바울과 같은 생각을 갖지 않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온전한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다. 교회 나오면 집안의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는데 해결되지 않아서 이제 나오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 사람이 교회에 나오면 집안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온전한 복음을 전하지 않고 다른 것들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교회에 나오면 장사도 잘 되고 병이 나으며 결혼도 잘 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마치 모든 것을 가능한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막상 교회에 나와 보니 그 말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교회를 떠나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염려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믿음이 십자가의 능력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바울의 말에 있을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사람의 말에 근거하는 것, 이것은 정말로 두려운 것입니다. 만일 어떤 목사님이 자기에게 구원받았다고 말한 것을 믿고 살았는데,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휴거 될 때 자신은 부름을 받지 못했다면 그것은 정말로 비참한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전할 때 이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헛된 것에 그들의 믿음을 두지 않도록 주의해야 되고 특히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말에 그들의 믿음을 두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그들의 믿음을 두도록 올바른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떠나간 후에 바울과 아볼로 등의 사람을 좇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지 않고 사람에 두는 것, 그것은 정말로 잘못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나를 대신해 돌아가셨다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신뢰해야 될 바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화목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진 것인데 하나님께서 화목을 청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화목 제물로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을 통해 또 오늘날에는 우리를 통해 이를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할 것을 청하면서 다른 것을 첨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등의 복음 이외의 것을 전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복음을 전하다 보면 그런 욕구가 있을 때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이라도 교회에 데리고 오고 싶은 마음에 여러 가지 말로 사람들을 설득하고자 하는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십자가 외에 다른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에 대해,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십자가에 돌아가셨는지에 대해서만 전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지혜로운 말이나 자기의 생각으로 복음을 포장하는 것 역시 잘못된 것입니다. 한편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아버지에게 형을 데리고 오라는 말을 들은 동생이 형에게 가서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형, 아버지가 집으로 오라고 말씀하셨어.” 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 동생이 화려한 수식어를 붙이며 다른 말을 함께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의 화목의 요청을 전할 때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화목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하신 일 이외에 다른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사도 바울이 추구했던 목표는 이것이었습니다. 좋은 교회에 나오기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어떤 훌륭한 목사님이나 형제님이 구원받았다고 해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잘못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구원의 확신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에 있어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과 하나님 말씀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와 능력
구원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사람의 역사가 아닙니다. 사람은 단지 소식을 전해줄 뿐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을 듣게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은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아름다운 말로 구도자를 설득해도 성령님이 역사하시지 않으면 그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그 마음을 움직이셔서 그의 눈을 여시고 보게 하셔야만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있습니다. 복음 자체에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쥐약을 먹는 사람은 어른이나 아이나 가릴 것 없이 모두 죽는 것처럼 복음 자체에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가 전하든지 올바로 복음을 전하면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듣는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 자체를 사람에게 전해주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는가 여부는 그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밭의 비유를 들어 사람들의 마음 밭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복음을 들어도 금방 사탄이 와서 그것을 빼앗아 가버리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잠시 복음으로 인해 기뻐하지만 믿음을 저버리기도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잘못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할 바는 단지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것뿐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집 앞에 꽃이 몇 송이 피어있는데 그 꽃들은 제가 씨앗을 심어서 자란 것들입니다. 하지만 제가 물을 잘 주고 잘 돌보았기 때문에 그 꽃이 자란 것은 아닙니다. 왜 사람들이 변화될까요? 복음 자체에 능력이 있고 생명이 있기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일 때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구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에 근거한 성령님의 역사의 결과입니다. 성령님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인해 신자의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의 씨앗을 뿌릴 때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진리에 자신의 마음 두기를 힘썼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구원
이스라엘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놋뱀을 쳐다보는 자들은 누구든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오늘날 어떤 사람이 똑같이 놋뱀을 매달고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은 살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놋뱀을 쳐다보고 생명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거기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지 놋뱀이 사람들을 살리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믿는 자가 구원받는 것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사람이 해야 될 다른 일은 없습니다. 오직 믿기만 하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구원받을 때 뜨거운 감정을 갖는다거나 어떤 환상을 보길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 될 것은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믿는 것입니다. 독사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단지 놋뱀을 바라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살리신 것처럼 단지 하나님의 약속을, 주님의 대속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정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결론
복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에 근거한 복된 소식입니다. 또한 복음에는 하나님의 구원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의로 보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며 자녀 삼아 주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의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으로 설득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잘못된 것을 믿게 하여 지옥에 보내고 있습니다. 이는 얼마나 큰 범죄입니까? 우리는 사람들에게 잘못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잘못된 것에 그들의 믿음을 세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교인수를 늘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단순하게 십자가의 대속을 전하십시오. 그 후에는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의 믿음을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세우게 하는, 올바른 복음을 전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