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구원

2004년 November 7일 ()

본문: 히브리서 7:1-28 |

제 목 : 완전한 구원
본 문 : 히브리서 7장 1절 ~ 28일
설교자 : 조 성 훈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완전한 구원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히브리서 7장에서는 완벽한 제사장, 완벽한 제물, 완벽한 속죄(제사), 완벽한 구원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완벽한 제사를 드리시고, 또 우리에게 얼마나 완벽한 구원을 주셨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완벽한 제사장
히브리서 기자는 멜기세덱과 레위 지파의 제사를 비교하면서, 왜 우리 주님께서 완벽한 제사장이신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레위 지파를 통한 제사는 불완전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제사장 제도 자체가 불완전한 것이었습니다. 첫째로 레위인 자신들도 죄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을 위한 제물도 드려야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죄인이 죄인들은 위한 제사를 드려야했던 것입니다. 둘째로, 그들이 드렸던 제물이 완벽하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로 불완전한 이유는 레위인들이 늙어 죽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후손들이 그 자리를 잇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레위 지파를 통한 제사의 모든 것들이 불완전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구원받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레위인들의 제사를 통해 구원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또한,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구원을 받은 구약 성도들이 있지만, 그 누구도 구약의 제사 제도를 통해 구원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는 구약의 제사 제도가 완벽하지 못한 것임을 말해줍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것을 세우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레위인들이 사람들과 같은 신분이기 때문에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음에 있습니다.
7장 11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이 말의 의미는 만약 레위 계통의 제사를 통해 의로움을 얻을 수 있다면, 왜 그것을 폐하고, 다른 제사장 계통의 제사를 세울 필요가 있겠느냐 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또한 율법을 통해서 구원함을 받을 수 있다면, 왜 예수 그리스도가 와서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겠느냐 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구약에도 구원받을 길이 있는데, 왜 신약에 와서 구원받을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하느냐 라는 말입니다.
신약에 보면 흥미 있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했던 일들입니다. 한 번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를 예수님께 물어보았습니다. 세를 바치는 것도 잘못된 것이 되고, 바치지 않으면 로마의 적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궁지로 몰아넣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유대인들은 크게 놀랐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역으로 질문을 하셨습니다. “성경은 메시아를 다윗의 후손이라고 했는데, 다윗은 어떻게 앞으로 오실 메시아에 대해 주라고 이야기하였느냐?(시편 110편 4절)” 후손을 주로 부를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그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히브리서 7장에서 말하는 것은 레위 계통의 제사를 가지고도 온전함을 얻을 수 있다고 하면, 왜 하나님께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을 세우게 하셨냐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계속해서 논리적으로 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멜기세덱에게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바쳤는데, 누가 높은가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아브라함의 허리에 모든 자손, 즉 레위의 자손들도 들어있었는데, 그들도 바친 것이 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했는데, 축복한 자가 높은가 아니면 축복 받은 자가 높으냐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더 높다는 것입니다. 또한 레위 지파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므로, 레위 계통의 제사보다 멜기세덱을 통한 제사가 더 낫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멜기세덱은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레위 계통은 시작도 있고, 끝도 있고, 죽음을 인하여 다른 제사장이 세워졌어야 했습니다. 물론 멜기세덱이 아버지도 없이 태어났다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 그 기록이 나와있지 않음을 예로 들어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깨달은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항상 하나님의 아들로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동등하시다 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을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여기에 보면 멜기세덱은 아비도 없고 시작도, 끝도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과 같다고 했는데, 아버지가 없다는 것은 결국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같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라” 이 말은 주님께서는 스스로 계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이사야 44장 6절)” 다른 말씀에서도 주님께서 시작이자, 마지막이 되심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멜기세덱은 레위 계통의 제사장 보다 훨씬 더 나은 제사장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보다 훨씬 더 나은, 완벽한 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은 흠도 없고, 점도 없고, 다른 제사장을 세울 필요 없이 영원히 살아계신 분이시며,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이사야 9장 6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해서 말하기를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 말씀을 보면, 우리 주님에 대해서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부름을 받으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삼위일체의 비밀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아들도 되시고, 하나님 그 본체이시고,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부름을 받기도 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온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바로 그러한 분이 우리의 제사장으로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놀라운 사실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유대인들에게는 굉장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레위 계통의 제사만이 있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시가 대통령이 될 것인지, 케리가 될 것인지 관심이 많았습니다. 일본의 수상은 케리가 대통령이 되면 정치 생명이 끝난다고 말했습니다. 이 조그마한 지구를 다스리는 정치도 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가에 따라 세계의 정세가 달라집니다. 그렇다면, 만약, 나와 친분관계가 깊은 제사장이 영원토록 그 제사장직을 한다면 어떻습니까? 우리를 잘 아시고, 우리에 대한 자비로우심이 풍부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시며, 사랑이 크신 예수님께서 나의 제사장으로 계시는데, 만약 그 기간이 5년 밖에 안 된다면, 우리는 매우 불안해할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한 가운데 싸여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제사장이 되십니다. 이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축복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우리의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완벽한 제사장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흠도 없고, 죽음도 없는, 영원토록 계셔서 우리의 약점을 담당하시는 그가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입니다. 우리를 가장 잘 이해하시는 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영원토록 계신다는 것입니다.

