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양의 축복

2008년 June 22일 ()

본문: 요한복음 10:22-39 |

주 제 : 주님의 양의 축복

본 문 : 요한복음 10장 22절-39절

설교자 : 조 성 훈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가로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하느냐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찌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 저희가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수전절은 수리아 왕이 제우스의 제단을 예루살렘 성전에 세웠는데 이를 깨끗하게 한 날을 기념해서 만든 절기입니다.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시는 모습이 나오는데, 예수님은 상당히 사역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사역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5절을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라고 하고 있고 13장 11절에서는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야만 하는데 동시에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서는 안 되는 그런 처지에 계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진실로 잘 알게 되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구속 사역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떤 이들에게는 자신을 숨기시고 어떤 이들에게는 드러내셨습니다.: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유대인들의 혼란

 

본문의 서두에 보면 유대인들은 혼란 가운데서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 같은 자들에게는 찾아가셔서 “네가 말하는 그가 곧 나다”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저 비유로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알고 있는 예수님은 그저 나사렛의 목수의 아들에 불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틀린 것 같기도 했기 때문에 “언제까지 우리를 혼란 가운데 있게 할 것입니까?”라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도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근데,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어떤 때는 “정말 저렇게 말씀한 사람은 없었다”고 하고 어떤 때는 “정말 알아듣기 어렵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8절부터 보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하속들을 보냈을 때에 그 하속들은 “지금까지 그 사람처럼 말한 사람은 없었다”(요 7:46)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들도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길거리에서 이런 말을 도인도인부터 들었다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나사렛 목수의 아들인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 목수의 아들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이야기했을 때에 그것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가장 어려웠던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자신을 동등하게 이야기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본문에서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했던 것도 바로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는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또 예수님은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며 생명이 없다”(요 6:53)고 하셨는데 이 역시 참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나갔다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브라함은 나의 때에 볼 것을 보려고 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다”고 하시자 사람들은 “네가 아브라함을 보았는냐?”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 8:57-58)고 하셨습니다. 참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예수님은 선지자 같기도 하고 제 정신이 아닌 사람 같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저가 미쳤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유대인들에게 참 어려웠기 때문에 그들이 이런 혼란 가운데 빠진 것도 아주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한가지 감사한 것은 주님께서 이러한 진리를 우리들에게 드러내셨다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유대인들을 혼란스럽게 했던 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9절부터 보면 “이 말씀을 인하여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저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혹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혼란스러웠던 이유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귀신 들려 미친 사람 같은데 하는 일을 보면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1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했을 때에 예수님은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하느냐”(32절)고 하셨습니다. 그 때 유대인들은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33절)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정말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성인이라고 이야기하면 거부하는 사람이 없지만, 하나님이라고 하면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일을 보고 믿으라”(37, 38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어떤 사람이 썩어서 냄새가 나는 시체에게 “나사로야 나오라”고 했을 때에 그 시체가 걸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풍랑 이는 바다를 잔잔케 하고 하는 일들은 귀신들린 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머리 속에 자신의 생각과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과 다른 것이 있으면 그것은 거짓이라고 생각해 버립니다. 이것은 마치 매미가 궁벵이들에게 파란 하늘에 대해 설명했을 때 궁벵이들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셔서 하늘 나라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정보로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행하는 그 일을 보고 믿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불신의 이유

 

26절에 보면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아버지께서 너희를 내게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너희에게는 들을 귀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참 불행한 일입니다. 수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수 많은 이적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양이 아니었다는 것이고 이 말은 곧 아버지께서 그들을 예수님께 보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 말씀이 들리지 않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의 양의 축복

 

성경에 보면 구원에 대한 양면이 나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셨다는 것 즉 아버지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수없이 복음을 듣고 예배당에 나오지만 전혀 귀가 열리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상에 복음처럼 쉬운 것이 없는데도 그것이 그렇게 어렵다고 합니다. 여기에 예수님을 믿었다고 하시는 분들은 주님의 양이기 때문에 믿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들을 귀를 주셨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주님은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저희를 주신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29절) 아무도 우리를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복음에는 정말 놀라운 역사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경을 기록하다가도 하나님의 찬양하고 그랬던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을 그리스도에게 보내시고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시고 보호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섭리인데 그 중에 여러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 받은 후에도 자신의 구원에 대해 의심을 합니다. 이 세상의 어떤 존재든 하나님보다 능력이 있다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빼앗아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면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이 로마서 8장에서 하고 있는 말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여기 말씀을 보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라고 한 후에 “종일 주를 위하여 ..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주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여기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고 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는 없습니다. 그게 감사한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토록 안전합니다.

 

세상에는 두 분류의 사람들이 있는 데 그 중 하나는 마음이 교만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성경이나 모든 말씀들을 허황된 것으로 여깁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하늘 나라로 올라갈 때에 발을 잡고 올라간다라고 조롱합니다. 그들에게 영생의 진리는 허황된 것으로 생각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양은 그 말씀을 듣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결론

 

유대인들은 혼란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당신이 메시아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그들에게 모든 것을 말씀하셨고 그들이 그것을 믿지 못했던 것은 예수님의 양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양입니까, 사탄의 양입니까? 주님의 양에게 주님은 영생을 주셨고 영원히 멸망치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습니까? 여기 사도 바울이 이야기 한 것처럼 우리가 지금은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고 있지만 우리는 영생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길 수 없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양들은 얼마나 복 받은 자들입니까? 우리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가 마땅히 할 것은 무엇입니까? 이 영원한 생명에 감사하고 주님을 찬양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