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소망

2005년 July 31일 ()

본문: 베드로전서 3:13-16 |

주 제: 그리스도인의 소망
본 문: 벧전 3:13-16
설교자: 조성훈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소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드리기를 원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녀가 소망이 되기도 하고, 노년의 평안한 삶이 소망이 되기도 합니다. 이 소망 중에는 헛된 소망이 있고, 의미가 있는, 살아있는 소망도 있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의 소망은 헛된 소망이요,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소망은 살아있는 소망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오늘 말씀에서 너희에게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소망은 살아있는 소망이기 때문에 베드로는 이의 이유에 대해 대답할 것을 준비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은 세 가지 부분에 있어서 우리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데, 첫째는, 고난을 가져다 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참다운 삶의 의미를 부여하며, 세 번째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의무를 부여합니다.
이 소망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고 있는 부활의 소망이요, 하늘의 기업에 대한 소망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다스리며, 영광을 누릴 소망입니다. 이 소망이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 모든 사람들의 소망은 헛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삶 자체가 무익한 것이요, 부활의 소망이 없다는 것은 그 삶이 헛된 것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시편의 많은 기자들도 인생에서 남는 것은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솔로몬도 전도서에서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씀은 소망이 없는 자들이 하는 것 모두가 헛되다는 것입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부활의 소망이 없다면, 같은 것입니다.

고난을 가져다 주는 소망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부활의 소망은 우리들에게 첫째로 고난을 가져다 줍니다.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고난을 받았습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고난을 당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베드로전서를 쓸 때의 상황은 로마의 핍박이 매우 심할 당시였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자 밥이 되고, 화형을 당하기도 하였으며, 톱으로 켬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소망의 이유를 묻는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좋은 의미에서 그런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묻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핍박하고 죽이기 위에서 믿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 두 가지 상황 모두에서 소망의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상황에서 무엇을 대답하시겠습니까? 믿는다고 말하면, 사자 밥이 될 것이요,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살려준다고 말할 때에 주님을 시인한다는 것이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일은 아닌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선진들이 주님을 시인하고 사형 틀에서 죽어갔습니다.

