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영광

2009년 April 26일 ()

본문: 요한복음 17:1-5 |

주 제: 주님의 영광

 

본 문: 요한복음 17장 1-5절

 

설교자: 조 성 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본문 말씀은 주님께서 이 땅에서의 사역을 거의 마치시고 십자가만을 남겨놓고 계실 때에 하신 기도입니다. 주님은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혼자 둘 때가 왔다”고 하시면서 “너희가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하지만 담대하라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구속사역은 창세전부터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을 구원하실 것에 대해서 구약성경은 수차례 예언하고 있고 그 장소, 시간까지 세밀하게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국가의 원수들이 타국을 방문할 때는 이미 가기 전에 모든 협상을 끝낸 상태라고 합니다. 모든 스케쥴이 잡혀있고 심지어 정상들 간의 대화 주제까지도 정해진다고 합니다. 주님의 구속사역도 역시 그러했습니다. 이미 성경을 통해 예언되었고 하나님께서는 때와 장소 등 모든 것을 이미 준비해 두셨습니다.

 

때가 이르렀사오니“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여기서의 “때”는 대속할 때를 가리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생각하기에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니까 죽는 것도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주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계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이 괴로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질 때가 가까웠다는 의미이자, 주님께서 아버지에게 버림받을 때가 가까웠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단 한 번도 아버지와 떨어져 계신 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죽음은 당연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세계에서 죽음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심판의 때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마 8:29).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낼 것에 대해서 선지자들이 여러 번 예언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생각에는 메시야가 안 오실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다가 성전에서 메시야를 눈 앞에 보게 되었고 주님을 알아본 사람들은 감격했습니다. 지금 우리도 역시 2천 년 동안 예수님의 오심에 대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주님이 오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날 주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지금은 구원의 때라고 말합니다(고후 6:2). 곧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일할 수 없을 때가 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요 9:4).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도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시는 것도 모두 아버지께 영광이 되는 일입니다. 죽음도, 희생도, 고생도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그것이 아버지께 영광이 된다면 그 길을 가겠다는 것이 주님의 자세였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그러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자세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보았고 죄인들을 구원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셨습니다.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입술이 전부는 아닙니다. 찬송만 부른다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일을 내가 이루었을 때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늘 비유로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 그 비유를 해석해주셨습니다. 제자들이 그것에 대해서 묻자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했다는 것은 여러분에게는 하늘나라의 비밀이 허락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교회를 평생 동안 참석하고 복음에 대해서 수없이 많이 들었어도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우리를 예수님께 보내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아버지를 전하고 우리를 보존하여 지키시며 영광에 참여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롬 8:30).

 

영생은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복음은 단순하고 쉬운 것입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 돈을 만원씩 가져오라고 한다면 얼마나 쉽게습니까. 그러나 그것보다 더 쉬운 것은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아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에 뜨거운 감정이 생겨야 구원받은 것이고 그런 것이 없으면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일방적인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처음 면허증을 딴 사람의 차는 잘 타려고 하지 않지만 버스를 탈 때는 망설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신실하신 분이고 그분이 나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영접하는 것은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행2:21)” 길을 가면서, 집안일을 하면서 “아버지~아버지~”하고 부르는 것은 소용없습니다. 지나가는 남자를 남편이라고 부르지 않듯이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아니라면 ‘주님’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었을 때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고 그분이 무슨 일을 하셨고 그 일을 어떻게 누구를 위하여 했는가를 진정으로 안다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깨닫는 것이 아니라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주님을 영접하고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하는 것입니다.

 

결론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것을 함으로써 아버지를 영화롭게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십자가의 죽음을 잘 감당해서 아버지께 영광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영화롭게 해달라는 것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일할 수 없는 날이 올 것입니다. 세상을 떠날 때가 올 것이고 심판대 앞에 설 때가 올 것입니다. 아직 구원받지 못한 분은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분들은 어떻게 사는 것이 아버지께 영광이 되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보낸 사람들로서 그들에게 결코 실패란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내게 주신 자들을 절대 잃어버리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안에 있는 행복은 무엇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갚진 것입니다. 주님 안에 있는 우리는 누구도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이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