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 대한 증인들

2008년 March 23일 ()

본문: 요한복음 5:31-47 |

주 제: 아들에 대한 증인들

 

본 문: 요 5:31-47

 

설교자: 조 성 훈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 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되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였느니라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거를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 너희가 일시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요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용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며칠 전에 다큐멘터리를 한 편 보았습니다. 인도의 겐지스 강의 신들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인도의 11억 인구가 섬기는 신이 무려 3억 3천 가지 종류가 있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수많은 신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단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크게 3가지입니다. 하나는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인데, 전도관의 박태선, 통일교의 문선명, 영생교 조희성 등이 그렇습니다. 또한 자신을 주, 구세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일교의 이뢰자, JMS의 정명석 등이 그렇습니다. 또 하나는 이만희, 안산홍 등과 같이 자신이 성령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황당해합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당시 사람들도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이와 같이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당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우리가 들었다면 어땠을까요. 이웃에 한 아이가 태어나 성장하여 이제 갓 30살이 되었는데, 어느 날 광야에 다녀온 이후에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말입니다.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하고, 자신이 아브라함 이전부터 있었다고 하는 등 황당한 이야기를 한다면 어떨까요.

 

주님의 주장

 

지금 주님께서 주장하는 내용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황당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 전부터 계셨다고 하셨고(요 8:57-58), 또한 자신만이 길이고 진리라고 하셨습니다(요14:6). 자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셨으며(요6:53), 자신은 사람들의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하셨습니다(막2:10).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나는 하늘에서 왔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도 자칭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람과 자칭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주님은 자신이 말한 것에 그만한 증거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세계적으로 많은 이단들도 그들이 주장하는 것에 대한 증거를 댈 수는 없습니다. 어느 이단 교주가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하고 그에 합당한 증거를 보인다면 우리는 아마 그를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거나 바다를 걷거나 달을 없애거나 한다면 말입니다. 주님 또한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믿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제 1 증인: 세례 요한

 

자신이 자신을 가리켜 주라, 하나님이라 한다면 그것은 믿을 수 없습니다(31절). 그를 위하여 증거하는 이가 따로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증거가 황당해 보이지만 그것을 증거 할 수 있는 다른 증인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증인으로 세례 요한을 들었습니다. 33절을 보면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나오실 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나도 그를 알지 못했지만 나를 보내신 이가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그 위에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구세주인 것을 알라 하시기에 내가 증거하노라”고 했습니다. 바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구세주이심을 증거했던 것입니다.

 

제 2 증인: 하나님 아버지

 

36-37절을 보면 아버지께서 친히 아들에 대해 증거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마 3:17). 이 소리를 사람들과 제자들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 가셨을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하시는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습니다(마 17:5).

 

그 뿐 아니라 36절을 보면,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역사(표적)가 나를 증거한다고 하셨습니다(요14:11).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혼란스러웠습니다. 그의 태어남과 그의 부모를 알며 그를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어떻게 아브라함 전부터 있을 수 있느냐 하며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고 증인과 증거들을 사람들에게 보이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죽은 자를 살리신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고 자칭 하나님, 메시야라고 하는 자들이 썩어 냄새가 나는 시체를 가져오면 살려 낼 수 없습니다.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를 고친다든지 바다를 잔잔케 하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토록 놀라고 놀랐던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고 자연을 명령하여 순종케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위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제 3 증인 : 성경

 

39절을 보면 자신의 증거로 성경을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출생지와 사신 곳, 사람들에게 배척 받는 것이나 은 삼십에 팔린 것, 부자의 무덤에 묻힌 것 등, 이 모든 것이 성경에 기록된 것입니다. 가장 큰 증거는 예수님께서 스스로 말씀하셨듯이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자칭 메시야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이 보이지 않는 영으로 살았다고 주장하더라도 이는 사기꾼에 불과합니다.

 

주님을 믿은 자들의 증거

 

또 하나의 증거는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변화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인도인들이 섬기는 신들에 대한 내용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종교를 통해 자신이 행복해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망치고 있습니다.

 

겐지스 강의 신은 그 강물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에게 강물을 바치기 위해 물을 작은 항아리에 담아 100킬로미터를 맨발로 걸어 간다고 합니다. 궂은 날씨에도 황량한 벌판을 4일 정도 걸려 걸어갑니다. 그곳에 가면 작은 바위덩어리 신이 있어 그 위에 강물을 붓고 기뻐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이단을 만나면 폐가망신하고 자신의 삶까지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이단의 신들이 사람들에게 고행을 요구합니다. 오늘날 기독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삶을 평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종교화가 되어 고행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수를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예수님께 오면 생수를 얻을 수 있는데 신에게 나올수록 더 목마르고 더 힘들어지는 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참 생명의 양식이라고 하셨습니다. 영혼에서 나오는 굶주림이 예수님께 나와서 만족할 수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미신, 거짓종교, 이단에 나가는 사람들은 쉴 수 없습니다. 삶이 너무나 고달픕니다. 삼보일배를 하기위해 먼 길을 오래도록 걸어가는 티벳의 승려들을 봅니다. 그렇게 신의 비위를 맞춰 행복하게 살려고 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삶은 비참하지 않습니까.

 

결론

 

예수님을 믿을 때는 그만한 증거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의 증거와 아버지 하나님의 증거, 예수님을 통해 하시는 일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변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진정한 구세주는 그들을 만난 사람들의 변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확실한 구세주이시고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는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루지 못한 일들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우리의 믿음이 적다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우리 주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가 참다운 구세주를 만나고 확실하고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것입니까. 우리는 참으로 복 받은 자들입니다. 주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