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남은 때

2005년 July 17일 ()

본문: 베드로전서 4:1-6 |

주 제: 육체의 남은 때
본 문: 베드로 전서 4장 1절~6절
설교자: 조 성 훈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저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육체의 남은 때」 라는 주제로 말씀을 드리기를 원합니다. 시편 기자는 시편 39편 4절에서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의 연약함을 알게하소서." 라고 이야기했으며, 또 다른 시편기자는 "하나님 저의 남은 삶이 얼마나 됩니까? 제가 얼마나 더 살수 있습니까?" 라는 말을 했습니다. 어쩌면 여기 있는 젊은이들은 앞으로 자신의 삶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겠지만 오십이 넘으신 분들은 팔십까지 두고 봤을 때 30년 정도 남았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런데 거기서 잠을 자고 밥 먹는 등의 시간을 빼고 나면 사실 남은 때가 그리 길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도 나의 남은 때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비록 요즘은 의학이 발달되어서 인간의 수명이 점점 길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들에게 남은 삶이 그리 길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베드로는 우리 육체의 남은 때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아야 할 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세상을 한번씩은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마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같습니다. 그러다 자신에게 그런 일이 닥치면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그 일은 모든 사람들에게 닥치게 될 일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전세를 살고 있는데 주인이 방을 빼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빼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만드신 주인이 정리하라고 하시면 정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
말씀을 보면, 우리가 따라가야 할 본으로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는데, 1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실 때에 자신이 오실 삶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집에 많은 옷들과 신발이 있고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면 외출 시에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신발을 신고 나갈 것인가 한참 고민 후 결정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도 이 땅에 오실 때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오실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부유하셨지만 검소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린 때때로 주님이 가난뱅이로 이 땅에 오신 것으로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검소한 자리에서 나셨으며 삶을 사실 때에도 사람들이 그렇게 존경받지 않는 집안과 지역에서 태어나서 스스로 검소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자신이 친하게 지낼 사람들을 택할 때에도 세상에서 존경받는 사람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멸시를 받고 친구가 없으며, 외로워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과 함께 할 것을 결정하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말씀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가난이 아닌 겸손함을 원하셨고, 또한 핍박을 당할 때 악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갚기를 원하셨으며, 사람들의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닌 섬길 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또한 이 땅에서 자신이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하셨고. 자신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길 원하셨으며 그러한 삶을 설계하고 오신 것입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스스로 택할 수 있으셨습니다. 그런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그러한 삶을 앞서 친히 보이신 것입니다.
하루는 주님께서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대야를 가져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의 발을 씻긴 것은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게 하려고 내가 너희에게 본을 보이노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이 땅에서 살아가신 삶은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의 본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또한 그들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가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제자들 앞에 살아가면서 행하셨던 모든 일이, 바로 제자들에게 본을 보이시기 위해서 그렇게 살아가신 것입니다. 태어나신 곳도, 살아가신 집안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수를 대하는 태도도, 모두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는 말은 "주님을 본받으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주님은 고난의 삶을 택하셨는데, 사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이런 삶을 사는 것은 쉽운 일이 아닙니다. 상황이 그러하고 형편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지 내게 모든 자유가 있고 능력이 있다면 사람들은 잘 사는 편, 사람들의 섬김을 받는 편, 또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편을 택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선 그런 것을 택하지 않으시고 육체의 고난을 받는 편을 택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도 같은 본을 삼으라고 말하고 있으며, 2절에서는,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그렇게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육체의 남은 때를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게 하기 위함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삶을 산다면 그것은 정말로 성공한 삶입니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처럼 추한 삶은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드러내는 삶을 사는 것만이 가치 있고 고귀한 삶입니다. 우리의 앞에 살아간 수많은 선진들도 그러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충분히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아갈 수 있었지만 오히려 고난의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모두 선택의 자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자신의 안락함을 위해서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고통 당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3절 말씀을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혹시 구원받고 나서, 지나간 구원받기 전의 방탕했던 삶이 그리운 분이 있으십니까? 베드로는 그러한 삶은 지나간 때로 족하지 않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도 그러한 것을 반복할까요? 구원받은 것을 너무 기뻐하면서도 왜 구원받은 이후에도 그러한 것이 있어야 하냐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여전히 술 마시며 방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지나간 삶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한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그것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살라고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서처럼 그러한 삶은 지나간 때로 족한 것입니다.

