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이전에 내가 있느니라

2008년 September 14일 ()

본문: 요한복음 8:48-59 |

주 제: 아브라함 이전에 내가 있느니라

 

본 문: 요8:48-59

 

설교자: 조 성 훈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어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나는 내 영광을 구치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어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장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하시니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예수님의 사역은 유대인들에게는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많이 배운 사람도 아닌데 갑자기 나타나서 이적을 행하고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당혹스러워 하고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성경을 잘 알고 하나님을 올바로 믿은 사람들은 메시야의 오심을 환영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예수라는 이름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유대인들의 비난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귀신들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얘기들이 정상적인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다’고 말씀하시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귀신들렸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한 것의 의미는 “너는 순수한 유대혈통이 아니다”, “네가 태어난 장소는 선한 사람이 나올 수 없는 곳이다”, “너는 배움이 없고 천한 사람이다”, “유대인의 전통에 따르지 않는 돌발적인 사람이다”라는 말입니다.

 

주님의 외침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그와 같은 사람을 4대 성인의 하나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아닌 다른 성인들 중에 누가 “나를 믿으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으리라”,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은 절도요 강도이다”라고 한 사람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좋은 것들만 골라서 예수님을 성인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 뺨도 돌려대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누구든지 크고자 하면 섬기는 자가 되라”는 등의 말씀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신 다른 말씀들을 보면 정상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얘기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51절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는 말씀 역시 그러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시대에 살고 있었다면 그와 같은 말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나를 믿으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는다(51)”,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 7:37-38)” 등의 말씀들은 모두 쉽게 믿을 수 있는 말들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종교의 창시자들은 이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석가모니는 사람에게 왜 번뇌가 일어날까 고심한 끝에 그것이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고 고행을 통해 극복하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욕심이 없어진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위대한 신앙인인 아브라함도 죽었는데 예수님이 ‘나를 믿으면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시니 ‘네가 아브라함보다 더 크냐’, ‘너는 미쳤다’,또는 ‘귀신들렸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아니하면 생명이 없다(요 6:54-55)고 하신 것도 십자가에서 친히 찢기실 것을 말씀하신 것인데 이것 역시 유대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우리가 당시 예수님 시대에 살고 있었다면 우리 역시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유대인들이 그들의 종교에 의해 오랫동안 훈련받은 가르침은 예수님의 말씀과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을 때 그곳은 타락해 있었습니다. 종교인 장사꾼들이 판을 치고 있었고 신앙은 외식에 빠져있었으며 마음은 없고 형식만 남아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이 삶의 전부였는데 지금은 신앙이 삶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굉장히 이상하게 보이는 시대입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면 나만 손해 본다고 생각하고 세상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그분께서 실제로 말씀하신 것처럼 그 모든 것이 사실로 지금까지 드러나고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이러한 사실 위에 우리의 신앙이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은 손해 보는 일이요, 광신도가 되는 것이요, 뭔가 잘못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신앙이 좋았던 아브라함도 죽고 다윗도 죽었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믿으면 죽지 않는다는 것이냐,며 유대인들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육적인 죽음이 아닌 영적인 죽음을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신 것을 보고도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은 것은 참 이상합니다. 신유의 은사가 있다는 사람을 증명하는 방법은 죽은 사람을 보는 앞에서 낫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고 과부의 딸을 살려내는 모습을 보았다면 그 분의 말씀을 충분히 믿을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브라함보다 먼저 계신 분이라는 것은 어떻습니까. 제자들이 변화산에 올라가보니 그곳에 모세도 있고 엘리야도 있었습니다. 주님이 그 세계에 대해서 직접 보여주셨을 때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문제가 된 주님의 다른 주장들

 

주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몇 가지 주장하신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에게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노라고 하신 것입니다(마 9:2-8). 이것은 하나님만 죄를 사할 수 있다고 믿는 유대인들에게 용납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전 세계의 모든 종교행위는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적어 촛불에 태우거나 열기구에 태우거나 배에 실어 강물에 띄워보내는 것, 강에서 목욕하는 것들 모두입니다.

 

둘째는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으로 보는 것입니다(요 5:17-18). 주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라고 하셨을 때 유대인들은 ‘참람하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셋째는 유대인들이 만든 장로의 유전을 예수님이 범한 것입니다(마 12:10-13). 유대인들은 먹기 전에 반드시 손을 씻어야 했는데, 예수님은 말씀하기를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 나오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멀리 이방인 지역을 여행하고 오면 국경선에서 자신의 몸을 깨끗이 씻고 들어왔습니다. 목욕을 하면 자신이 깨끗해진다고 믿는데 사실 생각해보면 겉이 깨끗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속이 깨끗한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외형적인 것을 중요시해서 장로의 유전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안식일에 이삭을 비벼먹었다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정죄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마 12:1-2).

 

결론

 

이 모든 것은 주님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실제로 주님께서 주장하신 것처럼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님은 나의 말로 믿기 힘들거든 나의 행하는 것을 보고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많은 이들이 말하기를 죽은 자를 살리고 앉은뱅이를 살리신 이는 아직까지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이 4대 성인 중 하나라는 사실에는 모든 이들이 공감합니다. 그래서 그 분이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하는 질문에 모두가 좋은 사람이라고 답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들을 생각해보면, 예수님은 위대한 하나님이시거나 아니면 정신이 돈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영원과 생명에 대해서, 하늘나라에 대해서 많은 말씀들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입니까. 새로운 아파트에 입주될 예정이라면 지하 단칸방에 살고 있어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늙어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집이 준비되어 있고 곧 이사를 가게 된다는 것은 우리에게 기쁨이 됩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유대인들의 생각처럼 귀신들린 자가 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으로서 우리들에게 복된 소식을 전해주셨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믿지 않는 자의 죽음은 비로소 고난이 시작되는 것이지만, 믿는 자의 죽음은 진정한 쉼과 부활이 약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고 죽더라도 다시 살 것이라는 밝은 소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