삶의 참다운 의미를 부여하는 소망
하지만, 소망이 고난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소망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참다운 삶의 의미를 부여해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삶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부활과 부활 이후의 삶과 연관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잘 성장하여 장가를 가고 죽었다면, 그 사람에게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그 사람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또한 그의 모든 것이 헛된 것입니다. 하지만, 부활의 소망이 우리들에게 주어질 때에, 죽음 이후의 삶이 연결될 때에 모든 것에 의미가 부여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한다해도 의미가 있고, 우리가 열심히 하는 장사에도 의미가 있으며, 공부에도, 그밖에 우리의 삶의 모든 것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지옥에 가서 ‘옛날에 내가 사장이었지.’, ‘나는 세상에 있었을 때, 대통령을 했었지.’ 이런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을 열심히 돕고, 남을 위해 살아도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다면, 한 명의 자선 사업가로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들에게는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이 땅의 모든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은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삶을 살고자 하는 참다운 이유를 부여해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삶의 이유를 물어보면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옵니다.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자식들 때문에 산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부활의 소망이 없다면, 헛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다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너희의 모든 수고가 헛되지 않다.” 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던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임종시에 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삶의 모든 것들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죽음 후에 의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는 일의 동기와 의미를 부여합니다.
사람들의 삶은 자기의 생각대로 되어지지는 않습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들은 “바다는 평평하기 때문에 바다를 계속해서 항해하면, 낭떠러지가 있어 그곳으로 떨어져 죽게 된다.”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 때의 그 생각들이 모두 헛된 것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많은 것도 헛된 것으로 끝나는 것들이 많습니다. 지옥에 가서 세상에서의 삶이 행복했냐고 따진다고 하면, 그것은 얼마나 무의미한 일입니까? 세상에서의 7,80년을 어떻게 보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소망을 가지고 있는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양계장에 있는 닭의 운명은 무엇입니까? 닭의 운명은 삼계탕의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양계장에 있는 닭들을 살펴보면, 더 지혜로운 닭이 있고, 힘이 센 닭이 있으며, 암탉을 많이 차지하는 닭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닭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죽을 운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닭에 있어서 힘이 세고, 지혜로움을 갖는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죽을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부활의 소망이 없는 사람들의 삶은 이렇게 헛된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의무를 부여하는 소망
또한, 부활의 소망은 우리에게 의무를 부여합니다. 첫째로, 성도들에게 어떻게 해야될지를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8절에 보면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율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우리가 해야할 의무는 “서로 마음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도 하길 원하는 것이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되게 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에 모인 것이 자신의 마음대로 하기 위해 모인 것은 아닙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사람들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은 이제는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드리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작정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우리 자신들을 위해 살았습니다. 내 자신을 기쁘게 하길 원했고, 행복하게 되기를 원했으며, 내 자신을 위해 살고자 하는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로는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할까’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것도, 형제 자매를 사랑할 때, 주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 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같이 해야하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노력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사람이 영광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서로를 체율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형제, 자매들의 어려움에 같은 마음을 나타내야할 것입니다. 이것이 같은 소망을 가진 자들이 해야할 의무입니다. 갇힌 자처럼 갇힌 자를 생각하고,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는 것, 서로 체율하고, 동정하고, 슬픔과 고난을 함께 나누고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우리의 의무인 것입니다. 또한 형제처럼 서로를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처럼 진정으로 사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은 우리에게 큰 특권을 줄 뿐 아니라 우리에게 이러한 의무도 부여하는 것입니다.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서로 간에 예의를 지키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무례히 행치 아니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입니다.(고전 13장) 때로 우리는 서로 간에 예의 없이 행할 때가 많은데, 그것은 우리가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베드로는 “겸손하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참다운 겸손은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서 자신을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볼 때,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망을 갖지 못한 자들에게는 우리가 어떤 의무를 가지고 있을까요?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어떻게든 참아볼 수 있겠는데, 그를 축복한다는 것은 정말로 힘듭니다. 악을 선으로 갚는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입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그를 위해 복을 빌라고까지 말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그것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위로가 되는 것은 이 모든 것에 보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14-16)” 여기 말씀에서 베드로는 고난에는 보상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시대의 사도들은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받고 욕을 먹을 때, 기뻐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원수가 너희를 미워하고 핍박하면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그것들로 인해 받는 상이 많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교훈인 것입니다.
한편, 부활의 소망은 우리가 어떻게 삶을 살아야하는지도 가르쳐주고 있는데, 요한 1서 3장 3절에는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자기를 깨끗케 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본문 말씀에서는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말하고 있고, 또한 언어 생활을 비롯해 거룩한 삶을 살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 소망대로 삶을 살게 되면,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틀림없이 이 질문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당신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습니까?” 혹은 우리를 핍박하기 위해 “당신은 정말 믿는 사람입니까?”라고 질문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이 질문들에 대해 대답해야할 말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결론
우리는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부활의 소망은 우리들에게 고난을 가져다주고, 삶의 모든 부분에서 참다운 의미를 부여하며, 의무를 부여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을 충성스럽게 살아야할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열심히 공부해야 될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열심히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가 우리를 핍박할 때, 원수를 축복해야할 의무, 또한 의미가 우리들에게는 있는 것입니다. 공부를 하든지, 혹은 사업, 장사를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열심히 해야할 참다운 동기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부활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고, 형제, 자매를 사랑하고, 공부를 하고, 사업을 하는 모든 것이 헛되지 않은 것입니다. 소망이 없는 모든 사람들의 수고는 결국 헛된 것으로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계십니까? 가지고 있다면,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장사하고, 열심히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고, 열심히 불신자들의 핍박에 대해서 선으로 갚아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그것이 우리들이 살아야 될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