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소망(1)

2006년 December 10일 ()

본문: 로마서 11:1-10 |

주 제 : 이스라엘의 소망

 

본 문 : 롬 11: 1-10

 

설교자: 조 성 훈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기록된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거듭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애굽을 빠져나와 광야 가운데서 인도함을 받았지만, 가나안에 이르러서는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섬겼고, 나중에는 메시아마저 버림으로써 그들은 하나님을 저버렸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서를 통해 하나님을 저버린 이스라엘을 말씀하시면서도, 계속해서 이스라엘에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 대한 약속은 행위, 또는 어떤 조건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은혜에 근거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는가?

 

주님께서는 마 21:33-39에서 비유를 들어 거듭된 이스라엘의 반역과 범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포도원의 주인이 외국으로 간 후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냈지만, 다 돌로 치고, 죽이고, 나중에는 상속자까지 죽였다고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결국에는 예수님까지 죽일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23:34-36에서는 그들이 선지자를 핍박하고, 예수님을 죽일 것을 직접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성경 많은 말씀에서 이스라엘의 계속된 반역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가리켜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많은 것들을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한 민족을 만드시고, 또한,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셨고, 광야에서 인도하셨으며, 가나안 사람들을 몰아내시는 등 이스라엘을 위해 수많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애굽에서부터, 광야,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또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하나님을 모욕하고, 거절하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폐해지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한 번 약속하신 것을 바꾸시거나, 폐하지 않으십니다. 사도 바울은 엘리야의 때를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400명의 바알의 선지자와 맞섰을 때, 하나님께, “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깁니다. 이제 나만 남았습니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7000명을 남겨두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남겨두신 것입니다. 롬 11:25-27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이방인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사람이 있고,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도 선택된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택하신 자들을 하나님께서 모으시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마 24:30-31)

 

왜 그들은 메시아를 믿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또, 왜 메시아를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첫째로는, 그들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구원의 잔치를 베푸셨고, 그 잔치에 유대인들을 초청했습니다.(눅 14:16-20) 하지만, 그들은 저마다의 이유를 들며, 잔치에 오기를 거부했습니다. 그 때, 주인은 종들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가서 잔치에 오라고 청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전에 초청함을 받은 사람, 즉, 초청을 받았으나, 거절한 사람은 잔치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그들이 예수님을 거절했다고 말합니다.(요 5:39,40, 마 23:37, 행 13:46) 물론, 이것은 한쪽 측면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에서 보면, (둘째,) 그들이 택함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한편으로,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을 자들을 정해놓으셨고, 그렇지 않은 자들의 마음은 완악하여졌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롬11:7-8)” 여기서 우리는 구원에 관한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예정, 이 두 가지 측면을 다 볼 수 있습니다.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자들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구원은 절대로 행위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은혜’는 그 어떤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구약의 많은 믿음의 선진들 역시 행위로 택함 받은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 대해, 성경은 ‘하나님을 믿으매, 그 믿음을 의로 여겼다.’고 말합니다. 이삭의 아들, 에서와 야곱 중에, 그 어미 뱃속에서 야곱이 선택받은 것 또한 어떤 행위 때문이 아닙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오히려 야곱이 더 악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태어나기도 전에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그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되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야곱을 택하신 것입니다. 신약에서의 이방인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받았습니다. 우리의 어떤 행위나 의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받은 것입니다.

 

택하심을 입지 못한 자들

 

본문 말씀에서, 택하심을 입지 못한 자는 완악하여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혼미한 심령이란, 그 마음이 혼돈되어서 무엇이 옳은지를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하고, 보지 못할 눈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도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이 원하지도 않았지만, 또 한편,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볼 수 있는 눈을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소리는 들어도 그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돼지들은 그들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서로 싸움을 합니다. 알았다 한들, 그들에겐 별 생각이 없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믿지 못한 사람들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우리는 얼마나 큰 복을 받은 자들입니까? 그뿐 아니라,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기쁨과 기업의 소망을 받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거절하고, 메시아마저 죽이는 악을 행했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의 약속은 폐해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폐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대상이 어찌 되었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자 작정한 대상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할 만 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이유 없이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그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모든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은 가족에서 제해 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택해놓으신 자들이 분명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로 폐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을 때에,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대적한 우리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11장 32절에서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33절에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결론

 

하나님게서는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속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폐해지지 않았으며,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 있습니다. 이방인인 우리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기로 작정하시고,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은, 우리를 택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셔서, 우리의 마음 문을 여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시고, 영원한 하늘나라의 생명을 주시고, 영광을 누리게 하시며, 영원토록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래도 무언가 부족하십니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너희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우리는 정말로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오늘날, 계속해서 복음을 듣지 않고, 거절하는 자들 중에는 어쩌면,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입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기쁨을 빼앗아 갈 만한 중요한 문제는 없습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며, 받은 은혜를 서로에게 베푸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