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목적

2008년 April 27일 ()

본문: 요한복음 6:1-15 |

주 제: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목적

 

본 문: 요 6:1-15

 

설교자: 조 성 훈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저는 어릴 때 겨울에 눈이 와서 온 세상이 흰 눈으로 덮이면 저것이 모두 쌀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먹을 것이 귀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신 이적의 사건이 나오는데 아마 이런 분이 임금이 된다면 백성들이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입니다.

 

상황에 대한 설명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로 둘러싸여서 매우 피곤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피해서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막 6:31-33). 하지만 그곳에도 주님의 표적을 보기 위해 무리들이 따라왔습니다. 그들 중에는 고침을 받기 위해 온 병자들도 있었지만 예수님을 따라가 배불리 먹기 위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들의 배고픔을 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사람들의 영적인 필요와 육적인 필요를 보십니다.

 

상황 가운데서 우리를 시험하시는 하나님

 

주님은 빌립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을 때 빌립은 얼마나 난감했을까요. 그런데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면서 빌립을 시험하셨다고 합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종종 사람을 시험하십니다. 여기서 시험은, 죄의 유혹이 아니라 그 사람의 믿음이 어디 있는가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친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5절~6절을 보면, 먼저 주님께서는 빌립이 어떻게 하실 것을 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실 때에도 모리아 산에는 아브라함이 제사를 드리도록 양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제물을 먼저 준비하신 분은 아브라함이 아닌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모르고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험입니다. 하나님을 다 아시고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믿음을 시험해보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살아가면서 시험을 당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항상 해결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지금 빌립의 눈에는 떡 바구니가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빌립은 인간적인 계산을 합니다. 모인 사람이 몇 명인가 계산해보니 돈이 이백 데나리온이 들어갑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이렇듯 자기 식으로 계산하는 것입니다. 자기 식으로 계산하고 돈이 없으니 답답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다 해결할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사는 사람은 이런 것을 경험합니다. 갑자기 나에게 백 만 원의 돈이 생긴다면 그 후에 백만 원을 쓸 일이 생깁니다. 주님이 그것을 주신 것은 그곳에 쓰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앞길을 생각하면 자식 걱정, 경제적인 고민들로 깜깜합니다. 그러나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면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그동안 잘 살아왔습니다. 우리에게 해답이 없는 시험은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 가운데서 있는 것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신다

 

지금 주님이 계신 곳은 산입니다. 이곳에는 가게도 없고 식당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주님은 빌립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사람들을 앉게 하시고 그곳에 가져온 떡과 생선을 축사하시고 나눠주십니다. 제자들이 그것을 가져다 주고 오니 광주리가 가득 차 있고, 또 다녀와 보니 광주리가 가득 차 있습니다. 제자들이 계속해서 가득 차 있는 광주리를 보면 그 다음에는 걱정을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생각하기에 광주리에 가득 차 있는 것을 한 번만 보면 평생 주님을 의심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돌이켜보면 어려울 때마다 영적, 심적, 물질적으로 하나님께서 도우신 손길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돕지 않으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시험에는 항상 주님이 해결책을 미리 준비하시고 계십니다. 우리 눈에는 해결책이 안보이더라도 말입니다. 본문의 상황도 빌립이나 제자들이 5천명을 먹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사람들을 먹이라고 하실 때에는 그들의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관심 - 그 큰 이적가운데서도 사람들의 관심은 언제나 주관적이다

 

5천 명이 배불리 먹고 나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찾은 까닭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목적은, 예수님을 만나 더 편하게 살고 싶거나 장사를 잘 하고 싶거나 상속을 나눠 갖고 싶거나 병 낫기를 원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주님이 서글퍼 하신 것은 그들의 영적인 필요를 그들이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올 때 빈 바구니를 하나씩 가지고 오는 것 같습니다. 집에 돌아갈 때 바구니에 무언가로 풍족하게 채워지면 교회를 잘 왔다 생각하고, 채워지지 않으면 오늘 하루는 교회 가서 별 것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빈 바구니를 가지고 온다면 누가 채울 수 있을까요. 우리는 모두 앞으로 바구니를 가득 채워가지고 와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줘야 합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의 목적은 육적인 양식을 채우기 위한 것입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 치신 자니라(요 6:27)” 주님은 영적인 것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십니다.

 

결론

 

주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실 때는 그 해결책을 이미 알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시험에서 실패했을 때 마음이 아픕니다. 나의 실상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빌립 역시 주님의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여기 계신 모든 분들에게 백 억짜리 복권을 당첨시켜 주신다면 지금보다 더 주님을 잘 섬길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물질은 우리를 주님 앞에 더 가까이 나가게 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우리에게 주신 환경에 감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주님을 더욱 신뢰하도록 제 환경을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주님은 그가 죽을 줄 아시면서도 일부러 가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사정을 먼저 알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주님을 왜 따랐는가 하는 것을 보며 우리 자신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술램프를 가진 사람처럼 주님을 따르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썩을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왜 내 환경이 이렇게 힘들까, 왜 앞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하신다면 그 길을 계획하신 분도 주님이시고 해결책도 주님이 갖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로인해 주님께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면 주님이 허락하신 환경에 대해서 무릎 꿇고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모든 상황을 다 아시며 환경을 통해 시험하시고 그 해결책을 가지고 계십니다. 주님을 신뢰하시고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