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거듭남 또는 구원)

2007년 November 11일 ()

본문: 요한복음 3:1-21 |

주 제: 중생(거듭남 - 또는 구원)

 

본 문: 요3:1-21

 

설교자: 조 성 훈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3장의 전반부는 영혼의 구원에 관해 말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니고데모가 궁금했던 것

 

니고데모는 마음속에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먼저 그는 유대교의 종파 중 가장 정통이라 불리고 율법에 열심을 가지고 있는 종파인 바리새파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의 열심은 오늘날의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열심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들은 항상 율법을 강조하고 그것을 지켰기 때문에 자신들이 스스로 절제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니고데모와 같은 바리새인들을 따라 갈 수 없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열심으로 율법을 지키려고 한 점, 선을 행하는 점에서는 좋은 점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계속해서 그러한 신앙을 고집하면 고집할수록 하나님이 준비하신 구원과는 멀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열심히 자신의 의를 주장함으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의의 길을 멀리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에 메여 있었기 때문에 그 신앙이 내적인 것보다 외적인 것에 치우쳐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니고데모는 유대교 바리새인 중에서 선생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종교와 정치가 일치했습니다. 종교지도자가 곧 정치 지도자인 것입니다. 이 당시는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지만 종교적인 면과 자치적인 면에서는 종교지도자가 곧 정치지도자였습니다.

 

니고데모는 종교지도자였지만 마음속에 구원과 영원한 삶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 중에서도 신앙의 양심이 바른 사람을 보면, 그가 구원받지 못한 자로 교회의 지도자로 일하다가 나중에 예수님을 영접한 간증을 많이 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강단에 서서 설교를 하는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매 주일 말씀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면서 마음속에 해결하지 못한 갈증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는 누구에게 그것을 털어놓을 수도 없습니다. 니고데모에게도 그런 갈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니고데모와 같은 사람은 다행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을 찾지도 않습니다. 그 종교에 그대로 만족하고 목사나 장로라는 자신의 직위를 믿고 ‘내가 아니면 누가 구원을 받느냐’ 자신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신앙에 솔직한 사람은 자신의 영혼이 거듭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모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마음에 갈증이 있습니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난 사람은 자신의 모든 죄의 짐을 예수님께 내려놓은 자들이기 때문에 죄의 짐을 느끼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와서 영원한 생수를 들이킨 사람은 영혼 구원과 관련된 갈증을 느끼지 않습니다.

 

니고데모는 종교지도자이고 선생이었습니다. 다른 많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저 사람이 선지자나 하나님이 보낸 사람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와 같은 일, 병 고침, 죽은 자를 살림 등의 기적을 행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왜 밤에 찾아왔을까요. 그에겐 체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산헤드린 공회 회원이고 종교지도자요, 늘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가르치는 선생인데 자신의 영혼의 문제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갔다면 그는 그 사회에서 몰락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마음을 읽으셨습니다. 그가 왜 찾아 왔는지, 니고데모의 마음의 갈증을 아셨던 예수님은 그에게 엉뚱한 얘기를 하십니다.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서는 ‘거듭나야’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예수님을 믿는 것은 차츰차츰 성경을 공부해서 초급이 중급으로, 중급이 고급으로 올라가는 것처럼 집사가 되고, 권사나 목사, 장로가 되어 결국 하늘나라에 가게 된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곰과 호랑이가 쑥과 마늘을 먹고 동굴 안에 있으면 사람이 됩니까. 원숭이가 말도 잘하고 영어도 능통하고 두 발로 걸어 다니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사람이 성경을 보고 기도를 하며 열심히 헌금을 한다고 해도 그를 믿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의 영혼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것입니다. 세상 많은 종교가 열심히 배우고 수양하면 무엇인가 이룰 수 있다고 말하지만, 기독교는 그것이 출생으로 되는 것이지 공부나 학습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네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니고데모에게는 충격적인 얘기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구원의 길을 가르치는 교사에게 그와 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니고데모와 같은 사람들이 보기엔 예수님은 별 볼 일 없는 촌뜨기입니다. 반대로 니고데모는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중생에 대한 토론

