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의 기쁨

2006년 August 27일 ()

본문: 하박국 3:16-19 |

주 제 : 하박국의 기쁨

 

본 문 : 하박국서 3장 16절~19절

 

설교자 : 조 성 훈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 오는 환난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 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 서 떨리는도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하박국 선지자는 주전 609년,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유다를 1차 침입하기 직전에 활동하던 선지자였습니다. 1장부터 3장의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로, 죄악 가운데 있는 유다 백성들에 대한 탄식이 나오고, 그 다음으로, 그 죄악으로 인해 멸망할 것에 대한 탄식이 나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오직 하나님으로 기뻐할 수 있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이 기뻐할 수 있는 환경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박국이 처한 상황 또한 기뻐할만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직 여호와로 인해 만족하겠다는 고백을 하는데, 우리가 여기에서 좋은 교훈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박국의 첫 번째 의문

 

하박국 1장 1절부터 4절 말씀에서 하박국은 유다에 만연한 죄악과 하나님의 잠잠하심에 대해서 말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악한데, 하나님께서는 왜 잠잠하실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도 많은 사람들이 죄악으로 인해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탄식 가운데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하박국 선지자가 말한 것처럼, 죄악이 이렇게 만연한데도, 하나님께서는 못 본 채 하시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저는 며칠 전 한 뉴스를 보았습니다. 탤런트가 되고 싶은 한 여성이 사채 2천만원을 빌려 썼는데, 그것 때문에 사채업자들에게 60억 재산을 모두 빼앗겼다는 뉴스였습니다. 그 어머니가 하도 억울해서 그 딸과 사채업자들을 고발을 했는데, 그 딸은 구속되고, 사채업자는 풀려나왔다고 합니다. 그 뉴스를 보면서, 저는 ‘하나님, 저런 악한 자들을 왜 가만 두십니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이런 일들을 수없이 많습니다. 힘없고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고 약탈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한 성범죄자, 사기꾼 절도자들... 이런 자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이런 자들을 멸하시지 않는지, 하박국과 같은 의문을 품을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이런 의문을 품는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통해 유다를 징벌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하박국은 “하나님, 어떻게 더 악한 자가 선한 자를 칠 수 있습니까?” 라고 하나님께 묻습니다. 이것이 하박국의 두 번째 의문입니다.

 

하박국의 두 번째 의문

 

하박국은 선한 자들이 유다를 치는 것이 아니라, 어찌하여 더 악한 자들이 유다를 칠 수 있느냐고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반드시 그들을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이를 반드시 기록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죄악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심판하실 것입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 죄악이 심판받지 않은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모든 죄는 반드시 다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죄를 눈감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죄가 공개적인 죄든, 은밀하게 지은 죄이든지 반드시 심판을 받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그 심판을 받든지, 또는 하늘나라에 가서 받든지, 모든 죄는 심판 받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심판 받을 운명에 있던 자들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그 모든 죄를 사함 받은 행복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자들의 죄는 그들의 죄를 따라 심판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를 벌하시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하늘에서 불을 내리셔서 심판하신 적도 있고, 병에 걸려 죽는 심판을 하신 적도 있습니다. 그 중에, 다른 민족을 통한 심판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때, 애굽을, 때로는 바벨론을 이용하셨습니다. 한편, 가나안이 죄악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가나안을 침공하게 하셨는데, 하나님께서는 아이들까지 그 어떤 것도 남기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 그 심판을 분명히 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라고 말씀하시면서, 2장 4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며, 악인은 죽을 것이다.” 이 말씀은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신약에 와서 이 말씀이 진리임이 더욱 확고히 되었고, 또한 마틴 루터는 그가 종교 개혁을 할 때, 이 말씀이 그의 마음속에 가장 중심적인 말씀이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사람들, 즉 갈대아인들을 통해 유다를 심판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 역시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 또한 악한 죄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칠 줄 모르는 정복하고자 하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고, 교만한 자들이었습니다. 또한 피흘림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이웃을 부패하게 만들며, 우상 숭배를 했던 죄악이 가득한 민족이었기에,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후에 하나님께서는 갈대아인들을 향해 말씀하시길, “내가 너희 손을 빌려 악을 행한 이스라엘을 벌했지만, 너희가 너무 심했다. 해도 해도 너무 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바벨론을 멸망하게 됩니다.

 

하박국의 기도와 하나님 신뢰

 

하박국은 참 어려운 시대를 살아간 사람입니다. 그는 선지자로서 자신의 민족이 죄에 빠져있음을 탄식했던 선지자였습니다. 참으로 심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놀라운 고백을 하게 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이 고백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는, ‘자신에게 아무 것도 없다 할지라도 나는 오직 여호와를 인해 즐거워하겠다.’ 라는 뜻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는 그러한 환경 가운데서 이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이는 그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근원이 되시며, 참평안과 기쁨이, 또 진정한 쉼이 하나님께 있음을 그는 알았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 또한 많은 시편에서 그러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는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겠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반석이시며, 요새시며, 피할 바위가 되시며, 방패, 구원의 뿔, 영광... 이라고 고백합니다. 다윗 뿐 아니라 하나님을 가까이서 섬겼던 많은 사람들이 동일하게 하는 말은 하나님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레위 지파는 또 어떠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와 가나안에 들어와서 각 지파별로 토지를 분배했을 때,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땅을 유업으로 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의 유업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정말로 하나님으로 만족할 수 있으십니까? 그럴 수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다 같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나, 레위인이나, 오늘날 우리나 모두 같습니다. 보이지 않은 하나님보다 보이는 물질이 좋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의지하는 것보다 보이는 사람의 약속이 더 확실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인데도,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 뿐 아닙니다. 다윗 또한 하나님만으로 만족한다고 말하고 있고, 그 밖에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하나님만으로 만족한다고 말합니다. 신약에 들어와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어떤 것보다 그리스도께서 가장 귀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는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에게 “금과 은은 내게 없지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으로,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시는 것으로 만족했던 사람들입니다.

 

반면, 하나님 이외에 다른 무엇으로 만족을 찾고 쾌락을 얻으려고 노력했던 솔로몬이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는 아내를 천명이나 두었고, 집을 아름답게 짓고, 종을 많이 두기도 하는 등 쾌락을 위해 많은 것을 추구하고 노력했지만, 그가 말하는 것은 ‘모든 것은 헛되다.’는 것입니다. 물질을 쫓아가는 사람들은 결국 메마른 마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자신에게 와서 쉬라고 말씀하셨고, 평안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목마른 자들에게는 주님께로 오면, 그 속에 생수가 넘쳐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만 진정한 기쁨과 만족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리라는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

 

성경에는 이와 같이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많은 사람들의 고백이 나옵니다. 나라가 적군에게 짓밟히고 망하게 된 상황에서도, 각처에서 난무하는 죄악들을 보는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극히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겠다는 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 역시 즐거워할 만한 일이 없는 상황입니다. 경제적으로는 점점 어려워지고, 직장 생활은 어렵습니다. 어디를 봐도 즐거워할만한 일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하박국이 그 어려운 상황에서 만족할 수 있었던 이유인 하나님, 그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기에 우리는 그분으로 기뻐하고 만족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기에 위에 것을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에게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실망하려거든 세상을 바라보고, 절망하려거든 자신을 바라보며, 힘을 얻으려거든 주님을 바라보라.” 우리의 눈이 주위를, 자신을 바라볼 때에는, 결코 기쁨과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하나님만으로 기뻐하고, 만족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