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종과 하나님의 종

2006년 September 24일 ()

본문: 로마서 6:15-23 |

주 제 : 죄의 종과 의의 종

본 문 : 롬 6:15-23

설교자 : 조 성 훈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요 8:34에서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죄의 종이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없고, 죄를 따라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모두 죄 가운데서 신음하고 있고, 죄가 사람의 마음을 통제하고 말을 통제하며 행동을 통제합니다. 죄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갈 5:19-21, 롬 1:29에서는 죄의 열매들을 말하고 있는데, 사람이 죄의 종이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며, 모든 비극의 시작입니다. 사람들은 술에, 노름에 메여 거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노름을 하는 사람도 술을 많이 마신 사람들도 모두 후회하지만,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는 죄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종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음

그런데, 사도 바울은 본문 말씀에서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우리가 죄 아래 있지 않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 여러 말씀에서 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롬 7:6에서는 율법에서 벗어났다고 말하고 있고, 7:4에서는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했다고 말합니다. 또한 8:3-4에서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고, 6:14에서는 우리가 법 아래 있고, 은혜 아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죄 아래 거하게 된 것은 먼저 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게 된 것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법을 어겼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그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쉼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은혜에는 어떤 조건이 없으며, 순전히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통행금지’라는 법이 있었을 때에는, 12시가 넘으면 다닐 수 없고, 다니게 되면, 법에 걸렸지만, 지금은 그러한 법이 없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로워진 것처럼, 우리 역시 죄의 법에서 얽매여 있다가 자유의 몸이 되었고, 이제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15절에서 한 가지 의문점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제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죄를 지어도 되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은혜로 받는 구원을 이야기하면서, 구원을 받으면, 모든 죄에서 해방된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렇다면 이제 죄를 지어도 되겠다고 말을 합니다. 또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받았으므로, 나는 이제 죄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의문점들에 대해 단호하게 그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첫째로,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입니다.(롬 6:1-4) 어떤 사람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다는 말씀을 근거로 들어 죄를 더 많이 지어야 더 많은 은혜를 받는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그것을 용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자신의 맘대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좀 더 주님을 섬기지 못하고, 좀 더 주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좀 더 의롭게 살지 못하여 그 마음이 괴로울 뿐이지, 구원받았다고 해서 자신의 마음대로 살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제 자신은 구원받았고 죄와는 무관하기 때문에 이제 내가 짓는 죄는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 역시 잘못된 생각입니다. 마음대로 죄를 지어도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둘째로, 우리 안에 성령님이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죄를 즐거워할 수 없습니다.(요일 3:9) 죄 가운데 빠지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살아계셔서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기 때문에, 계속해서 죄 가운데 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그 안에 성령의 소욕이 있기 때문에 잘못된 길을 갈 때, 그 양심이 이를 잘못되었다고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성도들의 성격 때문입니다. 성경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면서 죄를 함께 섬길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도 죄에 빠질 수 있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죄 가운데 계속해서 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박씨 집안의 머슴이 잠깐 잠깐 김씨 집에 가서 일할 수는 있지만, 계속해서 김씨 집에 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한 구원 받은 성도들에게는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이 있습니다. 순종이 없는 구원은 진정한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한 번에 모두 변화할 수는 없지만, 점진적으로 주님의 신분을 좇아가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죄에서 해방됨

그렇다면, 우리가 계속해서 죄 가운데 거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17-18절은 이 질문에 대해 우리에게 답변해주고 있습니다. “...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죄의 종이었던 우리가 그 죄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그 말씀을 받아들여, 즉 우리 죄 때문에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것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여서 우리는 죄의 종에서 해방되고, 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계속해서 죄 가운데 머물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었을 뿐 아니라 사망에서도 해방되었습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와서 사망이 왔는데, 이제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었으므로 사망에서도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사망이 아닌, 영원한 생명만이 있습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우리가 사망에서 해방되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호 13:14, 시 116:8, 요 5:24, 딤후 1:10, 롬 8:2-4, 고전 15:54-56, 계 20:6)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

19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 우리 몸을 죄를 짓는 것에 드렸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부정과 불법에 우리 자신의 지체를 드렸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죄의 지배를 받으며 죄악이 원하는 대로 살아갔고, 결국 죄에게 순종한 결과는 사망입니다. 또한 우리는 영원한 불못이 있는 지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 몸을 죄에 드리지 말고, 의로운 삶을 위해,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데, 격려하는데 우리의 몸을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며,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또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것,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렇다면, 죄에서, 사망에서, 율법에서 해방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제는 우리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고 말합니다.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의롭게 사는데 우리 지체를 사용해야 됩니다. 우리는 죄에서 해방 받은 것 하나로 춤을 추며 즐거워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단 한 번의 실수로 우리는 죄 아래 매이게 되었고, 날마다 탄식하며 살아가게 되었고,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그 죄의 그늘 아래서 우리가 벗어난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일제의 치하에서 35년 만에 해방되었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사람들은 손에 손을 잡고 만세를 부르며 즐거워했습니다. 혹, 다시 일본 사람들 밑에서 일본 사람들을 섬기고 싶어한 사람이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4천년 만에 죄에서 해방된 우리 인간들은 얼마나 기쁠까요? 다시 죄 아래 메이길 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까?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의의 종이 된 우리는 이제 기쁨 가운데 의의 열매를 맺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결론

우리의 남은 삶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정말로 복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섬기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을 보면, 누구의 종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여러분은 율법에서 해방되고, 의의 종이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습니다. 이제 남은 여러분의 삶을 의의 지체로 드리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의의 종이 된 자들의 마땅히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