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그리스도

2010년 January 3일

본문: 고린도전서 15:21-34 |

주 제: 아담과 그리스도

 

본 문: 고린도전서 15장 21절-34절

 

설교자: 조 성 훈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세례를 받느뇨 또 어찌하여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이나 다니엘과 같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저희 집 마당에 살고 있는 개미들에게 내년 봄에 마당을 공사할 계획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다니엘서에서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앞으로 되어질 일들에 대해서 얘기했을 때 그는 죽은 자처럼 되고 어안이 벙벙해졌다고 했습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단9:24)”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보면서 세상이 어떻게 되어질 것인가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길 원합니다.

 

그리스도가 하신 일

 

아담과 그리스도가 인류에게 미친 영향은 엄청납니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15:21)”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습니다. 사람의 운명은 생각할수록 비극적입니다. 최고급 차를 사고 좋은 집에 살아도 인간의 죽을 운명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양계장이나 돼지농장을 가시면 실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곳에 돼지무리를 보면서 그들에게 복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디에 살고 무엇을 먹든 그들은 도살장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단 한 명도 예외는 없습니다. 성공을 하든 출세를 하든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든 안 하든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임하는 결과는 똑같습니다.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9)” 이마에 땀이 흘러야 먹고 살 수 있다는 성경 말씀을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성취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롬5:14)”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 우리의 인생을 결산하면 수고와 슬픔뿐입니다.

 

아담이 자연에 미친 영향도 큽니다.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창1:30)” 모든 짐승은 원래 풀을 먹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범하고 나서 모든 짐승을 사람들에게 식물로 주신 것입니다.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창 9:3)”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고통가운데 있습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롬 8:22)”

 

그러나 예수님 한 분 안에서 우리는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15:22)” 예수님이 없다면 살아갈 의미가 없습니다. 인간은 모두 결국 사망에 이르고 영원토록 멸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 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3)”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 4:16)” 부활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의미와 색깔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순서는 첫째가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우리의 남편이나 아내, 자녀가 죽어서 장례를 치렀는데 며칠이 지나 누군가 그를 봤다고 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 부활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맨 처음 부활하심으로서 우리에게 보증이 되셨습니다(고전 15:13-14). 예수님 다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죽어서 묻힌 자들이 부활할 것이고 셋째는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몸으로 변화를 받을 것입니다(살전 4:16-17).

 

그리스도가 하시고 계시는 일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15:24)” 주님은 정사와 권세를 멸하시게 될 것입니다. 사단은 이 세상의 임금이 되어서 세상을 마음대로 주장하고 있는데 주님께서는 그 정사와 권세들을 다 잡아서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 하기 이전의 상태로 온 우주를 돌려놓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또한 주님은 사망을 폐하실 것입니다. 사망은 그것을 주관하는 사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단은 사망을 무기로 하여 많은 사람을 굴복시키고 자신의 수하에 두며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는 자들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요3:35)” 주님은 이 모든 만물을 새롭게 하셔서 아버지 하나님께 바치실 것입니다. 아담으로 인해서 세상이 타락하고 많은 고통과 사망이 왔지만 그리스도로 인해서 새롭게 변화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하실 일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세례를 받느뇨(15:29)” 만일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모든 소망은 끊어질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도 젊을 때 뿐입니다. 나이 90세가 되어서 여행이 즐거울까요, 어떤 음식이 맛있을까요. 부활의 소망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내세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묘 자리를 좋은 데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죽은 자를 위해서 하는 일들은 모두 우리가 내세를 믿고 있다는 증거가 아닙니까. 부활의 소망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고 말한 사도 바울을 생각해봅니다.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이 부활의 소망 때문에 생명을 내 놓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 부활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31-32)” 마귀의 범죄로 인해서 온 세상에 사망과 고통이 임하게 되고 소망이 없었지만, 그리스도에게 모든 것을 회복시키는 임무가 주어지고 구속사역이 완성되면 마귀와 정사와 권세자들을 잡아 영원한 불못에 던지실 것이고 세상을 불태우시며 새로운 세상을 만드셔서 하나님께 바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이 있다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사는 즐거움입니다.
‘날마다 죽는다’는 말은 날마다 죽음의 위험에 놓여있다는 것입니다. 하루 저녁을 편히 자는 것이 얼마나 행복인지 사도 바울을 생각하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성문의 벽을 타고 내리기도 하고 돌을 맞아 기절한 적도 있으며 수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의 말이, ‘부활이 없다면 내가 왜 이 고난을 당하겠냐’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에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면 먹고 마시고 즐길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먹고 마시고 즐기지 않습니다.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는 싸움, 투쟁, 민족과 민족이, 나라와 나라가 싸우는 일들이 현재 얼마나 멸망에 가까이 왔는지를 말해줍니다. 우리는 살기에 바빠서 부활의 소망을 접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그것을 사도 바울을 통해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곧 불타버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결론
한해가 또 지나갔습니다. 지금은 초가집에 살고 있지만 일 년 뒤에 좋은 아파트에 들어갈 계획이라면 그에게 시간이 가는 것이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하늘나라를 기대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은 날로 새롭다”는 고백과 “이 땅에서 사는 것보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더 좋다”는 고백은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사는 사람의 고백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머지않아 그 계획대로 이루실 것입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에게 가장 큰 소망이라면 주님의 오심에 대한 소망이 아닐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소망이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 분의 뜻이 이 땅에서 이뤄지는 것, 우리가 부활해서 주님의 나라에 참예하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새해에 우리에게 가장 고대하고 바라볼 것은 부활의 소망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