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생활의 원리

2006년 December 31일 ()

본문: 로마서 12:3-8 |

주 제 : 교회 생활의 원리

 

본 문 : 롬 12:3-8

 

설교자 : 조 성 훈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연말을 맞아 사람들은 한 해를 돌아보고, 또 가정에서, 또 사회에서 새해에는 어떻게 살지를 생각해보고 다짐합니다. 사람들의 생활은 크게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이 있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교회 생활이 더해집니다. 우리 교회의 새해 목표는 모든 성도가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자기 일을 찾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들에게 교회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에 대해 말해주기 때문에 참 적합한 말씀입니다. 먼저는 교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그 교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활동해야 하는 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교회에 대한 이해

 

교회의 원래 뜻은 ‘불러낸 무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불러내신 무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교회에 대한 여러 가지 상징을 말합니다. 첫째로,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말합니다.(고후 11:2, 계 21:9) 그래서 신랑 되신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정결한 신부로 준비할 것에 대해서 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으로 말합니다.(고전 3:16, 벧전 2:5)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배당이 아닌, 성도들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입니다. 셋째로,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의 양 무리라고 말합니다.(요 10:16) 하나님을 따르고,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치시고, 먹이시는 하나님의 양무리라는 것입니다. 넷째로, 하나님의 집이라고 말합니다.(딤전 3:15) 마지막으로 교회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합니다.(엡 1:22-23)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며, 교회는 그 몸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자신의 일을 찾아 일하는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성도들은 교회의 각 지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든 지체가 일할 때, 그 몸을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듯이, 또한 교회의 각 지체가 일할 때,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분수에 따라 행하는 원리

 

사도 바울은 교회 생활의 원리를 말하면서, 첫째로, 믿음의 분수에 따라 행하는 원리를 말합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3절)” 이 말씀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서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주인은 어떤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었고, 또 다른 종에게는 두 달란트, 한 달란트씩을 주었습니다. 각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분량이 다른 것입니다.

 

둘째로는, 자신의 은사와 역할에 맞는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때때로 자기에게 주어진 믿음의 분량을 넘어서 생각할 때에 부작용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또 자기의 은사가 아닌 일에 참여하려고 할 때에 많은 부작용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손과 발이 서로 걷겠다고 싸우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분명 우스꽝스러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발은 걷는데 쓰이지만, 손은 걷는데 쓰이지 않습니다. 손은 무언가를 쥐는데, 또 무엇을 표현하는데 쓰입니다. 또 눈은 보는 데, 귀는 듣는데 쓰입니다. 세상에 제 아무리 훌륭한 음악도 입으로는 감상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함에 있어서 꼭 알아야 할 것은 자신의 역할에 맞는 삶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 자신의 역할대로 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럴 때, 다른 지체에게 덕이 되고, 교회는 온전한 몸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큰 특권 중에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기업체에 취직했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별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보상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 한 영혼을 인도하는 것은 하늘나라에서 그 어떤 것보다 큰 가치를 가지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선택된 사람들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큰 특권을 가지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을 섬기고, 주님을 섬기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세상의 직장에서 아무리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별을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게 되면, 별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큰 특권임을 말씀하신 것과 더불어 분명히 보상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지체의 원리

 

둘째, 지체의 원리입니다.(4-5절) 우리 몸의 원리와 교회의 원리는 같습니다.(골 1:24, 고전 12:11-12, 14, 27) 우리 몸에는 각기 다른 지체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지체들은 각기 다른 일을 하지만, 서로 협력해서 일합니다. 밥을 먹을 때에도 발은 밥을 타러 움직이는 일을 하고, 손으로는 수저로 밥을 뜨며, 이와 혀, 위도 각각 일을 합니다. 교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정상적으로 일을 하려면, 몇 사람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지체가 함께 협력해서 일해야 합니다.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을 한 지체입니다. 팔의 역할을 하는 성도, 또는 다리의 역할, 눈, 귀, 입의 역할을 성도들이 있습니다. 또한 보이지 않지만, 심장이나 위와 같은 역할을 하는 성도들 또한 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들이 일하지 않는다면, 그 몸에는 문제가 생깁니다. 또, 몸에 도움이 되지 않는 지체는 짐이 됩니다. 다른 지체가 그것을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의 원리는 모두가 함께 일하는 지체의 원리입니다. 그것은 굉장히 아름다운 것입니다.

