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의지하는 자의 삶

2005년 May 22일 ()

본문: 시편 16편 |

본문 말씀: 시편 16편
주제: 주를 의지하는 자의 삶
설교자: 조성훈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저희가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찌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오늘 저는 『주만 의지하는 자의 삶』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여러분들께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다윗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자다. 내가 그를 통해 나의 일을 이루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에 대한 성경의 여러 기록과 시편 말씀 등을 보면, 다윗이 하나님을 얼마나 잘 아는 사람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정말로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이었고,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합한,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제게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신다고 말씀하신다면, 저는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과 합한 자가 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라는 소원을 빌고 싶습니다.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과 마음이 합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다윗의 생각이 같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을 꿰뚫고 있다는 것인데, 다시 말하면, 다윗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고, 어떻게 해야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께서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윗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육체의 연약함으로 인해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였습니다만, 그는 잘못을 했을 때 하나님께서 어떠한 자세를 원하셨는지 알고 있었던 사람인 것입니다. 그는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에게 자신의 모든 기쁨을 드리고, 진정한 기쁨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삶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과 합한 자들의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한 자, 다윗
첫째로, 다윗은 정말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절 말씀에 다윗은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다른 성경을 보면, "내가 주만 의지하나이다." 라는 말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의 생애를 통해 그가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했다면, 그는 돌팔매를 가지고 골리앗 앞에 나아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실질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셨는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할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피한다."는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그는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많은 복들을 구하지만, 다윗은 주 밖에는 나의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다윗이 주님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그만큼 귀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에 대한 한 예가 나옵니다. 한 진주 장사가 극히 값진 진주를 만나매,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진주를 샀다는 것이 그 이야기의 골자입니다. 이는 바로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자할 만한 값있는, 그러한 분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주님 없이는 자기에게 즐거움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 안의 삶을 사는 것보다 더 복된 삶은 없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사람마다 하나님의 복을 맛보는 정도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1000이라고 했을 때 1 밖에 맛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하나님의 복을 10000이라고 했을 때 2 밖에 맛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하나님의 풍성함을 누리는 비율이 모두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알고 있지 못하는데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는 것과 다윗이 하나님을 아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다윗은 모든 즐거움이 주님 안에 있는 것을 알았고, 주님만이 그의 기업이요, 그의 상급이며, 오직 주님만이 의지할 수 있는 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 시편에서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고, 노하기를 더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여러 속성을 골고루 아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또 다른 말씀에서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의 아들이 아팠을 때, 그는 간절히 기도했지만, 그의 아들이 죽고 나서, 얼굴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잔치를 베풀어 밥을 먹었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실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는 사람의 삶은 다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다른 것에서 기쁨을 얻기 위해 고인 물을 찾아 헤매지 않습니다. 생수를 아는 사람은 고인 물을 찾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진정한 평화를 아는 사람은 세상의 어떤 것들로 평화를 얻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평강이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는 값진 평화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역대상 29장 11, 12절 말씀에 다윗은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모든 세상을 주관하시고, 자신의 모든 생사화복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것들을 알고는 있지만 의지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윗의 즐거움
2절과 3절의 말씀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다윗은 여기서 그의 즐거움이 성도들에게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 하나님을 이해하는 사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함께 성도들에 대한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아직까지 어둠 가운데 있는 자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4절에서는 주를 떠난 자들의 불행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이 말씀은 다른 신에게 재물을 드리면 드릴수록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상을 섬긴 사람은 잘 알겠지만, 실제로 우상을 멀리하는 사람일수록 괴로움이 덜하고, 우상을 가까이하는 사람일수록 괴로움이 더합니다. 하지 못할 것도 너무 많고, 지어야할 짐도 더 많은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아도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 가까이 갈수록 무거운 짐들을 벗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주님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무거운 짐들을 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짐 진 것 같이 탄식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가까이 나아갈 때, 우리는 무거운 짐들을 벗게 되고,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다윗
