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의 목적

2009년 May 31일 ()

본문: 디도서 2:11-15 |

주 제: 양육의 목적

 

본 문: 디도서 2장 11-15절

 

설교자: 조 성 훈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자기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기 때문에, 사람을 보면 하나님의 속성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자식에 대한 사랑입니다. 부모들마다 교육열도 참 대단합니다. 하나님은 어떠실까요? 하나님도 자식에 대한 사랑과 교육열이 특별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자신의 백성들을 훈련시키길 원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양육하실까요. 주님은 우리를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하시고, 죄의 권능으로부터 구원하시길, 현존하는 죄로부터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목적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11)” 구원의 대상은 모든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14)” 구원은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출발점이 됩니다. 아기가 태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스럽습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살아갈 세상이 참 험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도 세상에 어린 아이가 태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가 잉태되면 뱃속에서부터 태교를 하는데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로 태어나자마자 양육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나 자신을 위해 살았다면 구원받은 이후에는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도록 양육하십니다. 세상의 어떤 부모도 자식을 악하게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죄를 짓는 것은 누구나 익숙하고 스스로 잘 하기 때문에 굳이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선하게 사는 데는 많은 훈련과 양육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게 되면 그곳에는 죄를 짓는 사람도 없고 유혹자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 의롭게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의롭게 살도록 양육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를 양육하심 - 가르치심

 

“우리를 양육하시되(12)”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자식을 양육하는 것에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사 1:2-3)”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도 개가 만날 때마다 주인을 문다면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들의 가장 큰 근심은 자식들이 말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대들고 돈만 생기면 나쁜 짓을 한다면 아무리 자식이라 해도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신 8:2-3)”

 

예수님은 교회를 양육하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엡 5:29-30)” 모든 부모는 자식을 양육합니다. 자식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는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교회의 성도들을 양육하시는 목적은 그가 하나님께로 와서 의로운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양육의 방법은 말씀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깨닫고 배우게 됩니다. 또한 주님은 환경을 통해서 배우게 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환경에 처했을 때 거기서 무엇을 배우고자 하기보다는 하루 빨리 시련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동안 어려움을 겪어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 합니다.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배우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바로 보내지 않으시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육하신 것은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한 교훈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 역시 그렇습니다. 똑같은 환경을 수없이 많이 겪고도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이스라엘 백성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좋은 환경을 주셔서 시험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이 좋아지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때론 어려운 환경을 통해서 우리를 교육하시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환경 가운데서 무언가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성도들을 통해서도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다른 성도를 통해서 어려움이 온다면 무엇인가 가르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형제 자매들을 원수로 볼 것이 아니라 교사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불신자를 통해서 훈련하실 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에 들어가서 혹독한 훈련을 받기도 합니다.

 

양육의 목적

 

주님은 왜 우리를 양육하실까요. 우리는 자녀를 왜 양육합니까. 오늘날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학원에 보내고 공부를 시키는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세상에서 공부를 많이 해서 실력이 키워지면 좋은 직장을 가질 수는 있을지 몰라도, 자녀가 인간답게 살아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실패한 교육입니다.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12-13)” 주님이 우리를 양육하시는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경건치 않은 것을 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삶 안에 더러운 것과 경건치 못한 것을 버리기 위해서 우리를 양육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의 정욕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양육하십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6)”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인간의 육체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고 우리의 눈에 보기 좋기 위한 것이고 남에게 자랑하기 위한 것들입니다. 세상에는 사람의 눈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양육하시는 것은 여기서 벗어나도록 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지 20년 되었다면 우리는 주님을 통해 20년 동안 배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세상을 버렸습니까. 여전히 세상의 것들에 메여있다면 여러분은 그동안 헛되게 교육받은 것입니다. ‘근신’은 술 취함 없고 진지하게 사는 것입니다. 또한 ‘복스러운 소망’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모든 교육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 큰돈을 들여 교사를 구하고 심혈을 기울여 사교육을 시켰는데 일 년이 가고 이 년이 가도 자녀가 0점을 받는다면 어떨까요. 우리 역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환경과 삶을 통해서 양육하셨는데 그것이 삶의 열매로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하늘에 대한 소망으로 채우며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결과가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요.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15)” 모든 권위는 하나님의 권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종들을 통해서 성도들을 가르치고 교육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양육하시는 목적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경건하고 의롭게 살게 하고 하늘의 복된 소망을 기다리며 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면 이제 내 안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살게 해야 합니다. 주님은 매일매일 우리를 양육하고 계십니다. 부모는 자식을 포기할지 몰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도 매 주일 말씀을 듣고 공부하고 있으며 환경을 통해서 양육 받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삶의 변화가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요. 말씀을 통해 삶이 변화되도록 이 일을 계속하십시오. 하나님도 성령님도 교회도 그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