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특권과 비극

2006년 October 22일 ()

본문: 로마서 9:1-13 |

본 문 : 로마서 9:1-13

 

주 제 : 이스라엘의 특권과 비극

 

설교자 : 조 성 훈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사도바울의 근심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1-3)”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그의 아픈 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항상 그의 마음속에 잃어진 영혼들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었고 특히 그의 민족인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더 깊은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의 고통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진리에 대해 눈이 어두웠으며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나,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있었습니다. 그들은 생명의 빛의 비춤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마13:13,14)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 가운데서 말씀을 가르치고 이적을 베푸셨던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주의 말씀이 그들에게 전파되었고, 주님의 밝은 빛이 그들에게 비춰졌지만 그들은 어둠을 좋아했고 주님의 빛으로 나오기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들이 어둠을 택하므로 들려진 주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요12:36)고 말씀하신적도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고 기적을 보았으나 그들의 눈과 귀는 닫혀져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께서 복음을 잘못 전하여 그들이 믿지 못하였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그 어떤 사람도 예수님이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였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눅10:13)” 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동족들을 볼 때 안타까웠습니다. 사도행전 28:26-28에도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주님은 제자들에게 “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라(마10:5)고 하셨고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마15:24,26)”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을 회개시키는데 마음을 두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그들 가운데 역사하시고 말씀하시며 돌아오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집나간 자식을 애타게 기다리듯 사랑으로 계속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거절로 인해 구원의 기회가 이방인들에로 넘어 갔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이스라엘이 구원 받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바울이 지옥에 갈 지라도 자기 동족이 구원받기를 원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로 말한다면 북한동포가 구원받는다면 나는 지옥에 가도 좋습니다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편, 하나님이 이방인을 구원하신 것은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치 자기 자식에게 밥을 먹이는데 안 먹으니까 옆에 있는 다른 아이에게 주어 자기의 아이를 시기나게 하여 밥을 먹이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큰 사랑을 생각할 때 바울의 마음은 심히 아팠습니다.

 

이스라엘의 특권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4,5)”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첫째로, 그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유일한 민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외에 그 어떤 민족에게도 내 나라 내 백성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둘째로, 그들은 양자됨의 특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리켜 나의 자녀라고 말씀하십니다. 애굽에게 “내 아들을 놓으라. 고 하셨고 ”북방에게 내 자녀들을 가게 하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받은 특권은 그 어떤 민족도 가져보지 못한 것입니다. 셋째, 그들에게는 이스라엘만이 가졌던 특별한 영광이 있었습니다. 네팔에는 제사장 부족의 계급이 높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특권에 대해 자부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제상인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살아계신 참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였으니 그들의 영광의 직분은 놀라운 것 이었습니다. 넷째로,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과의 많은 언약들이 있었습니다. - 축복과 보호와 인도에 대한 약속들입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과 그 외의 자신의 종들과 많은 언약들을 세우시고 신실하게 지키셨습니다. 우리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지지 않았다면 소망이 없었습니다. 흑암 가운데 살다가 영원한 멸망을 받아야할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민족이었습니다. 다섯째로, 그들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가 있습니다. 엘리야가 이방 바알신들과 대결할 때에 그들이 섬기는 신들은 아무 응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방신은 죽은 신요 존재 자체가 없는 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야의 제물을 태우심으로 살아계신 참 하나님임을 입증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참된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그들은 기도에 응답하시고 함께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는 참되며 거룩하며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모두 사람보다 못한 죽은 신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나무나 돌이나 짐승의 형상의 우상에게 절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고 직접 말씀하시며 보여 주셨습니다. 살아계신 참 하나님께 대한 예배는 놀라운 특권입니다. 여섯째,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겼던 조상들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과 엘리야와 솔로몬과 같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들이 조상이었습니다. 더욱이 그들이 특별한 민족인 것은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오실 때 이스라엘의 자손으로 오신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통하여 오신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특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사랑과 정성과 인내와 온유를 생각해보십시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49:15)”,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호3:1)”,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갈지라도 사랑하신다고 계속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잊을지라도, 우상을 섬기고 다른 떡을 먹을 지라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하셨습니다. 잠잠히 사랑하시며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을 거듭거듭 나타내셨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인하여 참으로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그들의 불순종으로 인해 때로 바벨론으로 포로 잡히고 학대를 받게 내버려두셨지만 후에 그들을 학대한 이방민족을 징벌하셔서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렸습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할 때 바울의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자기의 의를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종교인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자기의 의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 10:2-3)” 이스라엘은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았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롬9:30-32)”

