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요한의 죽음

2010년 March 14일 ()

본문: 마태복음 14:1-12 |

주 제: 세례 요한의 죽음

 

본 문: 마태복음 14장 1-12절

 

설교자: 조 성 훈

 

“그 때에 분봉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저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권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는도다 하더라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민중이 저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민중을 두려워하더니 마침 헤롯의 생일을 당하여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 허락하거늘 그가 제 어미의 시킴을 듣고 가로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왕이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을 인하여 주라 명하고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옥에서 목 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가 그 여아에게 주니 그가 제 어미에게 가져가니라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고하니라“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가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초상집에 가면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아주 짧은 생을 살다가 간 사람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갈 때 무엇으로 그를 평가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세례 요한의 삶을 통해서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세상을 떠날 때 무엇을 남겨야 하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출생

 

그는 제사장의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눅 1:5-16). 요한의 부모가 오랫동안 자녀가 없어 기도하고 있는 중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자녀를 주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특별한 계시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인 사가랴가 제사장의 임무를 행하기 위해 성전 안에 들어갔을 때 그는 거기서 천사를 만났고 천사로부터 아들을 낳으리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그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아들을 낳을 때까지 말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환상을 봤기 때문에 그와 같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곧 아내가 임신을 하고 아들을 낳자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매우 위대한 사람이 되리라고 기대했습니다.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주의 사자가 저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눅 1:10-17)” 요한의 아버지에게 일어나는 이와 같은 이적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요한에게 큰 기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사람들의 기대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대’는 하나님의 기대가 아닌 사람들의 기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정도의 계시와 이적이 동반하는 아이의 출생이라면 사람들의 머릿속에 엄청난 일을 하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눅 1:66). 그러나 그는 누가 봐도 성공이라고 볼 수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는 단벌 신사에 집도 없이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를 통해 세례를 받고 그를 주목했지만 예수님이 나타나자 곧 모두 주님께로 갔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그 사실을 말하자 요한은 “그는 흥해야 하고 나는 쇠해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는 얼마 되지 않아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의 사명

 

사람은 무의미하게 이 땅에 태어났다가 죽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짐승은 태어날 때부터 잡아먹히기 위해 태어나므로 꿈도 희망도, 장래가 총망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무의미하게 살지 않습니다. 요한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천사가 말하기를 그는 주 앞에 큰 자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눅 1:13-16). 여기서의 ‘큰 자’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그는 매우 검소한 삶을 살았습니다. 약대털을 입고 가죽띠를 띠며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단순한 삶을 살았습니다(막 1:6).

 

그의 죽음

 

사람의 죽음 앞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세상에 무엇을 남겼느냐 하는 것입니다. 공동묘지에 가면 그와 같은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세상을 떠나갈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편안하게 죽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젊은 나이에 목이 잘려 죽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던 훌륭한 자였는데 주님은 그를 편안하게 데려가시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를 좀더 품위 있게 데려가셨다면 오늘날 그에 대해 설교하기도 더 좋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삶에 대한 평가

 

삶을 평가하는 것은 그가 얼마나 살았느냐가 아닙니다. 오래 살았다고 성공한 것도 아니고 적게 살았다고 실패한 것도 아닙니다. 얼마나 살았든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얼마나 성취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세상에 남겨놓은 재산으로 그의 삶을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은 사람들이 흠모할 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마 11:7-11)” 여러분이 사는 동네에 장가도 못가고 재산도 없고 허름한 차림새에 나이도 젊어서 갑자기 죽어버린 사람이 있다면 그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비참하게 객사했다고, 젊은 사람이 안됐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그 사람에 대해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

 

인생을 무엇으로 평가해야 할까요. 어떤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돈주머니를 놓지 않습니다. 돈은 많지만 나이는 들고 모아놓은 돈을 다 쓰지도 못하니 얼마나 답답한 노릇입니까. 우리도 우리의 삶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사람들이 볼 때 성공한 삶을 살 것인지, 하나님이 보실 때 성공한 삶을 살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중고차를 타고 가면서 고급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며 그가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이 여러분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중요합니까. 그가 복을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진정 행복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삶을 결산할 때 하나님 앞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오늘날까지 기억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남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보잘것없고 재산도 없이 목 잘려 죽은 한 청년인 세례 요한을 오늘날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영원에 비추어 가치 있는 삶, 하나님 나라에 투자하는 삶, 그 일에 신실한 삶이 진정 남는 삶입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데려가셨습니다. 그렇게 기대하고 바라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이 끝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이 사역을 하시기 전에 주님을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사역을 시작하시자 요한은 감옥에 갇히고 목이 잘려 죽었습니다. 이제 그의 사명이 끝난 것입니다. 주님이 오라고 하실 때 히스기야 왕처럼 더 살게 해달라고 하는 것은 좋은 자세가 아닙니다. 마치 축구경기에서 감독이 부르는 것처럼 세상에서 자신의 사명을 마치면 떠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도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현재 여기서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 세상을 떠난 다음 무엇을 남기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무엇을 성취하시겠습니까. 그 사명을 성취한 뒤 세상을 떠날 때 주님은 “잘했다 충성된 종아”하시면서 칭찬하실 것입니다. 모세도, 사도 바울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했습니다. 어떻게 인생을 마무리 하고 싶으십니까. 오늘 이 순간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에 충성해야 할 것입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하셨던 세례 요한의 삶을 생각하시면서, 신앙의 위대한 유산을 자손에게 남기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