우리의 남은 삶과 하나님의 뜻
이제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살라고 말하고 있는데, 4장 1절 하반절에 보면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곧 우리 주님께서 육체의 고난을 받으심으로 우리 죄를 없이 하셨다는 말씀과 같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누가 육체의 고난을 받았기 때문에 죄가 없어졌다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러했다면 우리 모두가 고난을 받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그 후로는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욕은 무엇입니까? 우리들에게 욕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수많은 정욕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이생의 자랑을 위해 살아갑니다. 서로를 비교하며, 좋은 집, 학벌과 멋진 외모를 자랑하며 또 그것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생의 자랑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비극적인 사람입니다. 그럼 어떠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일까요? 우리의 남은 때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자가 행복한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사람들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라고 말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영혼 구원과 연관되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삶이 나 하나 잘먹고 잘 사는 것에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욕심과 정욕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로는, 거룩한 삶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고 있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만약 어떤 그리스도인이 항상 기뻐하며 밝게 살아간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항상 괴로워하고 슬퍼하며 우울해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항상 감사할 것뿐이 없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 감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선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는 것에 족한 줄 알고 감사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불평을 하려면 모든 것이 불평이 됩니다. 하지만 감사하려고 하면 모든 것이 감사의 이유가 됩니다. 설령 병들어 죽음 앞에 있다 할지라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이도 여호와시니 여호와께서 영광을 받으실 지어다." 라고 고백한 욥의 경우처럼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한 달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면 어떠할까요? 천국에 소망을 갖은자들은 감사해야할 것입니다. 눈을 감으면 천사가 그를 인도해 갈 것이며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환경에서든 구원받은 사실 한가지만으로도 날마다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것은 어떻게 선을 행하는데 고난을 받게 될까하는 것입니다. 본문말씀 4절에 보면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한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정직하게 살면 핍박을 당합니다. 가령 모두가 내물을 받는 직장에서 내물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핍박의 대상이 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의를 행하면 고난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은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악을 선으로 이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선을 행해야 합니다. 주님과 늘 가까운 교제 가운데 있지 않으면 이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서 계실 때 끊임없이 선을 행하셨지만 주님의 주위의 사람들은 늘 주님을 미워하고 죽이고자 했습니다. 주님의 행하심을 볼 때 그들의 양심이 괴로웠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은 자신의 욕심을 채웠고 자신의 이익과 이름을 위해서 살아가는데 주님은 그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정과 직장 그리고 사회에서 하나님의 선한 일꾼으로 살아갈 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양심에 괴로움을 받는 것입니다. 선인과 악인이 함께 살아갈 때 악인은 굉장히 괴롭습니다. 악인은 주위에 살고 있는 의인을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처럼 만들어야만 편하게 살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주님으로 인해 얼마나 고난을 받고 계십니까? 혹시 고난 받을 일이 있으면 도망가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들에게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말씀드려서, 이제 우리들 각자에게 남은 때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들에겐 그렇게 많지 않은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육체의 남은 때를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어떻게 여러분의 삶을 잘 마무리하시겠습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에 여러분의 남은 때를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여러분의 남은 때를 살아갈 수 있을까 진지하게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해야 남은 삶 가운데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갈 수 있을지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어떻게 사시기를 원하십니까? 자신의 이름을 높이며, 지나간 삶을 그리워하며,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으로 살아가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리스도를 높이며 그리스도의 이름을 빛내는 것으로 여러분의 삶을 사시겠습니까? 이것은 여러분들이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남은 삶을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쓰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