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즐거움

2007년 March 4일 ()

본문: 로마서 5:1-11 |

주 제 : 그리스도인의 즐거움

 

본 문 : 로마서 5장 1~11절

 

설교자 : 조 성 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즐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을 믿으면, 하지 말라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즐기고 싶은 것을 즐기지 못하고, 또 일요일에도 놀러가지 못하는 등 많은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즐겁지 않은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설계하신 그리스도인의 삶은 즐거운 삶입니다. 물론, 즐거운 삶이 어려움이 없는 삶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주님께 나오면 할 일이 많아지고 더 힘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그들이 믿음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생각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은 분명 세상이 주는 것보다 더 나은 평안이며, 주님께 나온 우리는 무거운 짐을 벗고 쉼을 누리는 삶입니다. 즐거운 삶인 것입니다.

 

의롭다 함을 얻음으로 인하여 즐거워 함(1절)

 

우리가 즐거워야 할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고 하나님과 화평 가운데 있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본래 하나님과 우리는 원수였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등을 돌린 모든 인간의 삶에는 안식이 없었습니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 뿐 아니라, 인격이 훌륭하고 존경받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며, 성공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영혼에는 안식이 없고, 공허함과 쓸쓸함이 있습니다. 부유한 나라가 자살률이 높은 것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사람들이 즐거워하지 못하고,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그들의 무거운 짐인 죄책감 때문입니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마음 속에 있는 자신의 짐, 즉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짐승의 제사를 드리기도 하고, 죄목을 적어 열기구에 넣어 멀리 보내는 등 갖가지 노력을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죄책감을 덜어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었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본래, 하나님께 등을 돌린 것은 인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고통을 받게 된 것은 하나님이 아니고 인간인데,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에게 손을 내미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화목 제물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의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고, 나아가 하나님과도 화평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 뿐 아니라, 믿는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 안에서 화평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시 율법 가운데로 들어가 화평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지 못한 것으로 인하여, 십일조를 하지 못한 것으로 인하여 화평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화목을 지키기 위하여 무언가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화목은 우리의 행함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화목제물로 허락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제물, 즉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우리는 의롭게 되었고, 그 의는 영원토록 온전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얻은 것은 온전한 의이며, 우리는 그것에 무언가를 더 할 수도 없고, 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완벽하게 죄에서 해방된 자들입니다. 그래서 죄의 문제로 인해서는 언제든지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은혜 안에 들어감으로 인하여 즐거워함(2절)

 

우리가 즐거워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은혜 안에 들어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서 있는 터는 ‘은혜’라는 터입니다. 은혜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므비보셋이 그의 아버지 요나단을 인하여 다윗에게 은혜를 입었던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또한 우리는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통행금지법이 사라진 후에는 12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와도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은혜 아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러했고, 노아도 당대 악한 사람들 가운데서 홀로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롯 역시 아브라함의 간구로 인해 소돔과 고모라에서 구원을 받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조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우리가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까? 첫째로,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엡 2:8-9에서는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딤전 1:13-14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려고 다매색으로 가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주셔야 했던 것은 은혜가 아니라 형벌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인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에게 일을 맡겨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지 못해서 헤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맡기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하나님을 위해서 일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셋째, 날마다 우리 삶에서 은혜를 베푸심이 은혜입니다. 운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미 한 마리가 집을 나가서 일을 하고 무사히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은혜인 것처럼 사람이 하루 하루를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한, 하늘의 복된 소망과 함께 하늘의 기업을 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영광의 소망으로 인하여 즐거워함(2절 하)

 

우리가 즐거워해야 할 세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망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습니까? 첫째로, 우리에게 새로운 몸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육신의 장막을 벗게 되면, 늙지도 병들지도 않으며, 모든 환경을 초월하는 새로운 몸을 입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것이며, 하늘의 기업을 상속할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늘 기뻐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얼굴에는 수많은 별을 다스릴 즐거움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 만나는 사소한 것들로 마음이 상하고, 즐거움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소망은 분명히 이루어지는 것에 근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즐거워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계시는 그 곳에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가서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며, 영원히 하나님을 예배할 소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즐거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환난 가운데서도 그 결과를 인하여 즐거워함(3-8절)

 

네 번째로, 우리는 환난 가운데서도 환난의 결과를 인해서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환난은 인내를 만들고,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4절) 즐거울 때는 누구나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난 중에 즐거워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환난이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늘 나라에는 우리가 받은 모든 환난에 대한 보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뻐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 ‘나 같은 자가 주님을 위해서 어려움을 당하다니...’ 라고 생각하고 기뻐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모든 환난에 대해 주님께서 상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찬물 한 그릇도 그 상을 잃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순종함으로 인하여 직장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것, 가정에서,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 말씀을 순종함으로 인하여 고난을 받는 것에 대해 주님께서는 모두 보상하실 것입니다.

 

5절 말씀에서는 환난을 통해 얻어진 소망이 부끄럽지 않은 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하나님과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이었습니다. 따라서 내가 무엇을 잘못하든지에 상관없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자식은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때때로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결같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한결같이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 49:15)” 고 말씀하셨고, 호세아서에서는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찌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호 3:1)”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마음에 부어져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화목으로 인하여 즐거워함(10-11절)

 

11절 말씀에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더불어 참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으십니까? 우리는 의롭다 함을 얻었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하늘의 기업과 상을 받게 될 자들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뻐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삶을 살펴보면, 정말로 기뻐해야 될 이유밖에 없습니다. 어쩌다가 우리가 이렇게 큰 복을 받게 되었습니까? 우리가 구걸하는 삶을 살지라도 영원한 생명이 있다면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축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기쁨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