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더디 오시는 이유

2005년 November 6일 ()

본문: 베드로후서 3:8-12 |

주 제 : 주님께서 더디 오시는 이유
본 문 : 베드로후서 3장 8-12

 

설교자 : 조성훈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제가 주님을 처음 믿고 나서 가장 많이 들었던, 그리고 가장 강조되었던 이야기는 바로 주님께서 곧 오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듣고 주님의 오심이 마음에 크게 와 닿았고, 그 때 정황 상 주님께서 금방 오실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벌써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오심에 대한 마음이 많이 무디어져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조상 때부터 오시기로 한 주님이 아직도 오시지 않았는데, 주님께서 오시기는 하는 것인가’ 라며 주님의 오심에 대해 조롱하기도 합니다. 또 한편 10년 전쯤 종말론자들은 주님께서 몇 월 몇 일에 오신다고 정해놓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기도 했는데, 사람들의 생각은 이처럼 무지하며, 주님의 오심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우리에게 주님이 왜 더디 오시는지 그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님과 우리의 시간에 대한 인식

 

왜 우리는 주님이 더디 오신다고 생각할까요? 첫째로, 그 이유는 하나님과 우리의 시간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경 여러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금방 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뒤에 그 일을 이루시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는 하나님과 우리의 시간에 대한 인식이 다름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세상 사람들의 멸망에 대해 말씀하시고 나서 무려 120년 후에 그들을 멸망시키신 것을 볼 수 있고, 또한 그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 동안 에굽에서의 종살이를 한 후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실제로는 430년 후에 그들을 인도해내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와 하나님의 시간에 대한 인식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영원을 사시는 하나님께 있어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짧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하루살이는 애벌레로 1년 정도 있다가 하루살이가 되어 대부분 하루 정도의 시간을 삽니다. 하루살이는 하루라는 시간동안 짝을 만나 새끼를 낳고 죽습니다. 이 하루살이에게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하루살이가 ‘내일 보자.’ 라는 말을 이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에 대한 인식을 우리가 이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다고 했는데, 주님께서 곧 오시겠다고 하신 후 2000년이 흘렀으니, 이제 주님의 시간으로 이틀이 지난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겨우 이틀이 지났는데 사람들은 기다리다 지치고, 무디어진 것입니다. 주님께서 더디 오신다고 생각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인 것입니다.

 

신약 성경의 여러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도 우리와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는데, 로마서 13:11,12절 말씀에는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주님의 오심이 매우 임박했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외에도 빌 4:5, 살전 5:3, 고전 7:29-31 등에서 주님의 오심이 임박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베드로도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언제 주님이 오실 지에 대해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서 언제든지 오실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더디 오시는 이유

 

사실 더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대로 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주님께서 더디 오시는 이유는 할 수 있으면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혼이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그 은혜의 시간을 마감하시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구원받아야 할 사람은 많은데, 시간이 임박하여 그 문을 닫는다는 것은 사랑의 하나님에게 너무도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는데, 가나안 땅을 멸망시키겠다고 선포하시고 나서 400년이라는 시간을 그들에게 주셨고, 또 30년을 더 주셨습니다. 그들을 멸망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좋아하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성품을 볼 때,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심으로 구원의 기회를 끝내고 싶지 않으실 것입니다. 모두가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더디 오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오심에 대한 약속과 경고

 

주님께서는 수없이 우리들에게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 14:2,3, 마 24:44, 계 22:12,20 등의 말씀을 통해 수없이 우리들에게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오심은 틀림없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주님께서 오실지도 모릅니다. 만일 주님께서 내일 아침에 오신다고 하면, 우리는 오늘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지금까지 모아 둔 재산을 다 쓰게 될까요? 아니면, 열심히 전화로, 혹은 사람들을 찾아가서 전도를 하게 될까요? 아마도 우리의 삶은 많이 이전의 삶과는 많이 다를 것입니다.