완벽한 제물
구약의 드려진 제물은 완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염소나 황소, 양 등의 짐승들은 1회용이었습니다. 계속해서 다른 제물을 드려야만 그 사람이 죽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유평 교회 나오시는 분들에게 죄를 질 때마다, 양이나 염소 등을 한 마리씩 드리라고 했다면, 모두들 얼마 못사실 것입니다. 있는 재산을 다 쓰게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1회용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벽하지 못한 제물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한 번의 제사로 영원한 속죄를 이룬 것입니다. 휴대폰의 배터리는 하루 이틀 혹은 삼일 정도 가는데, 가끔 저는 한 번 충전하면, 10년 정도 쓸 수 있는 배터리를 상상하곤 합니다. 마찬가지로 제물도 한 번 드리면 몇 년 동안 효력이 있는 것이면 좋았을 텐데, 죄를 질 때마다 드려야했기 때문에 그것은 매우 힘든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구약의 제물은 여러 사람이 아닌 오로지 한 사람의 한 가지 죄에만 해당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으로 영원한 속죄를 드리셨습니다. 제물 자체가 완벽한 것입니다. 단 한 번에 모든 인류, 즉 지금까지의 모든 인류와 앞으로 살아갈 모든 인류의 죄를 포함하고도 넘칠 수 있는 완벽한 제물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완벽한 속죄
우리가 세 번째로 볼 수 있는 것은 완벽한 속죄입니다. 단 한 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룬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늘 그 죄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하지만, 신약에 와서는 한 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 죄가 영원토록 속죄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 영원토록 속죄를 받은 것입니다. 과거의 죄, 현재의 죄, 앞으로 우리가 지을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지고 가시고, 모든 속죄를 완벽하게 이룬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제사드릴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완벽한 속죄를 이루셨기 때문에 더 이상의 제사는 필요 없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완벽한 제사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앞으로 지을 죄까지 용서해주셨다는 것은 믿지 않습니다. 만약, 이 순간까지의 모든 죄는 용서해주되, 앞으로는 죄를 짓지 않아야 하늘 나라에 갈 수 있다고 하면, 몇 사람이나 천국에 갈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죄를 짓지 아니해야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그것도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은 완벽한 것이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내 삶에 나타나게 될 모든 죄를 다 이룬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는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에게 나타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 십자가에서 속함을 받은 것입니다.