 

이방인들은 믿음을 좇아 가다가 의에 이르게 되었고 유대인들은 행위를 좇아 가다가 저주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의롭게 여기므로 그들이 죄인을 알게 하기 위하여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율법으로 자신들의 참 모습을 본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하여 의롭게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얼굴이 검은 사람에게 거울을 주었더니 거울의 자신의 모습보고 계속 희어지려고 칼로 피부를 도려내는 행위와 같습니다. 이룰 수 없는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의 참모습을 보게 하며 죄를 깨닫게 합니다.(롬3:20)

 

그들이 만약 참으로 율법을 알았다면 그들은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에게 나와 죄인임을 고백하고 주님을 영접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율법을 지켜서 구원 받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율법은 죄로 심히 죄 되게 하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율법이 오면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습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행위에 의지하므로 하나님의 의를 얻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의를 행할 수 있다고 믿고 율법의 선한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천국에 갈 확신을 가지지 못합니다. 행위에 의지하므로 그들이 가진 의는 불완전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안식에 노동도 아니 하고 여행도 아니하고 심지어 불을 켜기 위해 스위치를 올리거나 내리지도 않습니다. 십일조를 철저히 바치고 병도 고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로는 하나님의 의에 의를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8:11,12에서 바리세인 이렇게 기도합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이렇게 이들은 자신의 의를 내세움으로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세운 의를 가지고 구원을 얻으려 합니다. 주일을 성수하고 십일조를 드리고 여러 가지 자기의 선행의 의로 구원에 이르려 하기에 이들 역시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둘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한 이유는 예수그리스도를 인간 예수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 예수님이 성장하신 나세렛을 그들은 천한 곳으로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교육도 받지 못하셨습니다. 바울은 당시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했으나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어부들과 천시여기는 직업에 있던 사람들로 교육받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만을 보므로 메시아로 받아드릴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부정적인 눈으로 보기 때문에 그들은 주님께서 이적들을 행했을 때 귀신의 왕 바알세붑을 힘입어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메시아는 큰 영광 중에 나팔소리와 함께 왕으로 오시는 메시아였습니다. 나사렛에서 사시는 시골 목수의 아들 예수는 그들이 보기에는 너무 초라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의를 얻기 위해 자신의 행위의 의를 의지하고 예수님을 단지 나사렛의 천한 인간예수로 보았기에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6절”,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롬11:25-27)”,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11:3-5)”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폐하여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이스라엘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면 다시 구원의 기회는 이스라엘에게로 돌아갑니다. 엘리야가 하나님께 자기만 남았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7000명을 남겨 두었다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방인의구원의 때가 지나가면 이스라엘의 구원의 때가 시작되며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야할 교훈

 

유대인만 가련하고 불쌍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도 부모님이 그리스도인이며 어려서부터 교회에 나와 수없이 복음을 들었지만 구원을 얻지 못한 불쌍한 이들이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복음의 내용과 심판을 알면서도 주님을 배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의 복음을 듣고 사랑을 체험하는 특권을 누렸지만 주님을 배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조들 주에 목회자도 있었으며 어떤 이들은 대대로 기독교 전통을 가진 가정에 태어나 자란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모태 교인이라 합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행위 의지하므로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만약 오늘 주님이 오셔서 천국에 우리가 함께 이르렀을 때 보이지 않는 얼굴들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평교회에서 함께 교제하며 복음을 듣고 살았는데 그들이 주님을 영접하지 아니 하였으므로 우리와 길을 달리하고 영원한 멸망에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으라는 권고를 받았고 교회활동에도 참여하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침례도 받았을지 모르만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믿지 않아 지옥 간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진정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당시의 주와 구주로 영접하셨습니까? 구원의 점검은 자신 스스로가 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인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점검하시기 바랍니다.(고후13:5)

 

이스라엘은 선택된 민족으로서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과 예배와 훌륭한 조상들이 있었으나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들이 있는지 살펴보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 달리셨을 때 두 강도가 있었지만 한 강도는 주님을 믿었지만 다른 한 강도는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영원한 멸망가운데로 갔습니다. 구원받은 성도 여러분들은 사도 바울이 가졌던 애통한 마음과 근심으로 우리 주위의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사랑으로 기도하며 복음을 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