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에 대한 사랑

2010년 October 17일

본문: 시편 84:1-12 |

주 제 : 하나님에 대한 사랑
본 문 : 시편 84 :1-12
설교자 : 조 성 훈

“(고라 자손의 시 영장으로 깃딧에 맞춘 노래)84: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84:2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84:3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__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84:4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 84:5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84:6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84:7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84:8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셀라) 84:9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 84:10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84:11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84:12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보기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한순간 그러한 사랑을 가졌다할 지라도 일평생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만나보면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사람을 만나보기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기도하여 내게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축복하셔서 행복하게 살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순수하게 사모하고 그를 그리워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고라 자손의 시

오늘 본문 시편 84편을 볼 때 그들이 가진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여기 고라 자손의 시에서 고라는 레위의 증손으로서 성막일을 담당하던 자입니다. 고라는 아론의 후손으로 제사장 세운 것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켜 그가 죽임을 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민16) 그러나 그 아들들은 죽지 않고 성전에서 노래하는 자와 문지기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 대해 많은 시편들을 썼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늘 본문을 ‘순례자의 시’라고 하기도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올라가는 순례자의 입장에서 쓴 글이라는 것입니다.

주의 집에 거하는자

1절에서 시편 기자는 그 성막 자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여기서 그는 하나님께서 계신 그 전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그 전이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그 사모함 때문에 그 전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입니다. 2절에서는 하나님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했다 했습니다. 초창기 예수님을 믿고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주일을 기다리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시편 기자처럼 그런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 때 우리 마음속에 주일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어 주님 앞에서 예배 드리고 찬양하고 주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면서 예배드릴 그날이 언제 올까 사모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들은 악공들과 문지기였습니다. 문지기는 보초입니다. 교대 순서가 있습니다. 문지기와 악공은 제사를 드리거나 성소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집에 마음대로 집을 짓고 거하는 새들이 부러운 것이었습니다. 왜 주의 집에 거하는 사람이 복이 있을까요? 그가 말하기를 언제든지 하나님을 언제든지 대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할 수 있고 하나님 집에서 가까이 있어 거할 수 있기 때문에 그가 복이 있다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동행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찬양대에 속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찬양대에 속한 사람은 다른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큰 특권이고 축복입니다. 그들은 그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온의 대로

사람의 진정한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하나님께로 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힘과 격려와 자원이 필요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에 가야 합니다. 그 마음에 시온에 대로가 있다는 것은 항상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 항상 하나님께 가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이 그 마음의 첫째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그 마음에 하나님께 나가는 길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시 42편 참고) 우리 성도들이 일주일 동안 이러한 마음으로 생활한다면 그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성전으로 가는 길에 ‘눈물의 골짜기’라는 곳을 지나게 되더라도 축복의 장소가 될 거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하러 갈 때 마음속의 슬픔이 눈물이 될 수 없고 오히려 기쁨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점점 가까워 올수록 힘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의 문지기

하나님의 집에서 하루 사는 것과 다른 곳에서 천 날을 사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좋은가? 둘 중 하나를 택하라 한다면 시편 기자는 주의 궁정에서 하루 지내다 죽는 것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만큼 사랑하고 사모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악인의 장막에 거하는 것보다 좋다는 것입니다. 왜 시편기자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왜 하나님의 궁정을 사모하여서 몸이 쇠약해 지고 왜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궁정에 있는 것이 좋고 악인의 장막에 거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집에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고 했을까요? 왜냐하면 실제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좋은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참 멋있는 분입니다.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시고 우리를 너무 사랑하신 위대한 분이기 때문에 그분을 알면 알수록 그분께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편 기자가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접해 본 사람이라면 하나님과 동해하며 점점 알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런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 3:7-9에서)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배설물은 그냥 버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어떤 사람이 지극히 값진 진주를 발견하고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그 진주를 샀다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시편 기자의 고백도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버리려고 해도 안되요” “제가 주님을 사랑하려 해도 안되요 육신이 약해서” 이런 이야기는 사실은 우리가 주님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알고 거기에 빠지면 다른 것은 우리가 버리려 해서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가치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알고 그분을 알면 알수록 다른 것에 흥미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하루가 더 좋다는 것,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는 것은 기자의 실제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인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성경공부도 하지만 이것이 우리 삶에 무거운 짐으로 다가오는 것은 주님에 대한 사랑이 우리 마음에서 실제적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론

이 시편 기자는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좋고 하나님의 문지기로 있는 것도 좋은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사람이 성전의 보초를 선다고 생각해 봅시다. 문지기는 원래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너무 사랑해서 문지기를 하고 있는 사람은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을 바랄까요? 아닙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사랑. 이것보다 귀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내게 있을 때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지 즐거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에게 이교도들은 ‘미쳤다’라고 했습니다. 예수에게 푹 빠졌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의 끈에 매여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과 관련된 것은 다 아름답게 보이고 주님을 위한 일에 최선을 다 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가 가진 사랑을 우리도 가질 수 있습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이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사랑을 회복합시다. 주님에 대해 묵상하고 그분의 사랑에 푹 빠질 수 있도록 동행해 보면 동행할수록 그분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고 시편 기자처럼 고백할 수 있을 겁니다.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