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능력으로 믿음을 지킨 교회

2009년 June 14일 ()

본문: 요한계시록 3:7-13 |

주 제: 적은 능력으로 믿음을 지킨 교회

 

본 문: 요한계시록 3장 7-13절

 

설교자: 조 성 훈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정확히 어떻게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 복음을 들은 사람들을 통해서 세워지게 되었다고 추측합니다. 이 교회는 터키 지역에 사데와 에베소, 라오디게아 교회 중앙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교회는 주님께서 칭찬하신 교회로 어떤 책망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역사적인 기록을 보면 14세기 중반까지 존재하다가 사라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교회는 아주 작은 교회였지만 능력과 살아있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7)” 주님은 항상 자기 자신에 대해 표현하셨는데 여기서는 ‘거룩하고 진실하신 분’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계 4:8)” 천사들이 “거룩하다”고 외치는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막 10:18)"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메시야가 오실 것을 약속하셨고 그를 통해서 이 세상을 구원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계 5:5)”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는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 이”는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는 말씀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의 문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하시는 주님을 가리킨 말입니다. 실제로 주님께서 하늘나라의 문을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습니다.

 

적은 능력으로 말씀을 지킨 교회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8)” 적은 능력이라는 말은 숫자적인 부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부흥을 생각할 때 사람들의 숫자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숫자적으로 적다고 해서 부흥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얼마나 영향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너희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고 나를 배반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초창기 기독교인들은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마치 깜깜한 밤에 비추는 빛과 같았습니다. 낯에 촛불을 켜면 밝게 느껴지지 않지만 밤에는 촛불하나가 큰 빛을 발휘합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그들은 많은 숫자를 자랑하지만 그들 각자가 사회에 나가서는 전혀 영향력을 미치지 못합니다. 우리는 점점 더 숫자가 늘어가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늘어가기를 원합니다. 이 지역, 더 나아가 온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를 원합니다. 주님도 열두 명으로 시작해서 그 능력이 온 세상에 퍼지지 않았습니까. 오늘 아침 모인 이 숫자로 시작하면 어떨까요.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기를 원합니다. 서구 사회가 한창 복음으로 부흥될 때는 모든 술집이 문을 닫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두워가는 세상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길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욥 23:12)"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고 그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은 기독교인들이 물질적으로 풍족해지자 점점 그리스도의 능력과 향기가 사라지고 많은 부분이 세속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이 말씀은 구원의 확실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의 문을 열어 놓으신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닫으시면 누구도 열 수 없습니다. 또한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도 항상 열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어느 날 우리의 삶을 결산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내 사랑을 나타내리라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9)” 주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습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10)”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이름을 배반하지 않으며 영향력을 주위에 미쳐서 주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은 “나를 나타내리라”, “너희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매사에 늘 만족하고 기뻐하는 이유는 주님이 가까이 계심을 몸소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주위 환경이 얼마나 열악하고 어려운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물질이 많아지거나 환경이 좋아져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거룩을 지키며 세속화 되지 않고 주님과 동행한 사람이 그 축복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느긋한 주님을 만나 느긋해지고, 욕만 하던 사람이 주님과 축복된 말을 하다 보니 언어가 순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육신의 쾌락을 좇아 사는 사람은, 주님과의 동행을 체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격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내 영혼이 느끼고 또한 주위 사람들이 압니다. 아브라함과 요셉은 그들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주위 사람들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그의 삶에 나타나기 때문에 숨길 수 없는 것입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주님은 주님을 존중하는 자를 존중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내 영혼이 험악한 세상에 살아가면서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면, 스스로가 주님 안에서 바로 서있지 못한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사람들이 볼 때는 별 볼 일 없는 교회였지만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숫자가 많아지기보다는 성도 하나하나가 능력이 넘쳐서 주위 사람들을 주님께서 인도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는 장차 올 대환란을 의미합니다. 교회가 들림받는 휴거가 대환란 이전에 있다는 견해와 중간에 있다는 견해, 그리고 환란 이후에 있다는 세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보면 대환란 이전에 교회가 들림을 받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네 면류관을 빼앗기 못하게 하라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11)” 주님을 섬기면서 통탄스러운 것은 많은 성도들이 사단에게 속아서 자신의 면류관을 잃어버리는 일입니다. 우리는 각자 믿음을 굳게 잡아서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12)”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하늘나라의 어마어마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갔는데 큰 기둥에 여러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습니까. 기둥과 같은 중요한 위치에 여러분을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승리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승리하는 자를 보는 기쁨을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주인이 올 때 종이 깨어있는 것을 보면 그 종을 위해 수종을 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깨어 믿음을 굳게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결론

 

빌라델비아 교회는 숫자적으로 큰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교회들이 숫자적으로 크고 훌륭한 건물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몇 세기를 가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서구의 많은 교회들도 문을 닫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숫자적으로 늘어나는 것보다 능력있는 성도들을 통해 세상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 각자가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야 가능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보이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