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기도

2006년 May 7일 ()

본문: 야고보서 5:13-20 |

주 제: 환경과 기도

 

본 문: 야고보서 5장 13절~20절

 

설교자: 조 성 훈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사람이 살다 보면 여러 가지 환경을 만나게 된다. 슬픈 일도 만나고, 기쁜 일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할 때에 그리스도인들이 취해야 할 자세는 어떠한 것이며, 또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하는지에 대해 야고보는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기도

 

얼마 전 저는 몇 가지 제의(?)를 받았습니다. 얼마의 돈을 입금하면, 매 주일 설교와 주일 저녁, 새벽기도, 수요일 예배에 필요한 설교문을 정기적으로 보내주겠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얼마나 편한 세상입니까? 또 며칠 전에는 모든 환경에 필요한 기도문을 보내주겠다는 편지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아버지와 나눌 대화들을 미리 적어놓는 사람은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모든 환경과 경우에 필요한 기도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유대인의 종말이 가까운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의 세태를 보면서, 오늘날 교회가 그러한 시기를 맞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기도문이 활성화 되어 있었습니다. 기쁠 때 하는 기도문, 슬플 때 하는 기도문, 병중에 하는 기도문 등 여러 기도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아가 그들은 아침에 하는 기도문, 점심에 하는 기도문, 저녁에 하는 기도문, 그리고 모든 환경에 맞는 기도문(빛, 어두움, 보름달, 여행, 좋은 소식, 나쁜 소식 등)을 만들어 두고 그것을 암기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기도 시간도 정해져 있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하는 기도마저 굳어져 있었는데, 이는 그들의 기도가 형식화되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고난 중에 있는 자(13 상)

 

오늘날에도 많은 성도들이 고난 중에 있는데, 고난이 어떤 것이며, 고난이라는 것이 왜 오는 것인지에 대한 이해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먼저, 자신이 잘못해서 오는 고난이 있습니다.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전도를 하러 가다가 과속을 해서 범칙금을 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전도를 하러 가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범칙금을 내게 하십니까?’라고 하나님께 원망을 했다고 합니다. 누구의 잘못입니까? 이는 사람이 잘못을 해서 받는 고난입니다. 물론, 고난에는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잘못으로 인한 고난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단련시키기 위해 주시는 고난이 있으며, 우리의 범죄로 인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징계를 받는 과정에서 오는 고난도 있습니다. 그 어떤 것이 되었든, 우리가 잘못해서 받는 고난이 아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고난을 받게 될 때, 야고보는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영적인 고난이 있습니다. 자신의 영적인 침체로 인한 고난이 있으며, 다른 성도들과의 관계로 인한 정신적인 고난이 있기도 합니다. 또한 목자들과의 관계, 혹은 부서의 일 등, 교회로 인한 영적인 고난도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육적인 고난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고난은 아마도 경제적인 고난일 것입니다. 또한 직장이나 사람들의 관계로 인한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이 모든 고난 가운데 처해 있을 때,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이는 주님께 우리의 고난에 대해 사실대로 알리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말들을 다 들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큰 소리로 하나님께 말했든지, 성의 없이 말했든지, 아니면, 마음속에 잠시 생각했던 말이라도, 그 어떤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말했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말과 생각, 마음들을 들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어려움에 대해 누구보다도 먼저 이야기해야 할 분이 계시다면, 그분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마음이 답답할 때, 그 답답함을 토로할 ‘사람’을 찾습니다. 물론, 때론 사람들이 해결책이 될 때도 있지만, 오히려 짐이 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누군가 내게 매일 찾아와 답답함을 토로한다면, 저는 일주일도 못 가서 지쳐버리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않으십니다. 한 번도 우리의 기도를 귀찮게 여기신 적이 없으신 분입니다. 왜 야고보는 사도들, 혹은 성도들을 찾아가라고 말하지 않고, 주님께 기도하라고 말했을까요? 그분이 해결책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즐거움 중에 있는 자(13 하)

 