 

다양성의 원리

 

다음으로는 다양성의 원리입니다. 모든 지체가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6-7절) 성경은 여러 은사를 언급하고 있는데, 먼저,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은사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은사에도 믿음의 분수가 다르다고 말합니다. 엘리야처럼 큰 일을 한 선지자도 있지만, 또 한편, 이름 없는 많은 선지자들 역시 하나님이 세우신 자들입니다. 단, 믿음의 분수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의 분수대로 일하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자, 사람들은 요한을 떠나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그 때 요한은 ‘나는 쇠하여야 하겠고, 그는 흥하여야 하겠다.’ 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믿음의 분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로, 각각 자신의 일과 믿음의 분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일학교를 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청소를 할 수 있으며, 또 어떤 사람은 성도들을 돌아보는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위치에서 맡은 바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다른 성도들을 서로서로 섬기지 않는다면,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만일, 팔과 발과 눈, 귀, 심장 등이 저마다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며, 자신의 기능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 몸은 건강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 하나하나가 자신의 일을 하지 않는다면, 건강한 교회는 이룰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섬기는 자는 섬기는 일로, 가르치는 자는 가르치는 일로, 권위하는 자는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하라고 말합니다. 교회에는 이 모든 일들이 다 필요합니다.

 

가치관의 정립

 

이 모든 은사를 활용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이 되는 것은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몸을 아끼고 사랑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모든 사람은 동등합니다. 은사에는 귀천이 없습니다. 청소하는 일이나, 말씀을 전하는 일이나, 성도들을 구제하고 돕는 일이나 다 동등한 일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의 잘못된 가치관으로 은사의 높고 낮음을 매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나라의 가치관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섬기는 일보다 섬김을 받는 것을 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는 사람들이 하늘나라의 가치관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섬김을 받을 때, 도움을 받을 때보다 누군가를 섬기고 도울 때 더 기쁨이 가득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도들을 돕고, 넘어진 성도들을 일으켜주며, 세워주고, 가난한 자들을 돕고, 주님을 바라보도록 도와줄 때, 또 그 도움으로 인하여 기뻐함을 볼 때, 우리 마음속으로 기쁨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가 또한 다를 것입니다. 분명 섬김을 받는 사람보다 다른 사람들을 섬긴 그에게 하나님께서 상을 더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의 삶을 계산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누군가를 섬긴 것에 대해 상주시고, 보상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남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가치는 이 땅의 가치와는 다릅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른 것입니다. 때때로 성도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섬김을 알아주지 않음을 인해 낙심합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신의 섬김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선한 일을 할 때는, 누군가가 알아주었음 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알아주기 원하는 마음을 갖는 신앙은 정말로 어리석은 신앙입니다. 성경적인 교회일수록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알아주십니다. 반대로 성경적이지 않은 교회일수록 하나님께서 알아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알아줍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너희를 칭찬하면, 너희에게 화로다.”, “너희 상을 사람들 앞에서 자랑함으로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도 여러분의 섬김을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섬김을 아시고 기억하십니다. 신앙은 사람이 아닌 주님을 믿는 것이요, 주님을 섬기는 것이며, 주님께 보상을 받는 것입니다. 사람을 의식하는 신앙, 사람에게 보상을 받으려하는 신앙은 불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칭찬을 받길 원하고, 하나님께서 알아주시기를 원하는 신앙이 값진 신앙입니다.

 

결론

 

왜 우리가 지체의 원리에 따라 성도들을 섬기는 일을 해야 할까요? 첫째로, 하나님께서 교회를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모든 성도들이 서로를 섬기고 일할 때 온전한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다른 성도들을 섬기게 하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성도들이 서로를 섬겨서 서로 섬김을 받는 것이 교회의 원리입니다. 셋째, 그것이 우리의 영적 성숙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은사에 따라 성도들을 섬기고 봉사하지 않으면, 절대로 영적으로 성숙할 수 없습니다. 넷째, 그것이 다른 성도들의 성숙을 가져옵니다. 손이 일함으로 다른 지체가 도움을 받는 것처럼, 자신의 은사의 활용은 다른 성도들의 성숙을 가져옵니다. 다섯째, 주님을 섬기는 우리의 섬김에 기쁨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섬기지 않는 삶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고 성도들을 섬길 때, 사람들은 이 교회야 말로 진정한 교회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새해에는 모든 성도님들께서 한 가지 이상, 무엇인가 성도들을 섬기는 일을 하시게 되길 바랍니다. 그럴 때 자신과 다른 성도들에게 기쁨이 되고, 교회는 변화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