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풍병자를 고치심

2008년 April 20일 ()

본문: 요한복음 5:1-18 |

주 제: 중풍병자를 고치심

 

본 문: 요 5:1-18

 

설교자: 조 성 훈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거기 삼십 팔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베데스다 못

 

많은 환자들이 연못가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연못의 이름인 ‘베데스다’는 은혜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이곳에 가끔 천사가 와서 물을 동하게 할 때 누구든지 먼저 내려가는 사람이 병이 낫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을에 이런 연못이 있다고 한다면 누가 먼저 내려갈까요. 젊은 사람들이 앞 다투어 내려가고 아마 연세 많으신 분들은 기회가 없을 지도 모릅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을 보면 중풍병 환자도 있고 소경들도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수많은 암환자들이 이 연못을 알고 있었다면 구름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것입니다. 5개의 행각도 수많은 사람들 때문에 지어졌을 것입니다.

 

중풍병자의 불행

 

사람이 중풍병으로 38년을 보냈다고 한다면 그는 인생의 거의 대부분을 병으로 보낸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오셔서 낫고자 하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그의 안타까움은 물이 동했을 때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는 몇 년이 지나야 그 물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아마도 그는 영영 그 물에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그곳에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수년을 그곳에서 먹고 자면서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소망 없는 그에게 주님이 오셨습니다. 다섯이나 되는 행각에 모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한 확률입니다.

 

중풍병자를 고치심

 

그가 낫고자 한다고 말했을 때 주님께서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병이 어디에서 오는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를 기억해보면 예수님께서 그를 고치셨을 때 제자들이 “그의 병이 부모들의 죄 때문입니까, 자신의 죄 때문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부모의 죄도 아니고 자신의 죄도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경우는 예수님께서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신 것으로 보아 죄의 결과로 보입니다. 사람마다 경우가 다른 것입니다.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가시고, 나면서 소경된 자와 앉은뱅이를 찾아가셔서 고쳐주셨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이 양이 백 마리가 있는데 한 마리를 잃어버리면 그 한 마리를 찾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나라에서도 아흔 아홉 마리의 양보다 한 마리 양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고 하셨습니다(눅15:4-7). 또한 열 드라크마 중에 하나를 잃어버렸을 때 하나를 찾은 즉 이웃을 불러서 잔치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15:8-10). 주님이 찾아다니셨던 한 사람, 한 사람이 잃어버린 양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왜 행각이 다섯이 있고 환자들이 가득 있는데 그들을 다 낫게 하시지 않고 38년 된 병자 한 사람만을 고치셨을까요. 이것을 보고 주님은 불공평한 분이 아니신가 생각하면 잘못입니다. 주님이 그 마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실 때 여러분 하나만으로 좀 부족한 것 같아 동네 사람들 모두를 구원하시지는 않았습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떤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구원 받은 사람이 적습니까”라고 묻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 가득 넘치는 환자들 중에서 38년 된 환자 한 사람만을 구원하셨습니다. 그가 병이 나아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하겠습니까.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하다고 불평하겠습니까. 그는 병이 나은 것 하나만으로도 남은 삶을 즐겁게 살아갈 것입니다.

 

영적인 질병과 고침

 

오늘날의 사람들도 모두 죄의 병에 걸려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만드실 때는 사랑과 온유와 절제 등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던 덕스러운 것들을 넣어서 창조하셨습니다. 처음 사람을 만드셨을 때 아담과 하와 안에는 미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사단을 택했을 때, 거짓의 아비를 통해 얻은 것은 시기, 질투, 악독 등 온갖 죄악들입니다. 우리가 입을 열면 열린 무덤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수군수군하는 사람을 나쁘다고 하면서 우리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도무지 선해질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영적으로 고칠 수 없는 질병에 걸려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도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그토록 간청했지만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영적으로 고칠 수 없는 질병에 걸린 우리에게 주님께서 어느 날 찾아오셔서 낫기를 원하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감사해야할 이유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나를 찾아오셔서 구원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찾아오신 사마리아 여인이나 병자들은 사랑을 받고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지 38년 된 병자와 같은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은 이 병자처럼 우리도 주님의 자비하심을 입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해 말씀하실 때 “너희가 숫자가 많아서 구원한 것도 아니고 잘나서 택한 것이 아니고 너희가 천하고 수가 적은 민족이기 때문에 택했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을 왜 구원하셨느냐고 주님께 물어본다면 "너는 세상에서 사람의 관심을 끌 만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중풍병 환자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교만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섯 개의 행각에 모인 수많은 환자들 중에서 중풍병자가 선택을 받을 확률, 이 많은 죄인들 가운데 우리가 선택될 확률은 얼마입니까.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며 다른 것이 아닌 너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신 말씀을 실감하게 됩니다.

 

오늘날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구원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비록 힘들지라도 감사하고 기뻐하며 구원의 즐거움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식교육, 직장, 사업, 복잡한 인간관계 때문에 우리를 구원해주신 주님과 그 구원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고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으면 모든 것을 가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위를 보시고 구원의 즐거움을 다시 찾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