즐거움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마치 불 가까이에 가지도 않고, 몸이 데워지길 바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영광의 하나님 가까이에 동행한다고 말하면서 그로 인한 즐거움이 마음에 없다고 하는 것은 영광의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존 전에서 며칠 동안 있다가 내려온 모세의 얼굴은 어떠했습니까? 그의 얼굴을 빛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과 동행할 때 사람들의 우리의 얼굴에서 빛을 보게 됩니다. '저 사람은 주님과 가까이 있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5절 말씀에서 다윗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각 지파에게는 분깃으로 땅이 주어졌는데,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하나님이 분깃이 되고 땅이 주어지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는데, 다윗은 이를 예로 들어 "하나님이 나의 분깃이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보이는 부가 아닌 하나님이 자신의 분깃이 된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를 말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다윗이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는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그가 가진 그 어떤 것보다, 그 많은 제물들보다 하나님을 귀히 여기는 자였던 것입니다.
7절 말씀은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찌라..." 라고 말하고 있는데, 다른 성경을 살펴보면, "나와 상담해주시는 여호와를 송축한다" 고 나와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상담자가 되어주셨던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답답한 일을 만날 때가 참 많습니다. 우리는 이 길을 전에 걸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떤 길로 가야 옳은지, 무엇을 해야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답답한 가운데 빠질 때가 참 많은 것입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그의 답답함을 상담했던 것입니다. 삶의 어려움을 하나님께 내려놓고, 하나님과 상담하며, 하나님의 조언을 받는 삶,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삶입니까! 실제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며 산다는 것은 참으로 복 있는 삶인 것입니다. 이론적인 하나님과의 만남을 갖고 있는 신앙은 죽은 신앙과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삶과는 너무 동떨어진 하나님이라면, 그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윗은 멀리 계신 하나님과 산 것이 아니라 가까이 계신 하나님과 동행했음을 8절 말씀이 보여줍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다윗은 하나님과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까? 우리 삶이 그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분명히 거하십니다. 문제는 주님께서 우리 삶에 실질적으로 얼마나 가까이계시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실질적인 신앙 생활입니다. 하나님과 상담하고, 대화하며, 하나님께서 날마다 나를 교훈 하는 삶이 진정한 신앙 생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멀리 있는 것은 하나님의 문제이겠습니까? 아니면 내 자신의 문제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이요,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가까이 동행해야 합니다. 이것은 양극의 진리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 자신의 문제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상담을 받고, 조언과 지혜를 얻으며,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자신에게는 기쁨이 되고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리는 삶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세상에 홀로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고 말씀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날마다 하나님을 자신의 앞에 두고 살았다고 말합니다. 이는 다른 표현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 같이 살았다" 는 것입니다. 없는 하나님을 있는 것 같이 사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실제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주시는 인도함에 순종하고 따라가는 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그러한 삶의 결과가 9절에 나옵니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다윗은 3가지 결과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마음의 기쁨입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사람은 즐거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삶은 인간적으로 살펴볼 때, 전혀 즐거울 수 없는 삶이었습니다. 매 맞고, 정처가 없고, 헐 벗고, 굶주리고, 감옥에 갇혔는데, 어떻게 즐거워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사도 바울이 늘 주님을 가까이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짐을 벗어서 즐거운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 고난 가운데 함께 하셨기 때문에 즐거운 것입니다. 그러할 때, 짐이 짐으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볼 수 있는 위대한 신앙인의 특징은 바로 주님과 가까이 동행함으로 인한 삶의 즐거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함께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요, 내가 당하는 모든 환경 가운데 주님을 모시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다윗은 그의 신앙 생활의 결과로 인해 마음의 즐거움 뿐 아니라 영광도 즐거워하며, 육체도 안전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다윗의 소망
다윗은 10절에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소망을 보여줍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자들의 특성 중 하나는 그 마음이 장래에 대한 소망과 비전으로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것들이 많고, 약속해주신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음의 눈을 밝혀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이 무엇인지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그 마음의 위의 것으로 채워지기 마련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 위에 있는 것이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인 것입니다.
11절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더 살펴볼 수 있습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주님께서도 이 땅에 계실 때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여러분, 주님을 믿는 자의 삶이 정말로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는 삶입니까? 주님 앞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고, 기쁨이 충만합니까? 이것은 경험을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맛보아야 알 수 있는 분인 것입니다. 체험해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선하시고, 자비로운 분이신지는 하나님을 맛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은 얼마나 하나님을 잘 알고 있습니까? 언제 그분을 경험했습니까? 오래되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경험함으로 인한 기쁨은 우리가 날마다 누릴 수 있는 기쁨입니다. 그 기쁨을 누리며 사는 것이 바로 주를 의지하는 자의 삶인 것입니다. 다윗은 수많은 시편을 통해 그 기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사는 삶이 다윗에게만 가능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주님을 모시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인식하고 살면서 주님을 신뢰한다면, 우리도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환경은 변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마음 속에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주님을 신뢰함으로 늘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사시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