 

또 성경 여러 곳에서는 주님의 다시 오심, 즉 재림과 휴거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데, 말씀들을 살펴보면, 엄청난 일들이 일어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이 땅이 뜨거운 불에 완전히 녹아서 모든 것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 무서운 일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이 시기에 어떠한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한지 묻고 있습니다. 살전 4:16-17 말씀에서는 공중에 오심을 말하고 있고, 마 24:30-31에서는 주님의 재림에 대해 말하면서 많은 민족들이 통곡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른 말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오시는 것을 친히 보게 되리라고 말하고 있고(눅 21:27), 마 24:27 과 벧후 3:10 에서는 주님의 오심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의 계획이고, 앞으로 이루어질 일들인 것입니다.

 

어느 날, 여러분들이 유평교회에 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면, 주님의 오심에 대해 생각해보셔야 할 것입니다. 그 때, 교회에 나온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구원받은 여러분들은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 혹은 운전을 하다가, 또는 집에서 빨래를 하다가 나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공중으로 올라가면서 여러분들의 몸은 완전한 새로운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 때에 얼마나 신날까요? 실제로 그런 일들이 여러분들에게 일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반면, 재림 후에 이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구원받을 가능성이 없습니다. 지금이 구원받을 만한 때요, 은혜의 날인 것입니다. 지금 구원받지 않으면, 영원히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시는 구원받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주님의 다시 오심을 미루신 줄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 모두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믿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오심에 대한 우리의 자세

 

그렇다면, 믿는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베드로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삶이 거룩해야 됨을 말하고 있고, 또 하나는 주님의 오심을 바라는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은 경건한 삶을 살기 힘든 세상입니다. 발전된 문명으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은 그 경건을 잃어버리기 쉽고, 우리의 생각까지도 부도덕한 것에 물들기 쉽기 때문에 거룩에서 멀어지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세상이 그렇게 되어질 것이기 때문에 더욱 더 경건한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또 한 가지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할 것을 말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여러분은 주님이 오시는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까? 더 나아질 삶 때문에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지 않는 것은 아닙니까? 성경은 주님의 오심을 간절히 바라고 사모하라고 말합니다. 또한 주님의 오심을 소망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깨끗이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주님의 오심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경건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속에 주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부도덕한 삶을 살기는 힘듭니다. 주님의 오심이 임박 하다고 생각하면, 자기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깨어있는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주님이 오실 때 깨어있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소망입니다. 우리의 모든 고통에 대한, 눈물에 대한 보상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몸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더 좋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새로운 몸으로 살게 될 것을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설레지 않습니까? 아이들의 사자와 함께 놀고, 독사 굴에 손을 넣어도 물지 않는 세상, 이 얼마나 즐거운 세상입니까?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많은 식물과 동물을 만드시고, 아담은 그 이름을 짓는 아름다운 모습이 성경에 기록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은 그보다 더 아름다울 것입니다. 그러한 소망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종종 구원을 받은, 하늘나라를 약속으로 받고 있는 우리는 자다가도 일어나서 춤을 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영원토록 살 수 있는 하늘나라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주님은 약속대로 우리에게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더디 오시는 이유는, 혹은 더디 오신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첫째로 하나님과 우리의 시간에 대한 인식이 다름에서 비롯되는 것이요, 두 번째로는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때문이며, 세 번째로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하나님께서 참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세상은 머지않아 불타서 없어질 것이요,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라고 말하는 베드로의 권고를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성경 말씀대로 우리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사모하면서 언제 주님이 오실지라도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주님의 오심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계획을 세울 때에는 예수님께서 우리 시대에 오시지 않을 것처럼 계획을 세우고 하루하루를 살 때에는 내일 오실 것처럼 삶을 살라.” 주님은 머지않아 오셔서 우리의 모든 수고에 대해서 보상해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각 사람이 일 한 대로 갚아 주리라.” 경건한 삶으로 주님의 오심을 사모하고 바라보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