다음으로, 야고보는 즐거움 중에 있는 자들에게 ‘찬송할지라.’고 말합니다. 이 ‘즐거움’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영적인 즐거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인한 즐거움과, 하나님과의 즐거운 교제로 인한 즐거움,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옴으로 인한 즐거움, 성도들 간의 좋은 영적 교제로 인한 즐거움, 교회의 부흥과 거룩으로 인한 즐거움이 그것입니다. 또한 육적인 즐거움이 있습니다. 가정에 즐거운 일이 생겼을 때, 또 자녀들로 인한 즐거움, 경제적인 축복, 육적인 건강이나 경사들로 인한 즐거움이 바로 육적인 즐거움입니다. 야고보는 이럴 때, 하나님께 찬양하라고 말합니다. 그분께 감사하며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할 사항도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어려움이 있는 자들과는 그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즐거운 일이 있는 자는 그 즐거움을 성도들과 함께 나누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를 들어, 자녀가 좋은 대학에 합격했을 때, 대학에 떨어진 성도님과 그 즐거움을 나누는 일은 피하시길 바랍니다. 함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사람과 나누어야 합니다. 반대되는,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과 그 즐거움을 나누는 것은 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즐거운 일임과 동시에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일을 나누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 영혼이 자신을 통해 주님께 돌아온 것과 교회를 떠났다가 다시 회복되어 돌아온 형제를 도운 것을 자랑할 수 있고, 또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누구라도 기뻐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기뻐할 일을 함께 기뻐하고, 슬픈 일에 함께 슬퍼하는 것은 성도들의 삶 가운데 매우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병중에 있는 자(14-18)

 

야고보는 병든 자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질병 중에는 자신의 몸을 잘 관리하지 못해서 오는 병도 있고, 도덕적인 범죄 때문에 오는 병도 있습니다. 병은 또 크게 영적인 질병과 육적인 질병으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영적인 질병은 영적으로 병들어가는 것을 말하는데, 도덕적인 범죄를 통해 영적인 질병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을 불신하는 질병을 갖기도 합니다. 이는 매우 무서운, 큰 질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불신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병이라는 것을 목격하지 않았습니까? 이는 참으로 무서운 질병인 것입니다. 또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불만족으로 인한 질병에 걸리게 되는데, 이는 주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환경과 물질 등에 만족하지 못하는 병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영적인 질병입니다. 본문말씀에서 야고보가 말하는 것은 육신의 질병입니다. 흔히들 그리스도인들은 죄로 인해 질병이 온다고 생각하는데, 모든 질병이 죄로 인해 오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건강을 잘 관리하지 못하여 올 수도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하시기 위하여 오기도 합니다. 물론, 죄를 지어서 오는 징계성 징벌일 수도 있습니다.

 

야고보는 장로들을 청해서 기도하라고 말하면서, 기름을 바르라고 말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기름을 바르는 것이 성령님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막 6:11-13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로 하시니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또 눅 10:30, 33-34에서도 기름에 관련된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 말씀들을 통해 우리는 기름이 치료의 목적으로 쓰일 수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병중에 있을 때 최선을 다해 의학의 도움을 받아 치료해야하지만, 다른 한편, 하나님께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 자신에게 어떠한 죄가 있는지 살펴보고, 죄를 고백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야고보는 병중에 있는 자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라고 말하고,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말하면서 엘리야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기도해서 비가 오지 않았고, 나중에 다시 비가 오기를 기도했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그 종을 시켜 언덕에 가서 비가 올 조짐이 보이는지를 물었습니다. 일곱 번 기도하고 나서 종이 조그만 구름이 있다고 말해주었을 때, 그는 왕에게 비가 올 것이므로 서둘러 피하라고 말합니다. 이 얼마나 큰 믿음입니까? 야고보는, 엘리야는 우리와 똑같은 몸을 입은 자지만, 기도해서 이 같은 역사를 이루었다고 말합니다.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내려서 일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적인, 혹은 육적인 질병에 있든지, 또는 고난 가운데 있든지, 그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성도들을 회복하는 사역(19-20)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교회 안에서는 진리에서 떠난 사람, 병든 사람, 죄 가운데 빠진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는 이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의 사역과 역할은 성도들을 세우는 것이어야 하며, 성도들을 그들의 타락이나 범죄로부터 회복시키는 사역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환경을 만납니다. 즐거운 일이 잇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요, 그 즐거움을 다른 지체들과 함께 나눌 것이며, 고난 중에 있을 때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짐을 성도들과 함께 나누도록 같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질병 중에 있을 때 우리는 최선의 방법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치료를 해야 함과 동시에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성도들의 역할은 성도들을 세워주고 격려하며 진리에서 떠난 자들을 돌아오게 하고, 범죄 중에 있는 자를 회복하게 하며, 성도들을 세우고 힘을 얻게 하여 끝까지 그들이 그들의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