완벽한 구원
저는 이 말씀을 공부하면서 ‘완벽한 구원’에 대해 생각할 때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내가 가진 구원은 영원토록 완벽한 것, 변경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7장 24, 25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영원히 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사장의 직분도 영원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10장 14절에는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 라고 말하고 있으며, 17,18절에는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완벽한 것입니다. 현재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구원은 영원토록 완전한 것입니다. 영원토록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며 살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몸으로 하늘 나라에 가서 영원토록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 또 부족합니까? 완벽한 제사장이 영원토록 우리 곁에 있으시고, 완벽한 제물을 드리셨으며, 완벽한 속죄 제사를 이루시고, 우리에게 완벽한 구원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완벽한 구원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날마다 기뻐하고 있습니까? 십자가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루어주신 완벽한 구원만을 가지고 날마다 기뻐할 수 있을 텐데, 실은 그렇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디에서 이런 완벽한 제사장을 만나겠습니까? 그 만남 또한 우리가 원해서 만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그 사랑을 확증하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리스도인들이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은 뭔가 이상한 것이 아닙니까?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까? 베드로는 앉은뱅이를 향하여 금과 은은 없지만, 자신에게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말하노니... 라고 말했습니다. 금과 은은 없지만, 예수님이 그 안에 계신 걸로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 안에 계시지만, 금과 은이 없는 것으로 기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받으니까 사람들은 그것이 귀한 줄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는 모든 것을 가진 자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 생명이 없는 자는 모든 것을 다 잃은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영원한 생명이 없는 사람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한 것입니다.

결론
우리의 제사장은 완벽한 제사장입니다. 흠도 없고, 점도 없으며, 하나님 자신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또한 그는 흠없는 자신의 몸으로 완벽한 제물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으며, 우리에게 완전한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완전한 구원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항상 즐거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100억짜리 로또 복권이 당첨되는 것과 구원받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즐겁습니까? 몇 년 후면 우리는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원하고 완벽한 구원은 그 무엇으로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복 받은 자인지 알아야할 것입니다. 사람은 너무 복을 받으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헛된 것에 메여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원한 구원은 돈주고는 살 수 없는 값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만 가지고도 남은 평생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아야합니다. 늘 즐거워해야 합니다. 사업이 잘 안되면 어떻습니까? 직장 생활에 어려움이 있으면 어떻습니까? 얼마 후에는 우리가 주님과 함께 새로운 몸으로 영원히 살게 될텐데 말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공부하면서 사도 바울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주님께 갈 날이 다가옴을 보면서 그 마음 속에 기쁨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병원에 가서 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면, 그 병원을 나올 때 어떤 표정을 지으시겠습니까? 그토록 기다리던 하늘 나라에 가게 되었으니, 매우 즐거운 표정을 지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표정은 어떠할 것 같습니까? 천국에 가게 돼서 슬픕니까? 주님에게 뭘 잘못했냐고 묻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천국은 잘못한 사람만 가는 곳입니까? 하늘 나라는 믿고 거듭난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닙니까? 영원한 생명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는 것은 매우 스릴 있는 것일 것입니다. 눈을 감게 됨과 동시에 천사가 와서 하나님께 데리고 가고, 마음으로만 사모했던 주님을 만나게 되고, 주님께서 위로해주시고, 하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그 영광을 보게 되는 그런 날이 여러분 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영원한 구원, 바로 영원한 생명입니다. 돈주고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시길 바랍니다. 제자들이 주님께 나와 “주님, 우리가 명하니까 귀신들이 나가고 병자가 낫더이다.” 라고 말했을 때 주님께서는 “그로 인해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 나라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이름도 모두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록된 자들은 모두 복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록되지 못한 사람은 지금 이 순간부터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주님 앞에 나와야합니다. 생명이 없으면 모든 것에서 망한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이 완벽한 제사장, 완벽한 제물, 완벽한 제사, 완벽한 구원이 여러분의 것이 되어 있지 않다면,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자기에게 나오는 자를 결코 내어쫓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완벽하고 영원한 구원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그것으로 인해 즐거워하고, 남은 삶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할 것입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생명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할 것이고, 영원토록 우리에게 영광과 존귀를 더해주는 살아있는 것입니다. 주님께 늘 감사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영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제부터 하나님께 정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