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부활

2009년 September 6일 ()

본문: 요한복음 11:28-44 |

주 제: 그리스도인의 부활

 

본 문: 요한복음 11장 28절-44절

 

설교자: 조 성 훈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형제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의 맞던 곳에 그저 계시더라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의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하며 그중 어떤 이는 말하되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우리 주변에는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도 많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들의 소망이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 시간 그리스도인의 부활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나사로의 죽음

 

병이 들어 죽는다는 것은 서글픈 일입니다. 병원에 갔는데 의사선생님을 통해서 이제 의학적으로 도울 길이 없다는 말을 듣는다면 얼마나 힘들까요. 그 때 우리는 혼자서 죽음의 문턱까지 가야합니다. 여동생들이 주님께 사람을 보내어 나사로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전했지만 주님은 바로 오시지 않고 이틀을 더 유하신 뒤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와 그 누이들을 사랑하신다고 하셨는데, 나사로가 죽은 뒤에나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예수님처럼 병자를 고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등 큰 능력이 있는 사람을 잘 알고 있다면 어떤 병에 걸려도 전혀 걱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마리아도 그랬을 것입니다. 고통 가운데서 예수님을 기다리고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예수님은 오시지 않으셨고 나사로는 죽고 말았습니다. 주께서 사랑하신 자들에게 그와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나사로의 여동생들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예수님이 자신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관점에서 행동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는 것을 드러내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님이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구나, 우리가 그동안 주님을 대접한 것이 얼마며 교제한 시간이 얼마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운데도 주님을 참 사랑하는 자매님이 암에 걸려 고통 중에 있기도 하고 어떤 성도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장례식이 끝난 뒤 주님이 오셨을 때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한 마리아의 말에는 원망이 담겨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도와 주셨다면 이 어려움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름대로 뜻이 있으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슬픔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33-34)” 나사로는 젊은 사람이었고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울었을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통분히 여기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도 나사로의 죽음에 대하여 심적으로 고통스러워하시고 괴로워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가 고통스러워할 때 주님도 역시 고통을 느끼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눈물이 많은 위로의 말들을 대신해줍니다. 예수님 역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욥은 누구보다 인격이 훌륭한 사람이었는데 하루 아침에 재산이 날아가고 자식이 모두 죽었으며 자신의 몸도 병들어서 기왓장으로 긁고 구더기가 기어 다닐 정도였습니다. 아내가 욥에게 차라리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으라고 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고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라”고 고백했습니다. 나사로와 가족들에게도 역시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 원망스러운 일이었지만 주님은 그들에게 무관심 하셨던 것이 결코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낄 수 있는 분입니다. 인간들이 받는 고통을 아시고 이해하시며 함께 느끼시는 분입니다.

 

사람들의 절망과 애통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38)” 죽음은 사람들에게 아픔이 됩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 때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나사로가 죽어 무덤에 묻힌 후에 주님이 오셨는데, 우리가 볼 때 이 상황은 다 소용없는 일 같습니다. 죽은지가 벌써 나흘이 되었다는 말은 이미 늦었다는 말이고 그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것은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소망이 없어 보이는 것이 주님에게까지 소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나사로의 부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40)”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에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으면 영광을 볼 것입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주님의 신실하심을 믿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면서 점점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주님은 “저 사람의 죄도 아니고 부모의 죄도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생각에는 나사로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사람을 보내어 주님께 알리면 주님께서 당장 나타나셔서 그를 고쳐주고 그래서 가족들이 주님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기뻐할 것을 예상합니다. 그러나 나사로에게 주님은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큰 그림을 가지고 우리를 대하시지만 우리는 그림의 작은 조각을 가지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밖에 주님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은 주님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어려움 가운데서 해야 하는 것은 주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것이고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주님이 함께 하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곳을 갈 때 아무도 우리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때야말로 주님의 도움이 진실로 필요할 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감사한 것은 그 길을 홀로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어려움 가운데 주님과 함께 간다는 것입니다. 모든 환경 가운데서 주님을 신뢰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욥의 상황이 어떻게 되었든지 주님의 믿음을 버리지 않고 주님을 따랐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이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기도를 하십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41-42)”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께서 들으십니다. 우리가 원하는 모양으로 결과가 나타나지 않아서 그렇지 주님은 항상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42-44)” 믿겨지지 않은 일이지만 주님은 이런 권능을 가지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죽은 자도 살아나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 15:51-58)” 나사로뿐만 아니라 우리도 주님이 천사와 나팔소리와 함께 임하실 때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 땅에서 살아있다가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고 하지만 사도 바울처럼 사망의 길을 통과해서 부활의 능력을 맛보는 것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때 우리는 영광스러운 순간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사망의 길을 갈 것이고 여러분의 육체가 무덤에서 부활하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전 15:42-44 )” 땅 속에 있는 굼벵이가 어느 날 사라졌을 때 다른 굼벵이들은 그가 죽었다고 말하겠지만 그는 땅 위에서 매미로 살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소망이 있습니다.

 

결론

 

우리가 고통을 당해도 주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고통과 눈물은 모두 주님에게도 고통과 눈물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어려움 가운데서 나를 신뢰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자신 또는 사랑하는 사람이 병들었을 때,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가 원하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의 모든 환경을 통해서 주님께서 영광받기를 원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신실하심을 믿습니까. 우리가 어떤 어려움 가운데 있더라도 주님은 신실하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