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라

2005년 May 15일 ()

본문: 히브리서 13:1-6 |

본문말씀 : 히브리서 13장 1절 - 6절
주제 :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라
설교자 : 조성훈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자기도 함께 갇힌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히브리서 기자는 1장부터 12장에 걸쳐 구약의 그 어떤 제사보다 더 뛰어나며, 더 나은 주님께서 또 얼마나 위대한 분이시며, 놀라우신 분이신지를 말하고, 유대인들에게 이 주님 앞에 나오라고 말하고 있고, 여기 13장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일반적으로 갖추어야할 것에 대한 권고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절부터 6절의 말씀에서는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할 것과 어려움 가운데 있는 자를 불쌍히 여길 것, 혼인을 귀히 여기고, 돈을 사랑하지 말라는 등의 권고를 하고 있습니다.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라
사도 바울은 1절에서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케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죄 용서를 많이 받은 사람이 많이 사랑한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사랑을 많이 받아 본 사람이 많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섬기는 원동력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감동」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마음 속으로부터 우리를 감동하게 하여 다른 성도들을 섬기게 만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덧붙여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주님께서는 자기 목숨을 우리에게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의 교육 방법은 항상 먼저 행함으로 본을 보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나서 제자들에게 서로의 발을 닦아주라고 말씀하신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또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고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주님께서 어떤 사랑으로 그들을 사랑했는지 경험으로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님께 받은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 자매들을 사랑해야할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사랑할 것을 명령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세상을 향해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방법이 바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 것이다." 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 받기만을 원하고 주는 것은 잘 모릅니다. 그래서 때때로 교회에 사랑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자기가 받으려고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서로 사랑하면, 이는 다른 사람에게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알리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의 특징은 바로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세상 사람들이 가장 갈급해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것은 말세의 징조가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조급하고 감사하지 아니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사랑해야하는 것입니다.
옛날 소련의 성도들은 한 성도가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가면, 남은 성도들이 그 가족을 다 책임졌다고 합니다. 그 가정의 모든 생계를 돌아보았던 것입니다. 그럴 때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은 정말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은 서로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빛 가운데 있다는 것의 증거라고 말합니다. 빛 가운데 있다고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아직 어두움 가운데 있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될 근본적인 이유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께 큰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로, 자녀들이 매일 싸운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럴 때 부모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매우 마음이 아프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매우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는 것이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은 뜨거운 감정이 아닙니다. 행함이요, 실천인 것입니다. 형제에 대하여, 자매에 대하여 오래 참는 것이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두 번째로,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고 말하면서 부지 중에 천사를 대접한 자들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몇몇 곳에서 천사를 대접한 사람들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창세기 18장 말씀을 살펴보면, 아브라함이 천사들을 대접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천사들을 알아보고 대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분명히 그에게 온 사람들을 대접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9장에서는 롯이 천사들을 대접한 모습이 나옵니다. 롯 역시 사람들인 줄 알고 대접했던 것입니다. 그 때, 그 성 사람들이 롯의 집에 와서 그 사람들(천사들)을 끌어내라고 했습니다. 롯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 딸을 데려가서 당신들이 원한대로 할지언정, 이 사람들은 놔두십시오." 손님을 딸들보다 더 귀하게 보호한 것입니다. 여기 비슷한 이야기가 사사기 19장에 나옵니다. 한 노인이 이번에는 천사가 아닌 사람을 손님으로 맞았는데, 그 성 사람들이 그 사람을 끌어내려고 하자, 그 노인은 "자신의 딸을 욕보이든지 말든지 하고, 이 사람은 가만히 놔두라." 라고 말합니다. 그 당시에는 나그네들이 있었고, 성문 밖에 앉아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나그네인줄 알았기 때문에 나그네 대접하기를 힘쓰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어떻게 자기 가족보다 나그네 대접하기를 더 중요하게 여길 수 있었을까요? 그러한 모습들이 바로 구약 시대 때 사람들이 나그네를 대접한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손님을 어떻게 대접하십니까? 귀찮은 마음을 갖지는 않습니까? 만일, 주님께서 여러분들의 집을 갑작스럽게 방문하셨다면,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결코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나그네를 대접한 것을 자기를 대접한 것으로 생각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행객들과 교회를 방문한 성도들을 대접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요, 하늘에 상이 있으며, 주님께서도 매우 기뻐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성도들을 돌아보라
