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적인 소경과 영적인 소경

2008년 March 30일 ()

본문: 요한복음 9:35-41 |

주 제: 육적인 소경과 영적인 소경

 

본 문: 요9:35-41

 

설교자: 조 성 훈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육신적으로 소경된 사람과 눈뜬 사람이 있는 것처럼 영의 세계에서도 눈뜬 사람과 소경된 사람이 있습니다. 영적인 장님은 하나님을 볼 수 없는 사람,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없는 사람이고 육적인 장님은 육적인 세계, 즉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의 세계를 볼 수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영적인 장님과 육적인 장님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어떤 편을 택하겠습니까?

 

장사꾼이 옷을 팔 때 소경들에게 옷을 팔기는 정말 편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옷이 아름답고 색깔이 예쁘다고 하면서 빨간색을 하얀색이라고 해도 소경은 속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한 사람은 잘못된 종교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종교계를 지배하던 바리새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 이단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예수님의 능력도 사단에게서 온 능력이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눈을 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소경이었다가 눈 뜬 사람을 교계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쫓겨난 그 사람을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구원할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구원하기 위해서 왔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 불행한 사람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찾아 가셨습니다. 더 이상 세상에 소망이 없었던 38년 된 병자를 찾아가셨습니다. 또한 중풍병자, 우물가의 여인 등 심령이 가난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이 열려있는 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 돈이 많이 있는 사람이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 이 소경도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입니다. 그의 삶은 낮에도 밤처럼 캄캄한 삶입니다. 그 답답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랬던 사람이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육신적인 병은 고쳤으나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병 고침을 받았으나 영적으로 눈뜬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죄인이고 이단이라고 몰아붙입니다. 소경의 부모는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소경되었던 자는 엄청난 세력인 바리새인들과 대항해서 끝까지 주님을 시인했습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에게는 이렇게 분리가 찾아옵니다. 주님은 “내가 온 것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마10:34, 35)”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소경된 사람도 전에 겪지 않았던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바로 진리를 따르면서 오게 된 어려움입니다. 그가 쫓겨나게 된 이유는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판결한 바리새인들 앞에서 그가 계속해서 예수님을 선지자, 메시야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그분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결국 그들은 그를 쫓아냈습니다.

 

주님이 “네가 인자를 믿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그가 대답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사람들을 보면 세상의 거짓된 것들은 참 잘 믿지만 진리를 증거할 때는 믿기가 힘듭니다. 만일의 경우, 소경되었던 자가 바리새인들의 말에 굴복하고 예수님을 대항하는 일에 동참했다면 그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핍박을 물리치고 교계에서 쫓겨났을 때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소경은 “주여 내가 믿나이다”라고 절했습니다. 주님을 믿는 자의 결과가 이와 같습니다.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하며 감사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셨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우물가의 여인에게, 38년 된 병자에게 주님이 찾아오시지 않았다면 그들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삶에 찌들려 소망 없이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비참한 것은 그 운명이 영원토록 멸망하게 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우리가 정말 감사한 것은 주님이 우리를 찾아온 것입니다. 빌립에게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라고 하신 것처럼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누군가를 보내셔서 찾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자기를 향하여 마음을 두는 자를 찾으십니다. 한 사람이라도 구원하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마음이 열려 있다는 것은 주님의 부르심에 반응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주님은 구원하십니다.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이 그 말씀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하면 흠을 잡을까 생각했습니다. 복음을 전해도 말씀을 들어도 그 안에서 잘못된 것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이 38년 된 병자를 고치시고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고치셨는데 바리새인들은 그 날이 안식일이라는 점만을 주목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에게 소망이 없으니 그들은 소경과 다를 바 없습니다. 자신이 본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절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자신이 죄인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구세주를 만날 가능성이 없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에게 당신의 눈을 뜨게 해 준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눈 뜰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장님이 길을 가는데 눈을 뜨게 해 준다고 한다면 그것은 복음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아는 사람은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본다고 말하니 아직 너희 죄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영적인 소경을 가리키신 것입니다.

 

우리도 한 때는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주님께서 불쌍히 여겨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각처에서 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양은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모릅니다. 어디에 강물이 있고 풀이 있는지, 어디로 가야 안전한지를 아는 것은 목자입니다. 우리 영혼의 목자를 만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생각해 봅니다. 인생의 고비마다 많은 어려움들이 숨어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영혼의 참다운 목자를 만나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하늘나라에 가게 되었습니다.

 

소경은 육신의 눈만 뜬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서 영혼이 눈을 뜨게 되었고 그 앞에 엎드려서 경배하게 되었습니다. 참답게 주님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소경처럼 그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일에 참 인색합니다. 열 명의 병자가 모두 나았지만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감사하러 온 것처럼 말입니다. 소경은 예수님을 자신의 눈을 뜨게 해 준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분을 만나서 그분이 바로 메시야라는 것을 알고 그 앞에 엎드려 절했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만난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해 내셔서 생명과 소망을 주셨는데 우리가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예배를 보면 소경되었던 자와 다른 것 같습니다.

 

소경되었던 자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고 예수님을 모함했지만 그는 한 가지 확신이 있었습니다. 자신을 눈 뜨게 한 것은 하나님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대가를 지불할 확신이 있었고 그래서 진실을 말했습니다.

 

영적인 소경된 자는 참으로 불쌍합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사도 바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멸망하더라도 온 유대인이 구원받기를 원합니다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우상을 섬기며 죽어가는 수십억의 사람들을 볼 때 우리는 소경과 같은 그들이 얼마나 무익한 자들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은 지금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의 부자처럼 자기들이 예수님을 이단으로 몰아붙였던 것을 땅을 치고 통탄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눈 뜬 사람들입니다. 우리 역시 소경되었던 자처럼 엎드려 경배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눈 뜬 이 사실 하나만이라도 일생을 감사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여기는 세 분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계속해서 흠을 잡으려는 바리새인들, 적당히 어려움을 피해서 타협하려는 사람들, 그리고 진리를 위해서 그 대가를 지불할 각오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영혼의 눈을 뜬 사람. 우리는 어디에 속합니까. 소경되었던 자처럼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