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

2008년 September 21일 ()

본문: 요한복음 14:25-31 |

주 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

 

본 문: 요 14:25-31

 

설교자: 조 성 훈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이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

 

주님은 항상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분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에게 참 평안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성령에 대한 약속

 

주님은 이 땅에 계실 때 ‘내가 가면 성령을 너희에게 보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보혜사,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예수님은 육체를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많은 제한이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 훨씬 낫다’고 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성도들에게 능력으로 임하셔서 그 삶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며 지키십니다. ‘내 이름으로(13절)’라는 말은 ‘내 대신’이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하늘나라로 가시고 성령님께서 오셔서 주님의 말씀과 가르침으로 많은 일들을 하십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16:13-14)” 성령님께서 오시면 주님의 가르침을 가지고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며 인도하실 것, 주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성도들은 말씀을 들을 때 마음속으로 감동이 되고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말씀은 마치 벽에 대고 얘기하는 것과 같이 관심 밖의 일이고, 그들은 말씀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당시에 녹음기가 있어 주님의 말씀을 녹음할 수 있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성경을 보지 않더라도 녹음기를 틀어놓고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으로 하셨기 때문에 많은 부분 잊혀졌습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오셔서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 요한도 말하기를 그가 하신 일을 다 기록할 수는 없지만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신대로 책들을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

 

왜 사람들에게 평안이 필요할까요. 세상에 근심, 걱정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마음의 평안을 잃어버렸을까요. 그것은 모든 것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떠났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평안과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그 후로 말할 수 없는 걱정, 근심, 목마름이 사람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는 모든 이들이 짐 진 것같이 탄식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데 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

 

세상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세상도 평안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마귀가 우리에게 약속하는 평안은 환경과 연관되어 있어 영구적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직장을 은퇴하면 연금이 나와 좋은 집에서 편안한 노년을 보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편안한 노년을 위해 모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지만 갑자기 사업이 망한다든지 자식들에게 문제가 생긴다든지 병을 얻기도 합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평안은 생각대로 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미래에 헛된 꿈을 가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평안은 환경과 연관되어 있는 것, 환경이 좋아야 평안이 유지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 갖춰져야 할 환경 조건이 얼마나 많습니까. 때론 돈과 배우자, 자녀들 등 많은 환경과 연관되어 있는데 그 수많은 환경이 다 좋은 쪽으로 갖춰지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시 90:10)”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또한 우리에게 행복을 약속하고 기쁨과 쉼을 이야기합니다. 원하는 것들을 소유하면 기쁨이 있을 것이고 지금 고생하면 훗날 쉼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환경과 연관된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기쁨과 참다운 쉼을 얻을 수 없습니다(고후 5:4).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롬 8:22)” 자연계에도 마찬가지로 쉼이 없습니다. 짐승들도 먹이를 먹을 때 수시로 경계하지 않습니까. 세상에는 많은 질병과 수고와 고통이 있기 때문에 참다운 쉼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게 오면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또한 우리에게 자유를 약속합니다. 그러나 많은 우상과 미신에 얽매여 진정한 자유가 없습니다(롬 7:5, 요 8:34, 히 2:15). 세상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주님이 제시하신 평안은 그런 것과 다른 평안, 환경과는 상관없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영적인 것이요 영구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구할 수 없습니다. 영원토록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거하고 진정한 쉼이 있습니다. 죽은 이후에도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참다운 쉼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순간부터 마음 속에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이 우리 안에 거하고 있습니다. 물론 믿는 사람에게 절대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이 약속하신 것은 ‘네가 어떤 일을 당하든지 마음에 평안이 거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우리들에게 줄 수 없는 평안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생각해 봅시다. 돈 주고는 살 수 없는 영원한 생명과 부활을 주셨습니다(요 11:25-26). 또한 참다운 쉼(마 11:28)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한 쉼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진정한 기쁨(요 15:11)과 영원한 영광(살후 2:14, 벧전 5:10), 그리고 진정한 자유(요 8:32)를 약속하셨습니다.사람들은 자신들이 종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 모든 사람들은 죄의 종입니다. 자신의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자해하고 삼보일배를 하기도 하며 더러운 강물에 목욕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 죄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놀음을 하지 않겠다고 손가락을 잘라가며 결심하지만 역시 벗어나지 못하는 죄의 종입니다. 주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구적인 것,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이러한 것들을 하늘에 가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있을 때에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임금이 올 것이라고 하셨는데 주님이 떠나신 후 사단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우리 안에 거하고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결론

 

얼마 전에 저희 집 텃밭에 배추를 좀 심었습니다. 요즘 그 배추에 벌레가 먹어서 아침마다 나가서 벌레를 잡아주곤 합니다.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면서 ‘내가 이 배추에게 관심을 두는 만큼 주님이 나에게 관심을 두실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히 배추와 비교할 수 있을까요. 주님이 나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내가 배추에게 관심을 두는 것보다 훨씬 클텐데 내가 무엇을 걱정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것보다 주님이 여러분에게 더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신데 무슨 걱정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 주님께서 ‘걱정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라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수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여러분 마음을 주관하게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