세 번째로 우리가 3절 말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성도들을 같은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갇힌 자가 있다면 자기도 갇힌 자처럼 갇힌 자를 헤아리고 돌아보며, 병든 자가 있으면, 병든 자의 입장에서 그를 생각하고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신 권고입니다. 우리가 동정의 마음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어려움에 있는 자를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시고, 돌아보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놀랍고, 또한 감동이 되는 것은 주님은 그런 우리를 모두 이해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체질과 진토를 아시고, 연약함을 모두 아신다고 말씀하시고, 또 어려울 때 언제든지 우리 주님께 나아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감동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주님 입장에서 우리를 판단하는 분이 아니신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3년 반 동안 모든 사랑을 쏟으셨습니다. 그런 주님께 제자들은 모두 결코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주님이 잡혀가셨을 때,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습니다. 제자들 중 베드로는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했지만, 그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부활하시고 나서 제일 베드로에게 자기가 살았다고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그렇게 우리의 연약함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없이 넘어지고, 실패하지만, 그래도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그 여인을 죽이려 했지만, 주님은 그 여인을 향해 "여자여,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노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항상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이해하셨던 것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우리의 입장에서 우리를 이해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 앞에서 설 수 없습니다. 우리의 입장에서 우리를 이해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이해하시고, 용납하시며,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도 그와 같이 같은 입장에서 형제, 자매들을 이해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마음으로 사랑을 베풀 때, 그것이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것이요,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혼인을 귀히 여기고, 돈을 사랑하지 말라
한 가지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혼인을 매우 귀히 여기시고, 거룩하게 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부 간의 성적인 관계라든지, 함께 대화하고, 살아가는 것을 매우 귀하게, 또 거룩하게 보십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여기서 그 거룩을 더럽히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씀은, 아내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함으로 서로를 귀히 여기고, 존중하여 가정 생활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말씀에 모든 성적인 부도덕과 타락을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할 거룩 중에 한 가지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것으로 족한 줄을 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고,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교회 일군의 자격 중에 돈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자격에 포함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이 돈 자체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과 돈을 사용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잘못된 것이고, 가난한 사람은 신령하고, 부자는 덜 신령하다는 것도 잘못된 말인 것입니다. 돈이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가진 것에 족하고 주님 앞에서 충성스럽게 살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에 대해 결코 부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 다른 말씀을 보면 게으른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하지 않고 놀면서 하나님께서 공급하신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일하지 않으면서 성도들의 주머니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삶은 절대로 성경적이 아닙니다. 성경은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열심히 일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열심히 일하려고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한 만족하는 삶을 살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가정의 필요를 돌아볼 필요가 있지만, 여기서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돈을 사랑하게 될 때, 하나님을 동등하게 사랑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것처럼 돈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없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게 되면 주님을 떠나가게 되고, 주님을 사랑하게 되면 돈을 덜 사랑하게 됩니다. 사람은 돈에 눈이 멀면, 다른 무엇을 볼 수가 없습니다. 세상을 떠날 때는 결국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는데도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고, 버리지 않노라" 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보다 더 큰 약속이 어디 있습니까? 주님께서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것을 족하라고 말씀하신 것도 다 이 약속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자연을 살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 먹여 살리시지만, 그들은 먹이를 찾아, 혹은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열심히 일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충성스럽게 일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해야 할 일을 할 때, 굶어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믿음이 없습니다. 버리지 않고 보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보다 은행장의 먹여 살리겠다는 말에 더 신뢰가 가는 것이 바로 사람입니다. 사람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우리를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고,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버릴지언정 주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버리시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살만 하면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어려울 때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끊임없이 사랑하시고, 그 분 앞에 나올 때면 언제든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한 번 약속하신 것을 결코 바꾸시지 않으십니다. 그런 주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우리가 돈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자연처럼 우리도 그렇게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주님 앞에서 충성스럽게 일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결론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들에게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말하고 있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성도들을 같은 입장에서 이해하고, 서로 도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혼인을 귀히 여기고,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히 여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주님 앞에서 감사하고, 만족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의 이 약속을 신뢰하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