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의 실족

2008년 August 31일 ()

본문: 마태복음 11:1-19 |

주 제: 세례 요한의 실족

 

본 문: 마11:1-19

 

설교자: 조 성 훈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명하시기를 마치시고 이에 저희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마태는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왜 요한의 어두운 면을 기록했을까요. 대개 칠순잔치나 회갑잔치 등 누군가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보면 그에 대해 좋은 점과 훌륭한 점을 말해 그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가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그러한 자리에서 그가 얼마나 인생을 비참하게 살았는가에 대해서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세례 요한에게 훌륭한 면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그의 연약한 면을 성경에 기록하여 수천 년 동안 많은 사람에게 읽히게 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길 원합니다. 요한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 베드로, 엘리야, 모세 등 다른 위대한 신앙인들도 연약한 면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연약한 면을 기록함으로써 후시대 사람들에게 교훈을 삼도록 하신 것입니다.

 

감옥에 있는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서 “오실 이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다시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주님을 만나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소개하고 자신의 제자들을 주님을 따르라고 보냈으며 늘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겠다며 주님을 높이던 세례 요한이 왜 감옥에서 주님을 의심하게 됐을까요.

 

이유는 그의 어려운 환경 때문이었습니다. 요한은 아주 습하고 어두운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환경에 있을 때 사람은 심적으로 연약하고 마음 가운데 낙심이 됩니다. 어떤 형제님은 일찍이 주님의 일에 뛰어들어서 사역을 하며 평생을 주님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좋은 직장을 버리고 충성되게 주님을 섬겼지만 그분은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서 주님께로 갔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감옥에 갇혀있는 요한이라면 어떤 삶을 기대할까요. 직장이 어렵고 생활이 어려워도 십일조를 드리고 주일에 교회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남이 하기 싫어하는 온갖 궂은일들도 열심히 했는데 그 결과 자식이 잘못되고 배우자가 질병에 걸린다면, 자신이 지금까지 섬겨온 주님에 대해서 마음속에 실족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밝은 미래를 기대합니다. 은퇴하면 마음껏 내 생활을 즐기고 여유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 것을 기대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주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사람들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년에 병에 걸리거나 집안에 큰 일이 생겨서 쉼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례 요한 역시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가죽옷을 입는 등 검소하고 헌신적인 삶을 살았는데 한창 젊은 나이에 감옥에 갇히게 되자, 담대하고 마음에 확신이 차 있었던 요한의 마음 속에 주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역시 어려운 일이 일어났을 때 “왜 하필이면 저입니까. 세상에는 많은 악인들이 있습니다”라고 할 때가 많습니다. 자신은 주님 앞에 할 바를 다 했다고, 주님께 헌신하고 주님을 신실하게 섬겼다고, 그러니 이러한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불공평하다고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경우에 주님을 떠나버리거나 그 해결책을 사람에게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요한은 사람들을 주님께 보냈습니다.

 

요한은 주님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의심이 들었습니다. 요한은 주님을 제대로 만난 적이 없습니다. 주님이 세례 받으실 때를 제외하고는 주님에 대한 모든 정보를 사람들을 통해 들었을 뿐입니다. 때때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주님은 사람이 조금만 잘못해도 그를 징계하고 벌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은 차별이 없고 동일하게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때때로 우리는 주님에 대해서 잘못 알고 주님의 사랑과 역사하심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세속적인 영향 때문에 주님을 의심합니다. 주님이 성전을 청결케 하실 때 그 당시 기독교는 타락해 있었고 유대인들의 신앙은 외식적이었으며 하나님에 대해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세속적인 환경 때문에 그들의 신앙이 세속적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많은 부분 세속화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기대가 너무 크거나 잘못되어 있을 때도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거나 실족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삶에 대해 어느 정도 기대하고 있는데 결과가 그것에 미치지 못할 때 주님의 사랑을 의심합니다. 구약의 선지자 엘리야도 이세벨의 말 한마디에 두려워 숨어서 죽기를 구하는 미약한 모습이었습니다(왕상 19:2-4). 사도 바울도 자신에게 육체의 가시가 있었다고 합니다(고후 12:7-9).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사람들이 멸시할 만큼 혹독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주님 앞에 참 신실하고 위대한 종인데 하나님이 그에게 질병을 주셨습니다. 바울은 그것으로 3번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주님을 잘못 섬긴 것이 있습니까, 장가도 안 갔고 재산도 없고 모든 것을 바쳐 주님을 섬겼는데 왜 저에게 가시가 있습니까”라고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도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셨습니다. 네가 받은 계시가 크고 네가 맡은 임무가 참 커서 그것으로 네가 교만해 질까봐 가시를 주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삶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때때로 환경이 너무 어려울 때 우리는 주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요한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요한에 대해서 비난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는 요한에게 가서 내가 하는 일,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해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셨습니다. 그 어떤 환경에 있더라도, 건강이나 물질이나 사업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주님에 대해서 실족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러한 어려움을 모르고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나사로가 병든 것을 아셨고 죽는 것도 아셨으며 그가 죽을 때까지 가지 않고 기다리셨습니다.

 

주님은 요한에 대해 평가하시기를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연약해도 우리를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요한의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그를 평가하시기를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결론

 

아무리 주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사람이라도 세상으로부터 오는 재앙을 피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사고가 일어날 수 있고 여러분과 자녀에게 불의한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흔들리지 말고 주님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요한은 주님께 나아가 해답을 얻고 이후에 다른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용히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이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환경 가운데서 주님을 높여가야 합니다. 환경 때문에 주님에 대한 섬김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육체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소망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주님을 더욱 의지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