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만찬

2010년 March 21일 ()

본문: 고린도전서 11:17-34 |

주 제: 주님의 만찬
본 문: 고린도전서 11장 17-34절
설교자: 조 성 훈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저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첫째는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대강 믿노니 너희 중에 편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취함이라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함이라 그 남은 것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귀정하리라”

 

만찬의 목적과 의미

 

우리는 매 주일마다 떡과 잔을 가지고 주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떡과 잔을 통해서 주님의 고난과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행하는 주의 만찬과 성경에서 보여주는 만찬은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저녁식사를 겸해서 행하던 만찬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직접 제정하신 것입니다.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 하리라 하시고 이에 잔을 받으사 사례하시고 가라사대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 하리라 하시고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14-20)” 이 만찬은 유월절을 지키는 동안에 주님께서 제정하신 것입니다.
유월절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때를 기념하여 저녁에 양을 잡아서 쓴 나물과 함께 먹던 식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대로 출애굽 하던 날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 유월절을 지키게 했습니다. 주님은 유월절 의식을 행하시며 잔을 하나 가지시고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피이다”, 떡을 가지고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기억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오랜만에 한번 잘 먹어보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제사의 목적이 아닙니다. 돌아가신 분의 영혼이 돌아와서 음식을 먹거나 냄새를 맡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날을 통해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님 역시 이 의식을 행하며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3-55)” 이것은 우리를 위해 찢기실 주님의 몸과 흘리실 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떡과 잔이 실제로 주님의 몸과 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과 관련하며 잘못된 주장들이 많이 나타났는데 그 중에 하나가 떡과 잔을 놓고 기도를 드리면 실제로 그것이 주님의 몸과 피가 된다는 주장입니다. 만일 파리가 날아가다가 그 잔에 빠졌다면 과연 파리는 거룩해지겠느냐, 떡이 주님의 살이라면 그것이 먹고 남았을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가 논쟁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원래 의도하신 것과 벗어난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죽음을 기억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참 빨리 잊어버리기 때문에 이 의식을 행하며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과 우리 사이에 세워진 언약을 기억하기를, 나아가 후손들에게도 전하여 잊지 않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피가 헛되지 않고 늘 기억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주님을 기억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6-47)”
저는 보리밥을 먹게 되면 어릴 적 어렵게 살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어떤 상징물을 통해서 그것을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의도하신 것도 그와 같습니다. 떡과 잔을 통해 주님의 죽으심과 사랑, 부활과 새언약을 기억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우리의 모인 윗 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하고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래 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행 20:7-11)” 이 말씀을 보면 ‘예배를 했다’고 표현하지 않고 ‘떡을 떼어 먹었다’고 표현했습니다. 당시 떡과 잔은 주님을 기억하는 의미가 강했던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23-25)” 주의 만찬을 제정하신 목적 중에 하나는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세상 어느 누가 나를 위해 죽어주겠습니까. 또한 주님과 우리 사이에 피로 세운 새언약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떠나지 않으리라” “내가 네 하나님이 되리라” 등 많은 언약을 하셨는데 그 약속들에 대하여 우리는 외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의 피를 통해 여러분과 저는 새언약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구약과 신약의 막힌 담을 허시고 복된 시민,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떡과 잔을 보면서 기억하고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후손들에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우양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 제사를 드리되 유교병을 그것과 아울러 먹지 말고 칠일 동안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그것과 아울러 먹으라 이는 네가 애굽 땅에서 급속히 나왔음이니 이같이 행하여 너의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신 16:2-3)” 이것이 유월절을 지키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여호수아가 그 요단에서 가져 온 열 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 가로되 후일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묻기를 이 돌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자손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 마르게 하사 너희로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로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수 4:20-24)”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널 때 거기서 돌 열두 개를 꺼내서 길갈이라는 곳에 세워두었습니다. 홍해를 건널 때에도, 요단강을 건널 때에도 주님을 기억하고 후손들에게 전해 잊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목적에서 벗어난 만찬예식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저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첫째는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대강 믿노니 너희 중에 편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취함이라(17-21)” 본문 말씀을 보면 그 모임이 유익이 되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분당이 있었고 원래 목적에서 벗어났습니다. 또한 만찬의 목적에서 벗어나 음식을 먹고 취하고 배부른 데만 마음을 두었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은 굶주렸고 부하고 힘 있는 사람은 배부르며 술에 취했습니다. 이것은 원래 만찬의 목적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목적에서 벗어난 만찬예식으로 인한 결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27)” 주의 만찬에 참여할 때 죄가 조금도 없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아침에 떡과 잔에 참여하신 분들 중에 죄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기서 말하는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의도하신 대로 먹고 마시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죽으심을 생각하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떡과 잔을 대하지 않고 다른 이유로 떡과 잔을 대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에 처음 오신 분들 중에는 자신을 제외하고 떡과 잔을 돌리는 것에 대해 서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죽으심과 피흘리심을 알지 못한 채 떡과 잔을 대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만찬은 순수하게 주님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교회 밖에서는 온갖 죄를 다 지으면서 양심의 가책도 없이 주님의 떡과 잔을 대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주님의 떡과 잔을 합당하게 먹고 마시는 것은 주님이 원하신 대로 주님의 죽으심을 생각하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떡과 잔을 마시는 것에 대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주님의 떡과 잔을 분별없이 먹고 마실 때 약한 자와 병든 자, 잠자는 자(죽는 자)가 적지 않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31-32)” 주님의 목적대로 떡과 잔을 마시고 있는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결론

 

우리는 매주 주님의 떡과 잔을 놓고 예배를 드립니다.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고 얼마나 고통을 당하셨는가, 내가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주님이 친히 부탁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기억하기를 원하시고 후세에 자손들에게도 잊지 않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네팔에서는 현재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한 달 동안을 부모님의 묘 옆에서 상복을 입고 지낸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묘도 없고 제사도 지내지 않는다면, 자손들이 부모님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부모님은 얼마나 서운할까요. 주님께서 매주 주님을 기억하는 의식을 행하게 하신 것에 참 감사합니다. 이 의식을 통해 마음을 주님께로 모으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