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을 부르심

2008년 August 24일 ()

본문: 마태복음 4:12-25 |

주 제: 제자들을 부르심

 

본 문: 마4:12-25

 

설교자: 조 성 훈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계획하셔서 합당한 때와 장소에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은 모든 사역을 정확하게 성경에 예언된 대로 행하셨습니다.

 

공적 사역의 시작

 

12절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은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갈릴리로 가십니다. 13절에 예수님이 가신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이라는 곳은 이사야를 통해 예언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삶과 여정은 선지자들을 통해 정확하게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15, 16절은 예수님께서 그곳에 오셔서 말씀을 전하시고 사역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던 세례 요한은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우리 중에 요한처럼 살고 싶으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가치관으로 볼 때 그의 삶은 분명 흥미롭지 않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은 마귀가 우리에게 준 것으로, 그러한 가치관으로 보면 영적인 것은 값어치가 없게 보입니다. 세례 요한 뿐만 아니라 모든 제자들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흔히들 바라는 노년은 병 안 걸리고 건강하게 오래도록 살다가 조용히 주님께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자신이 가야할 길을 달려가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고 사도 바울 역시 말했습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바다 위쪽에 있는 지역인데 주님은 물론 우연히 그곳에 가신 것이 아니고 성경에 미리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본문에는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을 가리켜 흑암에 앉은 백성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흑암 가운데 있습니다. 스스로 나는 아니라고 주장해도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우연히 돌이 쌓인 곳에, 큰 나무, 큰 바위에 절을 하고 복을 비는 모습이 흑암 가운데 있는 눈먼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까. 그래서 주님께서 어둠 가운데 있는 이 땅에 빛을 비추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빛을 받으면 자신의 상태가 어떠한가가 드러나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요 12:35)”고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생명의 빛(요 8:12), 치료의 광선(말 4:2)이라고 말했듯이 주님께서 오셔서 어둠 가운데서 생명의 빛을 비추신 것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심

 

주님이 부르신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는 어부였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온 세상 사람들에게 빛을 비출 제자를 선택하시는데, 나아가 장차 열두 보좌에 앉아 온 세상을 다스릴 자를 선택하시는 자리에서 베드로와 안드레가 선택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베드로의 성격은 어떻습니까. 신약 성경을 살펴보면 항상 누구보다 먼저 나서고 말이 많으며 그래서 실수가 많은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어떻습니까. 주님은 그들을 가리켜 ‘우뢰의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아는 한 집사님의 아들들이 있었는데 이름이 ‘천둥’과 ‘번개’였습니다. 그 아이들은 얼마나 산만한지 어머니는 아들들에게 “제발 사라져라”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여기 야고보와 요한도 ‘번개의 아들’이라 불릴 정도로 성격이 급한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례로 그들이 어떤 마을 사람들에게 가서 전도하는데 그들이 예수님을 거절하자 주님께 말하기를 하늘에서 불을 내려 당장 태워버리자고 할 정도입니다. 주님은 밤새 기도하시고 준비하신 뒤 택한 사람들이 이들입니다. 성격이 급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사람을 택하셔서 훌륭한 제자로 양육하시는 모습을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그동안 이들이 해온 일이라면 고기 잡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이 나타나셔서 “나를 좇으라 내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이와 같이 말했다면 따라 갈 사람이 있을까요. 세상적인 상식으로 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더구나 이때는 주님이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시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배를 버려두고 주님을 좇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밭을 갈다가 값진 보화를 발견하고 돌아가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산 것과 같습니다. 한 진주장사가 진주를 사러 다니다가 값진 진주를 발견하고 자신의 재산을 팔아 그것을 산 것과 같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가치를 주님에게서 발견한 것입니다. 사람은 굉장히 이기적이어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것을 위해서 다른 것을 내어놓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에게서 그러한 가치를 발견합니까.

 

이 사람들을 택하신 예수님을 생각해 봅시다. 주님은 무엇을 보고 이들을 부르셨을까요. 성격도 급하고 일을 그르칠 가능성이 많을 사람들인데, 배운 것도 없어 유대인들이 무식하다고 말하는 이 사람들을 택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분명한 것은 절대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그들을 택하지는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안에서 가능성을 보셨고 결국 그들을 택하셔서 주님의 제자로 양육하셨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고귀한 자리인지 그들은 몰랐을 것입니다. 그것은 큰 은혜입니다.

 

주님이 많은 이적을 보이면서 ‘나를 좇으라’고 하신다면 자신의 소유를 버리고 따라가지 않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어떤 이적도 보이지 않으면서 나를 따르라고 한다면 따를 자가 있을까요. 예수님은 오히려 나를 따르려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그들은 자신의 모든 소유를 버려두고, 심지어 가족까지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의 입장에서 보면 주님을 어떻게 따라갈 수 있었을까요. 주님을 따르는 길은 분명 순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고생만 하고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에게서 그만한 가치를 발견했던 것이고, 오늘날 우리는 그들을 생각할 때 참 귀한 삶을 살았다고 부러워합니다. 그들은 지금 큰 영광 가운데서 하늘나라에 앉아 있을 것입니다.

 

병자를 고치시고 이적을 행하시며 주님이 외치신 것은 ‘회개하라’와 ‘복음을 믿으라’였습니다. 바로 그 일을 위해서 제자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많은 일들을 하고 있지만 참 무익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동일하게 부르고 계십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추구하고 있는 것들은 영적인 일과 연관되어 있지 않다면 결국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고 헛된 일입니다.

 

모든 것을 다 버려두고 좇았는데 우리에게 무엇이 있겠냐고 묻는 베드로에게 주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전토나 집, 가족을 버린 자는 이 땅에서 배나 받고 하늘에서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론

 

주님께서는 어떤 사람이든지 쓰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땅에 있으면서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를 정도로 주님께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삶 동안 무엇을 위해 살겠습니까. 고기를 낚는 것과 사람을 낚는 것 중에 무엇이 중요한 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셔서 영광된 자리에 앉히신 것처럼 우리도 사람을 낚는 일에 참여한다면 그와 같은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변화시키실 수 있고 우리를 통해서 복된 복음을 전하시길 원하시며 사람을 낚고 우주를 다스리고 영광을 함께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에 자식들을 키워야 한다고 거절하시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가서 가족과 작별하게 하소서”, “부모님을 장사하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자리에서 그물과 배를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주님은 사망의 그늘에 앉은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답할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