 

“네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에 니고데모는 “그럼 제가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날 수 있습니까”라고 되묻습니다. 이것은 육적인 얘기가 아니라 영적인 얘기라는 것을 니고데모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바로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으면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되는데 성령의 세례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의 한 부분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것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바람을 비유로 들어 말씀하십니다. 바람이 불 때 그것이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는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동쪽인지 서쪽인지 알 수 없지만 바람이 분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고 우리가 피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람 자체는 잡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것이지만 아무도 바람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난 사람도 그와 같습니다. 평생을 놀음에 미쳐서 살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180도 변화되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데 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입니까. 그것은 성령님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평생 죄책감 가운데서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방황하며 살아가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서 모든 죄의 짐을 내려놓고 참 평화를 누리고 산다면 그것이 사람이 한 일입니까. 이와 같이 우리는 성령님이 하시는 일의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영적으로 된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성령을 본 사람, 성령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없지만,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듭난 것을 알고 성령으로 우리 안에 생명이 있는 것을 알며 하늘에 소망이 있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주님의 책망

 

9절을 보면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책망하십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모두 내려놓아야 하는데, 니고데모의 문제는 그동안 그가 해온 것을 버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릅니다. 사람마다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그와 전혀 다른 예수님을 믿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사실 성경을 보면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매우 단순하고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앞에도 말했듯이 자신의 생각을 버리기 어렵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그들이 어둠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빛 가운데로 나오기 어려운 것입니다.

 

불신에 대한 대답

 

광야에서 독사에 물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어갈 때에 모세에게 제시하신 하나님의 치료방법은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면 낫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나 의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허무맹랑한 얘기입니다. 그러나 그 일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걸려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 놋뱀을 바라본 사람은 나음을 입었습니다. 바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 이해와 이론, 상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밖에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성령께서는 거듭나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몸의 지체가 되게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놋뱀을 쳐다보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고, 쳐다보는 그 순간에 내 안에 퍼져있는 독을 다 없애고 나를 건강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불신의 결과

 

18절에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판에서 정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사람들이 빛보다 어둠을 더욱 사랑한 것, 그것이 바로 정죄의 대상입니다. 사실 예수님께 나오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육체의 정욕대로 살고 싶어서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술이나 놀이, 취미생활과 같은 것들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빛보다 어둠을 더욱 사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들에 대해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심판을 이야기해도 좀처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할 때는 정작 심판의 날이 왔을 때, 지옥으로 가는 마지막 열차를 탔을 때입니다.

 

아직 믿을 기회가 있을 때에 믿어야 합니다. 심판에서 벗어날 기회가 있을 때에 벗어나야 합니다. 결국 니고데모가 그것을 믿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니고데모를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자신을 걱정해야 합니다.

 

그 어떤 일보다 이 일이 우선입니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아직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통곡하고 예수님께 무릎 꿇고 매달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벌써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세 이후로 쌓아두신 모든 진노를 쏟아 부을 대상은 백보좌 심판 앞에 선 사람들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독생자를 보내셨습니까. 우리를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내셨습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네가 믿음에 있는가 네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라 만일 그리스도께서 네 마음에 계신 것을 네가 스스로 알지 못하면 너희는 버리운 자니라”

 

성령으로 난 자는 성령의 증거들이 있습니다. 솔직하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거듭나지 않았다면 주님께 나와서 그분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생명, 어둠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생명가운데 그 기업을 얻고 싶다고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솔직한 마음으로 자신의 지위를 버리고 예수님을 찾아와 올바른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 역시 올바른 소식을 들었으니 믿음을 결정해야 합니다. 또한 이미 구원받은 자들은 주님께 감사하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